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영국의 티비 프로그램에서 한국차에 대해 혹평했다는 것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차피 그 프로그램은 외국의 어떤 차량이라도 영국식 유머로 씹는 프로그램이니 예민할 거 없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한 반응이 있다. 영국은 어차피 마지막 남은 영국차의 자존심이었던 롤스로이스마저 외국 업체에 인수당한 뒤 어차피 자국차가 없으니 마음껏 독설하는 것 밖에 남은 게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안에서 자국 업체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면 차라리 객관적이 될 수도 있다. 어떨 때는 오히려 객관성을 넘어 시니컬해지기도 한다. 어차피 애정을 가지고 볼 대상 자체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회사든 다 자국회사일 경우는 어떨까? 한때 세계 게임기 시장을 놓고 닌텐도와 소니가 혈투를 벌였을 때 다른 나라들은 그냥 강건너 불구경이었다. 누가 이기든 일본 업체니까 말이다.

오늘날 세계 IT를 주름잡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MS의 공통점은? 미국회사란 점이다. 그러니까 솔직히 미국입장에서는 다 자기 자식들이고,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모조리 남의 자식일 뿐이다. 얼마전 백악관에서 초대한 실리콘 밸리기업 CEO의 모임은 메이저 리그처럼 그게 바로 세계 최고 CEO의 모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론이 좀 길었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상당히 간단하지만 또 재미있는 대칭이다. 바로 특허에 대한 이슈다. 우선 서론으로서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노키아는 애플과 특허 라이센스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애플-노키아 간의 모든 특허 분쟁은 정리될 예정이다. 애플은 최초 비용을 지불한 뒤 지속적으로 로열티를 지불할 에정이라고 노키아는 밝혔다. 자세한 조항이나 합의 금액은 비밀로 처리되었다.

노키아는 이 협정이 2분기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라이센싱 협정이 노키아-애플 상호 라이센싱이라는 것을 밝혔지만 "아이폰을 창조적이게 하는 발명의 대부분은 해당사항이 아니"라고 밝혔다.



아주 간단한 뉴스다. 한때 애플이 스마트폰에서 노키아가 아이폰의 특허를 침범했다고 고소했었다. 반대로 노키아는 애플이 노키아의 휴대전화 관련 특허를 침범했다고 맞고소했다. 그 결과가 나왔으니 카놋사의 굴욕도 아니고 그냥 '애플의 굴욕'이다. 매우 건조한 어조이긴 하지만 애플이 패배를 인정하고 노키아에 대해 특허권료를 선불로 다 지급하고, 향후에도 특허료를 주겠다는 것이다.

끝에 상호 라이센싱에 대해 애플 관계자의 변명이 있긴 했지만 이건 그저 면피용이다. 한마디로 애플이 돈은 얼마든지 노키아에 주겠고, 다른 특허도 다 공유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키아가 아이폰을 그대로 만들어 팔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에 불과하다.

이 소송 결과는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노키아와 모토로라에 이어 휴대폰 특허에 관해서라면 상당한 양을 축적해놓은 한국의 삼성을 애플이 고소해놓았기 때문이다. 대결양상도 똑같다. 애플은 아이폰의 인터페이스를 표절했다는 의혹으로, 삼성은 휴대전화 기술을 도용했다는 의혹으로 서로를 고소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삼성의 승리 가능성을 약간 더 놓게 쳐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다루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보다 한발 더 전진한다. 바로 이런 애플, 그리고 또다른 기업 구글이 특허를 어떤 식으로 운용하는 지에 대한 것이 핵심이다. 그럼 다른 뉴스 하나를 더 보자. (출처)



구글이 부도난 통신장비회사 노텔의 특허 수천건을 인수할 가장 강력한 주자로 부상하자 글로벌 IT기업들의 반발과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놓을 정도로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HP,노키아, 모토로라모빌리티 등이 이같은 움직임과 우려에 동조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구글이나 애플이 이 특허를 인수할 경우, 이를 무료로 나눠줌으로써 경쟁기업의 특허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노텔 특허 6천건에는 무선비디오, 와이파이,LTE이통데이터기술 등이 포괄돼 있다.

씨넷은 6월 13일(현지시간) 구글이 부도난 노텔네트워크의 특허 6천건을 인수할 유력자로 부상한 가운데 특허인수후 이를 무상으로 나눠줄 가능성에 대한 IT거인들이 우려와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달 초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법무부반독점국이 이특허 입찰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독점국은 아직까지 조치를 취할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몫했지만 이 입찰의 낙찰자가 특허를 경쟁을 파괴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데 우려를 표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특히 이번 특허 인수자로 구글이나 애플이 선정될 경우에 대해 특히 우려하고 있다.

