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비즈니스를 전쟁에 비유한다. 그만큼 사업을 해서 돈을 번다는 건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고 상대가 있다는 의미다. 힘으로도 지혜로든 경쟁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과 전쟁은 공통점이 있다. 그 때문에 종종 동서양의 병법까지 적용하며 비즈니스계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교훈을 얻곤 한다.

미국의 혁신기업 애플과 가장 비슷한 회사를 하나 꼽아보라면 나는 주저없이 일본의 닌텐도를 들 것이다. 이 두회사는 국적이나 분야의 차이등을 제외한다면 비즈니스 모델이나 각종 특성이 놀랄 만큼 닮았다. 때문에 이 두 회사가 스마트폰 게임이란 분야에서 맞부딪칠 때 과연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내심 궁금하게 생각했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지금 놀랄 만한 기세로 전진하고 있다. 점유율에서는 안드로이드에게 견제당하고 있지만 산업전체를 이끄는 주도권에서 애플은 단연 선두주자다. 때문에 기존의 몇몇 기기들은 벌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판이다. (출처)

아이폰 등장 이후 가장 많이 자취를 감춘 디지털 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美씨넷은 아이폰 등장 이후 가장 빨리 사라진 디지털 기기로 알람시계와 GPS, 디지털카메라 등이 꼽혔다는 한 시장조사업체 조사결과를 7월 10일(현지시간) 인용보도했다.

프로스퍼 모바일 인사이트 모바일 서베이가 지난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이폰 등장 이후 알람시계는 사용량이 이미 61.1% 가량 줄었다. 위치 추적 시스템인 GPS 역시 52.3% 줄어 아이폰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MP3플레이어도 마찬가지다. 두 기기 모두 각각 44.3%, 37.6% 가량씩 사용량이 줄었다. 이는 아이폰이 디지털 기기에서 맥가이버 칼처럼 사용된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편의성과 효용성이 다수 디지털 기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 신문이나 양장본같은 읽을 거리들도 아이패드에 의해 서서히 대체되는 분위기다.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신문, 라디오, 서적 등 다수 콘텐츠들의 20%가 아이패드에서 실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신은 "이는 아이패드가 아이폰과는 또 다른 사용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시대의 변화가 급속하게 펼쳐질 때 그것에 따라가지 못하는 기기는 사라진다. 개인용 컴퓨터와 노트북이 보급됨에 따라 기계식 타이프라이터나 전자식 워드프로세서가 사라진 것으로 알 수 있다. 단일 목적만 가진 이 기기들을 컴퓨터가 완전히 대체해버렸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데, 단일목적 기기는 편리하지도 않으면서 충분히 싸지도 않았기에 없어지는 길 밖에는 없었다.

게임기를 주 상품으로 삼고 있는 닌텐도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닌텐도는 소니, 세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노선이 다르다. 멀티미디어 기기로서의 게임기가 아닌, 전문기기로서의 게임기를 목적으로 삼는다. 더구나 게임만 파고드는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가벼운 게임이 주된 타겟이다. 그런데 아이폰이나 아이팟터치, 아이패드가 바로 이런 계층을 흡수해버리고 있다. 처음으로 애플과 닌텐도가 노리는 고객이 일치해버린 것이다.

닌텐도가 이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카드는 다음과 같다.



1) 닌텐도는 게임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걸출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가진 회사다. 애플의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 게임을 발매해서 수익을 낸다. 포켓몬, 마리오, 젤다의 전설 등 다양한 컨텐츠를 보유한 입지를 살려 애플과 전면적인 제휴를 맺는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닌텐도는 자기가 만든 플랫폼에 최적화된 게임을 내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버려야 한다. 휘하에 있는 롬 카트릿지 공장도 쓸모가 없어진다. 자칫하면 하드웨어부문을 없애야 하기에 커다란 고통이 예상된다.

2) 독자적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발매하면서 그 안에 닌텐도의 게임 플랫폼을 넣어 발매한다. 적극적으로 애플의 공세에 역공을 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하드웨어에 강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취약한 한국의 삼성이나 엘지 등과 협력할 여지도 많다.

이 방법이 닌텐도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이긴 하지만, 스케일이 너무 커진다. 전통적으로 닌텐도는 싼 가격의 장난감으로서 자사 기기를 제작하고 운영해왔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되면 가격이 치솟고 더이상 장난감이 아니게 된다.

3) 전자책의 경우처럼 아주 싼 게임기를 내놓고는 수익을 전부 소프트웨어에서 얻는 방법도 있다. 10만원 안팎의 저가기기로서 아이폰에 이어 추가로 구입해도 상관없는 가격을 매기고는 차별화된 게임을 내놓을 수도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가운데 가장 쉽고 효과가 확실한 방법은 첫번째다. 그러나 닌텐도는 끈질기게 이 방법을 거부하고 있다. (출처)

닌텐도가 다른 플랫폼으로 진출할 생각이 없다는 방침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포켓몬’이 스마트폰 게임으로 나온다는 소식과 관련해선 사실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계획은 아님을 강조했다.

씨넷뉴스는 닌텐도 대변인 야스히로 미나가와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닌텐도는 애플 iOS와 안드로이드를 포함한 모바일 플랫폼에 진출 계획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더군다나 야스히로는 “(닌텐도 방침이)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켓몬 애플리케이션 제작에 대해선 “포켓몬은 닌텐도가 지분의 32%만 소유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닌텐도 플랫폼에서만 출시될 이유는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닌텐도의 실적은 이미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지난해 닌텐도 순익은 전년대비 3분의 2로 줄어든 776억엔에 그쳐, 한때 주당 7만엔을 넘던 전성기보다 5분의 1이나 추락했다.


닌텐도, 아이폰 열풍에 휩쓸려 사라질 것인가?



문제는 첫번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옛 병법에 이르기를 '지휘자가 잘못된 결단을 내리는 것보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라고 했다. 어떤 노선이든 장단점이 있기에 일사분란하게 나간다면 소정의 결과가 있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도 나가지 못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이다. 닌텐도는 지금 고민만 할 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닌텐도가 새로 내놓은 콘솔 게임기는 단지 콘트롤러에 커다란 태블릿을 붙였을 뿐이란 악평을 받고 있다. 안경없이 입체영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 3DS는 좋은 타이틀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비싼 가격으로 인해 판매부진에 빠졌다.

이대로 있다가 자칫하면 닌텐도 게임기는 아이폰 열풍에 사라진 또다른 기기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 닌텐도의 자랑이었던 가벼운 캐주얼 게임의 가격을 보자. 현재 닌텐도 게임은 몇 만원대 인데다가 게임기도 따로 돈을 주고 사야한다. 반면 아이폰 게임은 아이폰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단 기기 구입비도 없고, 대부분의 게임이 천원-만원 사이다. 무료게임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의 입지가 강화될 리 없다.


닌텐도는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아무리 그간 쌓아놓은 돈이 많고, 명성이 높더라도 현재 IT업계의 살인적인 변화속도를 감안해야 한다. 닌텐도의 과감하고도 획기적인 대응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