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만들어진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4에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핸솔로와 루크가 힘을 합쳐 제국군과 싸워 이기고 영화가 끝난다. 그러나 다쓰베이더는 죽지 않고 회전하는 우주선과 함께 날아가 버릴 뿐이다. 이어서 나오는 에피소드5에서 다쓰베이더는 다시 일어선다. 그 뿐이 아니라 패한 듯 보였던 제국 그 자체가 엄청난 기세를 보인다. 영화 제목 조차도 '제국의 역습'이다.



아이폰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미국 애플사에서 만드는 아이폰은 일본회사의 부품을 핵심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아이폰3GS때까지만 해도 일제부품의 비율이 높았다. 가히 전자제국 일본의 기세가 드높았다. 그런데 아이폰4에 와서 갑자기 한국부품이 핵심을 차지해버렸다. 이어서 아이패드1과 2에 이르기까지 한국부품은 애플 제품의 핵심요소가 되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전자제국 일본산업의 퇴조와 몰락을 예측하려는 움직임이다. 애플에서까지 외면당하는 일본은 이제 자랑하는 부품과 소재산업조차도 위험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끝났던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게 애플 제품의 핵심자리에서 퇴출당했던 일제부품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더구나 마치 스타워즈의 제국처럼 더 뛰어나고 좋은 부품을 가지고 온다. 이른바 '제국의 역습'이다. 최근 흘러나온 루머를 다룬 뉴스를 보자.(출처)

소문만 무성하던 화이트 아이폰4의 출시가 임박했고, 아이폰5도 오는 9월 출시설이 유력해지고 있다. 이제는 벌써 아이폰6에 대한 얘기가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애플인사이더 등은 26일(현지시간) 애플이 아이폰6에 샤프의 p-Si LCD를 채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26일 일본의 닛칸(Nikkan) 신문에 따르면, 샤프전자는 오는 2012년 봄부터 애플에 제공할 이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계획이다. 샤프가 제조할 LCD 디스플레이는 '저온 폴리-실리콘(low-temperature poly-silicon)' 기술을 적용, 더 가볍고 얇으면서도 전력 소모량은 줄였다.

닛칸이 발표한 리포트가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애플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삼성의 슈퍼 아몰레드와 같은 오가닉(Orgarnic) LED 디스플레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애플이 샤프에 손을 내민 것을 두고 슬래시기어(www.slashgear.com) 등은 애플이 최근 삼성과의 특허침해 공방을 계기로 기존 부품 공급업체였던 삼성과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다.



저온 폴리 실리콘 기술은 주로 우리가 일제 디지털 카메라의 액정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가볍고 화사하면서 전력 소모가 작은 게 장점이다. 이 기술을 스마트폰의 넓은 화면을 만드는 데 쓰려는 것이다. 사실 기술적으로만 보면 일본의 이런 기반기술은 매우 우수한 편이다. 이번에 나온 소니의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아크만 봐도 화질이 아이폰에 전혀 뒤지지 않으며 일부 항목에서는 더 우수하기까지 하다.

애플은 부품 하나하나를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하드웨어 분야에서 애플은 단지 디자이너일 뿐이다. 멋진 케이스를 만들고 부품을 잘 조합하는 역할이다. 애플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만들고 관리하는 건 운영체제와 아이튠스 같은 기반 앱뿐이다.

이에 비해 한국과 일본같은 아시아 제조업체들은 공장에서 실물을 개발하고 만드는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다. 그러니 양쪽의 장단점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애플은 하드웨어 제조업체로부터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가운데서도 우수한 부품을 주문해서 아이폰이란 멋진 제품을 이어나가려 한다. 양쪽의 이익은 충돌하기도 하지만 일치하기도 한다.



소니 엑스페리아 아크에 들어간 뛰어난 카메라 모듈만 해도 그렇다. 조리개 2.4라는 획기적인 기술로서 현존하는 스마트폰 카메라 가운데 가장 좋은 성능이다. 애플은 이런 하드웨어를 독자개발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 부품을 현금으로 대량 주문할 능력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소니가 차세대 아이폰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할 거란 루머가 나오게 되었다.

차세대 아이폰, 핵심은 일본부품으로 만들까?

결국 현재 삼성과 엘지에서 공급하는 디스플레이는 샤프의 저온 폴리실리콘 액정으로, 엘지 이노텍에서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카메라 모듈은 소니의 고성능 모듈로 바뀌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한국 업체가 아닌 일본업체의 부품을 모아서 다시 아이폰을 만든다면 이야말로 전자제국 일본의 역습이다. 한국업체들이 긴장할 차례인 것이다. 핵심부품을 다시 탈환한 일본 전자업계의 행운은 그와 경쟁하는 한국업계의 불행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전환이 쉽게 될까? 생각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소니는 애플에 대해 삼성과도 입장이 비슷하다. 소니가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부품업체가 된다고 해도, 동시에 소니에릭슨을 통한 엑스페리아 등으로 스마트폰에서 애플 아이폰과 경쟁하는 관계다. 샤프 역시 독자적인 안드로이드 태블릿 갈라파고스 시리즈를 내놓은 상태다. 아이패드의 경쟁업체이기도 하다.

위의 기사 마지막에는 특허공방을 계기로 애플이 삼성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는 이유분석이 있다. 그러나 이 분석은 가능성이 낮다. 왜냐하면 애플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자체가 아이폰 운영체제를 표절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니에릭슨도 안드로이드폰을 만든다. 샤프 역시 마찬가지다.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제작해 팔고 있다. 애플이 이들에게만 특별히 관용을 베풀 이유가 없다.



위의 루머가 사실이라고 해도 애플의 속내라는 건 지극히 간단하다. 날이 갈수록 성능차이가 좁혀져 오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떻게 하든 우수한 부품을 공급받아 아이폰의 우세를 유지하려는 것, 그 뿐이다.

물론 아이폰은 설령 하드웨어가 좀 뒤지더라도 충분히 사랑받을 것이다. 운영체제와 앱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점에 안주하다가는 바로 매킨토시처럼 밀려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애플은 하드웨어 부품 업체가 아니다. 그러기에 늘 하드웨어 경쟁에서는 주도권을 쥐기 힘들었다.

차세대 아이폰을 둘러싼 이같은 루머는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줘서 흥미롭다. 일본이 다시 저력을 발휘해서 부품으로 돌아올 것인지, 아니면 게속 한국업체가 아이폰 핵심을 지킬 것인지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