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삼성과 애플이 나란히 비교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가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과 내놓는 제품군이 완전히 다르기에 비교할 필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통조림 회사와 에어컨 만드는 회사를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작년을 거쳐 올해로 접어들자, 삼성과 애플은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설령 일부 한국 네티즌들이 말하듯 애플이 혁신회사이고, 삼성이 거대재벌에 불과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애플과 삼성이 서로를 특허침해로 고소하면서 전세계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둘은 라이벌 회사다. 애플의 역사를 뒤돌아 보면 애플은 절대로 상대할 가치가 없는 회사를 고소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글을 쓰기 전에 우선 한 마디 해야겠다.

과연 당신은 삼성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터넷에 올라있는 삼성에 대한 글은 너무도 많다. 또한 애플과 비교하며 삼성을 칭찬하거나 심하게 욕하는 내용도 넘치도록 많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정말로 삼성이란 회사의 자료를 잘 연구하고는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단편적인 경험이나 뉴스 몇 토막으로 평가할 뿐이다.

나는 굳이 그런 흔한 글 가운데에 하나를 더 추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순수하게 기업 역사적 관점에서 두 회사를 냉정하게 비교해볼 생각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란 영역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는 두 회사 - 삼성과 애플,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이 최종분석을 위해 전면적으로 두 회사를 비교해보도록 하자.



1) 애플은 이제까지 어떤 제품을 내놓았는가?

애플의 역사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란 개인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미국 중산층 입양아 출신인 스티브 잡스는 성장과정에서 가장 활기에 넘치는 미국 황금시대를 살았다. 개인적으로는 모자란 것이 있었지만 미국이란 나라에서는 별로 부족한 것이 없었다. 경제는 활력이 있었고, 첨단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했다. 특히 미국에서 발명된 컴퓨터란 기기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던 때였다.

고도로 집적된 반도체와 전자부품이 하루가 다르게 결합되고 발전하던 시대를 살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개인용 컴퓨터를 설계해냈다. 그리고 무엇인가 혁신적인 일을 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려보겠다던 야심을 가진 스티브 잡스는 그것을 대중화시켰다. 그것이 바로 애플이란 이름의 개인용 컴퓨터가 되었다. 이어서 애플2는 곧 미국에서 히트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애플2의 대히트로 커다란 회사를 가지게 된 스티브 잡스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다.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돈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명성과 세상의 변화는 충분치 않았다. 특히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2는 온전한 잡스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잡스에게는 혼자서 독차지해야할 어떤 것이 필요했다.

때마침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잠자고 있던 선행기술이 있었다. 첫째는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란 입력장치였다. 둘째는 모니터에 보이는 대로 프린트할 수 있는 포스트스크립트란 기술이었다. 마지막 세번째는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이더넷 기술이다. 이 가운데 잡스는 첫번째 기술에 매료되어 그것을 가지고 나와 애플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구현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바꾼 컴퓨터 - 매킨토시다.



애플의 제품기획은 근본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굳이 다른 회사에서 이미 만들고 있는 부류의 제품은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세상을 바꾸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명성을 가져다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팟과 결합된 아이튠스란 비즈니스 모델, 최초의 제대로 된 스마트폰인 아이폰, 태블릿이란 기기를 부흥시킨 아이패드을 보자. 애플의 제품 기획방향은 확실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분류의 기기, 혹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실리콘 밸리의 인재를 모아 아낌없이 돈과 기간을 들인다.

2) 삼성은 어떤 제품을 내놓으며 기업을 시작했는가?

삼성의 창업은 이병철 회장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시대에 여러가지 사업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하던 이병철은 해방후,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을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기술도 없고, 인력도 없었다. 일본에서 기기를 들여왔지만, 이승만 정권의 정책에 의해 일본인 기술자는 들여올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기계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국산화해가며 설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제일제당, 즉 CJ그룹의 시작이다. 이후 수입량을 전량 대체해가며 급성장했다.

두번째로 이병철은 당시 수입제품 가운데 고급제품으로 분류된 모직제품에 도전한다. 영국제 양복지가 선호되던 국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이번에는 아예 백퍼센트 국내 기술과 설비를 바탕으로 양복지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질이 다소 떨어졌고, 국산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아 고전했다. 하지만 곧 정부의 모직제품 수입금지조치와 함께 품질개선으로 인해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골덴텍스로 대표되는 제일모직의 시작이다.


이후 삼성은 배를 만드는 중공업을 비롯해 티비, 비디오를 제작하는 전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회사를 만들어 키워냈다. 그것들이 전부 그룹으로 묶인 것이 지금의 삼성그룹이다. 이렇게 많은 분야에 걸친 삼성 제품의 공통된 방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수요가 검증된 수입제품의 국산화' 이다. 많은 자금과 기술력이 필요하기에 쉽게 국산화하지 못하지만 이미 수요가 충분한 제품에 뛰어든다는 뜻이다.

삼성과 애플, 제품 기획에서 어떻게 다른가?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이것은 양 회사가 처한 국가적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애플이 있는 미국은 당시 최고의 호황을 누리는 강대국이었다. 외국 수입품 자체도 별로 없었고, 있다고 해도 엄청난 기술력의 제품이 있을 리 없었다. 미국이 전세계를 선도해나간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시대였다. 애플은 세계에서 최고수준의 유일한 혁신제품을 만든다는 목표를 향해서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을 위한 돈과 인재는 이미 미국내에 충분히 있었다.

삼성이 초기에 처한 한국 상황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일본 식민지였다가 갓 해방되고, 이어서 내전으로 황폐화된 한국에는 돈도 기술도 없었다. 국민소득도 낮았기에 첨단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사줄 시장도 없었다. 따라서 삼성은 이미 수요가 충분히 확보된 제품을 목표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삼성은 수입품 가운데 기술력과 장비가 필요한 제품에 집중적으로 도전했는데, 당시로서는 그것도 나름 위험이 따르는 도전이었다. 그것을 연이어 성공하며 삼성은 거대한 그룹의 초석을 다졌다.


재미있게도 이런 구도는 오늘까지도 이어진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고 전세계를 휩쓸었지만 삼성의 대응은 느린 편이었다. 한국에는 여러 이유로 아직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고 급속히 한국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하자 삼성의 대응은 그야말로 기민했다. 구글과 제휴해서 안드로이드를 도입하고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추격하는 모습은 외국언론도 감탄할 정도였다. 어떤 의미에서 아이폰이야말로 확실히 '한국에서 수요가 검증된 수입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분히 위에서 말한 대로 '한국에서 수요가 검증된 외국제품- 스마트폰 을 국산화 하는' 삼성의 제품기획 전략에서 비롯된 전통적인 강점이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삼성은 이런 한국에서의 대응전략을 바탕으로 다시 전세계에서 현재 애플과 대립구도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런 방식에 비춰서 추후 삼성과 애플의 제품 기획을 잘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