좀 어려운 뉴스지만 아주 간략화해 보겠다. 특허가 곧 재산인 미국이다. 거대 기업들도 두려워할 핵심 특허를 많이 가진 기업 하나가 망해서 인수자를 찾고 있다. 그런데 이 기업을 인수한 어떤 기업이 그에 수반되서 얻은 특허를 가지고 시장을 교란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미국 법무부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요 인수 예정자인 애플과 구글 양 기업에 대한 우려가 서로 다른 것 같아 재미있다.


애플과 구글, 특허를 둘러싼 서로 다른 공포는?

1) 위의 기사에서 보듯 현재 인수가 유력한 구글은 특허를 주로 무료로 공개한다. 구글은 천사기업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기술을 널리 퍼뜨리는 데 주력할 뿐이다. 기술 그 자체에서 로열티를 받거나 사용료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구글은 특허 관련해서 누구를 먼저 고소하는 일도 별로 없다.

구글이 정말 천사라서 그런게 아니다. 구글은 철저히 광고수입에 의해 운영되는 회사다. 그리고 그 광고수입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플랫폼과 서비스를 많이 써줄 수록 늘어난다. 단기간에 사람들이 어떤 서비스를 많이 써보게 하려면? 공짜만큼 좋은 게 없다.

따라서 미국 법무부는 구글이 특허를 무료로 풀어버림으로서, 종래 그 특허에 대해 돈을 지불하거나 협정을 맺어 독점적인 사용권리를 얻었던 여타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공짜로 특허가 제공된 기술을 다른 기업이 유료로 시장에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2) 그럼 애플은 어째서 우려하는 것일까? 애플은 분명 기술을 공짜로 시중에 풀지 않는다. 애플이 직접 개발했든, 아니면 다른 회사의 것을 인수했든 상관없다.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은 직접 소비자에게 돈을 받고 서비스와 플랫폼을 파는 것이다. 광고가 아니다. 따라서 애플은 반대로 특허에 매우 민감하다. 또한 다른 회사들이 자기 것을 베끼거나 참고해서 돈을 버는 것을 너그럽게 봐줄 만큼 관대하지도 않다.

오죽하면 네티즌 사이에서 애플은 '너 고소.'로 알려져 있다. 말이 필요없이 특허에 관련해서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있으면 바로 소송으로 치닫는다는 뜻이다. 과연 애플은 최근 특허께의 싸움닭이었다. 모토로라, 노키아, HTC, 삼성 등 거의 모든 스마트폰 업체와 고소를 주고 받았다. 미국 업체 코닥과는 사진 관련 특허로 대립중이며, 작은 중소 업체까지 포함하면 한이 없다.

결국 미국 국무부는 애플이 노텔의 특허를 인수하면 구글과는 정반대로 그걸 가지고 사방으로 고소를 남발하면서 정당한 경쟁까지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같은 미국 회사이고 실리콘 밸리의 거인이지만 이처럼 걱정하는 방향이 천지차이다.



노키아에게 일단 패하고 돈을 내기로 한 애플은 바로 그 특허가 부족해서 졌다. 그런데 애플에게는 지금 돈은 넘친다. 그러니 그 돈을 가지고 이번에는 특허가 많은 노텔을 인수한 다음, 그 특허를 이용해 무차별로 다른 경쟁업체를 공격한다는 건 확실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입장에서 애플이 삼성이나 HTC등 다른 나라 업체만 대상으로 하면야 상관없겠지만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HP, 모토로라 등도 고소할 게 분명하니 미리 교통정리를 해야되는 것이다.

어쨌든 같은 특허를 둘러싸고 애플과 구글에 대해 서로 정반대의 걱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너무도 재미있다. 둘다 전략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과연 애플과 구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미국의 입장에서 이익일까?

차라리 자국 기업이 하나도 없다면 나도 그냥 재미로 이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휴대폰 시장에는 이미 삼성과 엘지가 높은 점유율로 들어와 있다. 객관적으로 웃어넘기기엔 한국이 아직 영국처럼 관련 산업이 전멸한 게 아니다. 따라서 독설만 하기는 벅차다.  과연 특허를 둘러싸고 구글이 방식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애플의 방식이 옳은 것일까? 미국 국무부는 누구 편을 들 것인가? 한번 깊이 생각해볼 부분이다.


P.S : 요즘 창틀님이 여러 블로거 분과 공저한 <백만방문자와 소통하는 파워블로그 만들기>란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블로그의 기본적인 개념부터 글쓰는 방법, 기술적으로 블로그를 만들고 사진을 올리는 법까지 단 한번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게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