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많이 쓰이는 워킹푸어라는 말이 있다. 일한다 라는 뜻의 워킹과 가난하다라는 뜻의 푸어가 결합된 단어다. 분명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계층을 가리킨다.

이런 워킹푸어는 어째서 발생하는 것일까? 넓고 크게 보자면 점점 격화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착취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거대담론이다. 조금 좁혀서 쉽게 생각해보자면 악순환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 -> 미래를 위해 제대로 공부하거나 준비할 여유가 없다. -> 지식이 모자라니 고수익이 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 고수익 일자리에 종사하지 못하니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이니 시간이 없다. -> 그래서 다시 가난해진다. 이런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도 모두 이런 악순환의 사슬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한때 발전모델로까지 삼았던 일본기업 소니의 침체가 계속 되고 있다. 삼성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렇다 할 경영실적을 전혀 내지 못하며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소니는 그야말로 몰락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치 워킹푸어처럼 열심히 새 제품을 내고 물건을 팔아도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예전에 삼성과 소니가 손잡고 세운 LCD 패널 합자회사인 S-LCD가 정리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출처)


전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26일 "삼성·소니 두 회사가 LCD 합작 사업을 정리하는 논의에 들어갔다"며 "소니가 삼성전자와 설립한 합작 법인(S-LCD)에서 지분을 철수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소니는 2004년 LCD 패널 생산 법인 S-LCD를 합작 설립하며 한·일 경쟁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7년간 합작 사업을 진행해왔다. S-LCD는 충남 탕정에 2개 공장(7세대·8세대)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11조3700억원에 이른다. 주로 40인치대 LCD TV용 패널을 생산해 삼성·소니에 50%씩 공급해 왔다. 지분비율은 삼성·소니가 각각 50%다.

두 회사 간의 합작사업 정리 협의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소니 부사장이 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썼듯이 요즘의 전세계 LCD 업계는 극심한 불황을 맞고 있다. 경제침체로 수요는 감소하는 데 한국을 쫓아오는 중국과 대만업체는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있다. 공급과잉이 생긴 가운데 치킨게임 형세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패널 공장을 정리하겠다는 뉴스도 나름 합리성이 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이 기사를 정면부인하는 기사가 나왔다. (출처)



오늘 조선일보는 소니가 삼성과의 LCD 조인트 벤처 (S-LCD)에서 퇴진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로이터 등의 외신들이 이를 받아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소니는 이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삼성 또한 이를 부인했다.
올해 4월에 두 회사들은 조인트 벤처의 자본금을 5억5,500만 달러까지 축소시켰다. 소니는 자사 TV 비즈니스의 손실을 삭감하려 했고, 삼성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들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소니는 8년 연속 TV 비즈니스에서 손실을 기록했고, 이미 적어도 1년 간 샤프와의 LCD 조인트 벤처의 지분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소니는 대신에 아시아의 다른 패널 제조업체들로부터 저렴한 패널들을 사용할 계획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합작회사를 정리할 생각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할 건 이 부분이 아니다. 기사의 마지막에 나온 언급이 오히려 더 의미심장하다.

삼성과 소니의 엇갈린 선택, 누가 현명한가?

만일 합작회사를 정리한다고 해도 삼성과 소니는 그 정리된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지가 크게 다르다. 그것도 아주 상징적인 의미로 다르다.


1) 우선 삼성을 보자. 삼성은 점차 저 부가가치산업이 되는 LCD패널 사업의 자본금을 축소하면서 그 돈으로 지금 잘 팔리고 있고 미래도 확실한 고부가가치 부품인 OLED공장으로 전환하는 비용을 만들고 있다.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재투자금이 되는 셈이다.

2) 반면 소니를 보자. 소니는 자본금 축소로 발생한 돈을 그저 텔레비전을 팔다가 발생한 손실을 메우는 데 썼다. 떨어지는 경영실적을 조금이나마 좋게 발표해보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건 미래를 향한 투자가 아니다. 그저 과거를 어떻게든 좋게 포장해보려는 미봉책이다. 새로운 기술개발도 아니고 새로운 설비투자도 아닌 곳에 생각없이 귀중한 돈을 쓰는 게 오늘날의 소니다.



서두에 나는 워킹푸어 이야기를 했다. 워킹푸어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기에 발생한다. 부자들은 돈이 있어서 남는 시간에 자기개발을 해서 더 능력을 키운다. 그래서 더 돈을 많이 번다. 가난한 사람도 어떻게든 없는 돈과 시간을 만들어내서 능력을 키워야만 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그런데 소니의 행동을 보자. 고통을 참아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현명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당장의 고통을 잊기 위한 진통제를 찾을 뿐이다. 이래서야 삼성과 애플, MS 등을 전혀 쫓아갈 수 없다. 삼성 역시 지금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다. 반도체와 LCD패널 양쪽이 적자인데다가 휴대폰에서도 이익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한다. 소니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할까?

워킹푸어 처지가 된 소니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워크맨과 플레이스테이션이 떠오른다. 그때의 소니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성공하고 싶으면 미래를 준비하라는 흔한 말을 너무도 절실하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