흘러간 것은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던가. 굳이 과거에 대해 미화를 하지 않아도 그리운 것은 있다. 설령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에게는 2시마다 FM라디오를 틀고 최신팝송을 듣고 빌보드차트를 실시간으로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미군이 듣는 AFKN까지 들으며 최신 팝을 하나라도 더 들어보고자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단순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게임 하나를 하기 위해 동전 두어개를 들고 동네 오락실에 놀러가던 때가 있었다. 동전은 적지만 게임은 너무도 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실컷 구경하고 뒤에서 어떻게든 그것으로 게임요령을 익히려고 했다. 그러다가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투입하고는 앉아서 게임을 한 판 하면 오래 하고 싶어서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무정한 게임기는 곧 게임오버를 알리고 내 동전은 차례로 사라져버렸다. 

어렸을 때의 나는 모범생축에 속했다. 시키는 대로 집과 학교를 오가며 공부만 했고 술도 마시지 않았고 불순이성교제(?)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그만두지 않은 것은 바로 이 게임센터와 만화방 출입이었다. 유해업소라고 학교에서 단속까지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그때 출입하며 읽은 만화책과 무협지는 10년후 나를 소설가로 만들었다. 또한 그때부터 나를 사로잡은 게임과 컴퓨터 기술은 20년후 나를 IT평론가로 만들었다. 적어도 나는 자신있게 둘이 유해업소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정녕 아쉬운 것이 있다. 그렇게 억지로 단속을 해도 결코 없어지지 않던 오락실-게임센터가 지금 한국에서 자발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종 컴퓨터 PC방과 게임기의 보급 등에 밀려 경쟁에서 져버린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게임센터의 산 역사와 같던 한 곳이 마침내 폐업한다는 뉴스가 들어왔다. (출처)

전자오락실 조이플라자가 폐업했다. '1945'와 '철권', 댄스댄스레볼루션(DDR) 등 중장년층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 전자오락실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제는 50대를 바라보는 장년층들은 어린시절 50원 동전을 손에 쥐고 오락실로 뛰어갔다. 몽둥이를 든 아버지가 등을 두드려도 '오락삼매경'에 빠져 손을 내저었다. 집에 끌려간 뒤 혼쭐이 났지만, 오락실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조이플라자'는 게임 마니아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1997년 오픈한 뒤 단순한 게임장이 아닌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여겨졌다. 신작 게임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 1년에 10여차례 가까운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세를 떨쳤다. '한참 잘 나갈 때'는 게임장 옆에 붙은 카페까지 게임장으로 확장했다. 

지난 12일 문을 닫은 조이플라자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폐업 이후 '프리플레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1000원만 내면 각종 간식과 함께 게임장의 모든 게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일부 인기 게임기는 이미 팔린 뒤였다. 게임기가 있던 자리엔 빈 자리만 남아있었다. 마지막 아르바이트생 신현우씨(23)는 "폐업 뒤 사장님은 국수 등 면류 요리집 차릴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장님이 건물주이지만 그동안 월세도 나오지 않아 고심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서대문역 인근 목마컴퓨터게임장. 안민성 사장은 "조이플라자의 폐업은 아케이드 게임업계로서는 '역사적 사건'”이라며 "우리 게임장도 재정 부담으로 게임장 운영에 머리가 아프다"고 설명했다.

오락실과 게임장의 폐업은 잇따르는 중이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펴낸 2011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02년 전국적으로 1만3270개였던 아케이드게임장(오락실)은 2010년 550개로 급감했다.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 그러기에 특별히 게임센터를 살려야 한다는 그런 말은 못하겠다. 게임센터가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거나 기념물인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추억의 게임센터, 한국에서 사라지는가?

일본의 경우에는 여전히 게임센터가 성업중이다. 물론 인형뽑기라든가 스티커 사진, 체험형 사격게임 같은 레크레이션 위주로 변신한 결과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게임센터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냥 스티커 사진 업소나 인형뽑기 매장이 될 뿐이다. 정작 그 가운데서 '게임' 이 사라지면 의미가 없다.



한국같이 이미 게임을 '마약' 처럼 취급하는 나라에서는 일본 같은 변신조차 쉽지 않다. 일본은 유희왕 과 비슷한 실물 카드 게임을 이용해서 게임센터에서 그래픽을 지원하며 대전하는 삼국지 게임을 비롯해서 기발하고 풍부한 게임이 나오고 있다. 그곳에서는 게임이 정착된 놀이문화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기회만 있으면 말살해야할 사회악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번 게임센터의 폐업도 아주 바람직한 일로 여길 것 같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환영받지 못하는 문화라면 없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온라인 게임조차 셧다운제로 막는 나라에서 게임센터가 번성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 어떤 것이든 소중함을 몰라주는 곳에 굳이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그리워한다. '지능개발'이란 낡은 문구를 셀로판지로 붙인 게임센터. 나는 검은 스크린에서 우주공간을 꿈꾸었다 . 화면의 하얀 도트 몇 개에서 우주선을 상상했으며 파란 색깔에서 깊은 심해를 보았다. 이런 게임센터가 이제 한국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나에게도 추억의 한 챕터가 사라진다. 잘 가거라. 나에게 너무도 고마운 꿈을 주었던 유해업소(?) 게임센터여. 나만은 영원히 너를 즐겁고 고마운 추억으로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