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가운데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 는 말이 있다. 훌륭하게 성장한 다음에 자기가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어버리는 일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변론한 일본 변호사는 재미있는 예를 들었다. 안중근이 스스로 조선황제와 일본 천황을 위한 의거를 했다고 주장한 점을 상기시켰다. 바로 죽은 이토 히로부미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절에 유신지사로서 요인암살에 가담한 청년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상참작을 요구한 이 변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안중근 의사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 이번엔 애플을 이야기해 보자. 최근 유명해진 미국의 천재 해커 조지 호츠에 얽힌 뉴스를 한번 보자. (출처)

마이크로소프트(MS) 는 최근 엑스박스(X-Box) 시스템을 해킹한 10대 아일랜드 소년을 두고 예상외의 결정을 내렸다. 소니가 해킹 공격을 당한 일로 IT 기업들 사이에 해커들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오히려 이 해커를 키워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MS의 남다른 대처는 미국의 천재 해커 조지 호츠가 불러일으킨 효과이기도 하다. 아이폰 '탈옥'(해킹)으로 유명한 호츠는 최근 플레이스테이션3(PS3) 해킹 사건의 간접적 원인 제공자로 소니가 그를 고소하며 역풍을 맞은 일을 반면교사 삼아 MS는 유화책을 쓴 것이다.

애플과 소니를 덜덜 떨게 하고 MS의 유화적인 몸짓까지 이끌어 낸 호츠는 폭넓은 대중적 지지와 미디어의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젊은 천재 해커다. 특히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이미지도 인기 요인이다. 호츠의 생각과 행동이 젊은 시절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걸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는 등 일찌감치 '탈옥'을 시연한 잡스와 닮았다는 것이다.



호츠가 '지오핫'(geohot)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 호츠는 그해 8월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을 해킹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 통신사업자를 AT & T만으로 제한했는데 호츠는 아이폰을 해킹 개조해 통신사업자를 이용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로 뉴저지주의 명문고등학교 버겐카운티아카데미(BCA)를 갓 졸업했을 때였다.

물론 애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프로그램 보안을 강화하고 기능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몇 달 가지 않았다. 호츠는 또다시 해킹에 성공했다. 지금까지도 호츠와 애플은 서로 기술을 통해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탈옥툴을 무료로 배포하는 호츠에 대해 애플은 물론 좋은 감정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 뉴스에서 보듯 애플을 창립한 두 주역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무슨 성자였던 게 아니다. 그들 역시 '블루박스'란 장거리 전화 해킹 도구를 만들어 팔고 다니던 해커출신이다. 그리고 호츠의 나이는 지금 그때의 잡스와 비슷하다.

무조건 해커가 나쁘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호츠는 나쁜 의미의 크래커는 아니다. 그가 아이폰 탈옥툴을 만들어 유명해졌을 지언정 그걸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지는 않았으며, 그럴 목적도 없었다. 단지 그는 첨단 기기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메이저 회사에 대항해서 자유와 선택을 주고자 하는 해커의 기본정신에 충실했다.

우리가 흔히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해방자- 매트릭스의 네오가 바로 그런 정신을 나타낸다. 스티브 잡스도 그때 히피정신에 입각해서 그런 행동을 했으며 지금도 그런 시절을 반성한다거나 뉘우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즉 스티브 잡스의 과거가 바로 호츠의 현재다.



세상이란 또 모른다. 호츠의 미래가 또 스티브 잡스의 현재가 될 수도 있다. 즉 호츠가 장래 애플 같이 세상을 바꿀 회사를 세울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해보고자 한다.

스티브 잡스는 과연 해커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잡스가 한때 히피였다고 해서 모든 히피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해서 지금도 마리화나를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지금에 와서 자기가 만든 제품인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의도와 달리 변형시키는 호츠를 건방진 해커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탈옥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미국 법원판결에 의해 보장된 판결이다. 따라서 탈옥툴을 만드는 호츠도 범죄자는 아니다. 도리어 3만명의 내노라하는 인재와 천문학적인 돈이 있는 애플이 어리고 가난한 해커 한 명을 막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스티브 잡스가 문화현상을 위해 성실한 다른 회사- 마이크로 소프트나 IBM, 모토로라 등을 비웃어 왔다는 점이다.

빌게이츠에게 마리화나를 피워본 경험도 없다고 비웃거나(미국의 주에 따라서 마리화나 흡입은 범죄다), 어째서 기존 관념에만 얽혀있냐고 다른 회사를 비웃어왔던 것이 잡스와 애플이며, 이에 동의해 열광했던 것이 애플 팬보이들이다. 이제 그들 앞에 선 한명의 해커가 뭘 그렇게 고지식하게 제품을 통제하고 있냐고 비웃으며 연신 탈옥툴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애플이 과연 이 해커를 욕하거나 비난할 명분이 있을까? 하물며 스티브 잡스는 이 해커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것이 인간심리라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가 탈옥툴을 만든 호츠를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한 부정이고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화현상이 그저 상업적 캠페인일 뿐이란 고백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입장에서 잡스가 진실성을 위해 차라리 MS처럼 해커를 포용해주길 바란다. 호츠에게제 2의 워즈니악이나 잡스처럼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 그것이 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 아닐까? 부디 비극적 결말이 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