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병가를 냈다는 소식이 있다. 벌써부터 독일에서 애플 주가가 8퍼센트 폭락하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향후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지만, 적어도 현재로서 당분간 잡스가 없다고 애플이 기울어질 걱정은 전혀 없다. 스티브 잡스를 시대의 영웅으로서 좋아하는 나는 그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 때문에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오늘의 주제로 들어가보자.

대부분의 경우 가장 합리적인 의견은 양극단론의 중앙에 위치한다. 마찬가지로 극한 주장이 엇갈리는 사실 가운데서 진실은 중간쯤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인류의 역사를 보아도 항상 급격한 변화가 오다가도 다시 반작용이 일어나면서 중간 정도에서 타협을 보곤 했다. 애플처럼 호오가 분명히 갈리는 회사에 대한 의견일 경우일 수록 중앙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뉴스 하나를 보자. (출처)


디즈니가 일본 시장에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이다.

디즈니 모바일(소프트뱅크를 기반으로 한 월트디즈니의 MVNO)은 오는 2월 디즈니 스마트폰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 제품의 자세한 사양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개된 사진을 보면 샤프 003SH를 기반으로 한 제품으로 추정된다. 샤프 003SH는 3.8인치 무안경 3D 디스플레이, 1Ghz 프로세서, 960만화소 카메라, 안드로이드 2.2, 1Seg 튜너 등을 탑재한 제품이다. 여기에 6가지 디즈니 고유의 디자인을 가진 케이스가 제공되며 디즈니 위젯등 소프트웨어 적인 부분도 커스터마이징이 가해진다.

디즈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출시는 다소 이례적인데, 디즈니는 이사회에 스티브 잡스가 있어 구글보다는 애플과 관련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별반 특이할 것 없다. 미키마우스와 도날드덕으로 유명한 디즈니사가 자기의 캐릭터를 이용한 스마트폰을 하나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일본에서 샤프사의 제품을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


다만 샤프의 기반 제품은 갈라파고스란 이름으로 유명한 안드로이드 기반 제품이란 점이 특이하다. 디즈니의 개인 최대주주는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로 주식의 7퍼센트를 가졌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분을 가지고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가 멀쩡한 애플을 내버려두고 최대 라이벌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잡스의 성격으로 봐도 보통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 오늘 병가 소식을 붙이면 단지 스티브 잡스가 몸이 아파서 디즈니에 신경을 쓰지 못한 틈에 이뤄지는 일이라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잡스는 죽기 전날까지도 자기가 틀리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참여하고 간섭할 것이니 말이다.

국내 인터넷 언론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디즈니가 애플을 배신?' 혹은 '디즈니가 최대주주 잡스를 무시!' 하는 식으로 적었다. 위에 든 몇 가지 사실로 봐서 얼핏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 대결구도를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의 속성상 한껏 과장이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사실 잡스는 디즈니의 주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그건 픽사의 지분이다. 따라서 픽사에 간섭하지 않은 것처럼 디즈니에 간섭하지 않는 것 뿐이라는 쿨한 주장도 있다. 이쪽도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이런 양극단 보다 그 가운데 진실이 숨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다 근본적인 애플의 전략과 아이폰의 한계가 얽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스마트폰 출시, 애플에 대한 배신?

우선 디즈니가 굳이 왜 캐릭터를 이용한 스마트폰을 내놓았는지 이유를 생각해보자. 두말할 것도 없이 사업다각화와 디즈니 캐릭터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아마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거나 디즈니를 사랑하는 어른들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또한 고유한 위젯을 설치해서 서비스도 받게 하는 등 디즈니에 대한 호감을 심어주는 목적도 있다.

이번에는 애플이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통해 주력하는 목적을 생각해보자. 아이폰은 지극히 표준화된 단일 플랫폼 스마트폰이다. 애플 외에는 일체의 디자인 변화를 줄 수 없고 공동 프로모션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아이폰은 쉽고 편하게 쓰는 만능기기를 지향한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어느 한쪽의 목적으로 특화될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진실은 간단하다. 디즈니의 스마트폰 사업모델과 애플 아이폰의 제조 판매전략이 전혀 일치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놓인 차이점은 그리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대주주 스티브 잡스에게 디즈니 이사회에서 미키마우스 스마트폰을 제안했다고 치자. 둘 사이에 오고갈 대화를 상상해본다.

이사회: 스티브,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미키마우스를 테마로 한 스마트폰을 만들어보려고 하네.
잡스: 그거 좋은 생각군요. 아이들이 좋아하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만들거죠?
이사회: 그래서 말인데 혹시 아이폰의 외관을 살짝 변화시켜 미키마우스 귀 모양을 만들어줄수 있겠나? 바탕화면에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들어있는 위젯도 넣어야 해.
잡스: 뭐라고요? 지금 내 아이폰의 디자인을 바꿔달라고 했소?
이사회: 가능하면 말이야. 아니면 디즈니 케이스를 따로 만드는 것도 좋지. 또한 우리 회사와 직접 연결되는 앱도 있어야 하고, 언제든 그게 바탕화면에 최우선으로 있어야 하네. 벨소리의 기본은 인어공주의 테마곡이 좋을까? 흠... 도널드 덕 버전과 구피버전도 있으면 좋겠는데...
잡스: 분명히 말하지만 내 아이폰은 단 한 개도 손댈 수 없소. 절대 고칠 수 없단 말이오! 디즈니 캐릭터를 원하면 안드로이드로 가시오!


이게 대략 예상되는 전개이자 끝이다. 잡스는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손대서 만든 아이폰의 디자인과 화면배치를 만들었다. 디즈니가 캐릭터를 위한 커스터마이즈와 디자인 변경을 하겠다는 걸 받아들일 리가 없다. 애당초 디즈니의 이 계획은 아이폰의 제품 철학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건 배신도 아무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디즈니는 애플의 라이벌인 삼성이나 모토롤라 대신, 존재감이 약한 일본 샤프의 안드로이드를 이용함으로서 조용히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 애플은 디즈니라는 이름에 밀려 아이폰을 변형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잡스는 두 회사의 서로 다른 이익과 철학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고민해야 되는 수고를 덜었다. 그런 면에서 이 뉴스는 나름 현명한 타협점이라는 걸 보여준다. 디즈니의 배신같은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디즈니의 캐릭이나 마케팅 전략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애플과 아이폰의 다소 경직된 플랫폼 체계에도 문제는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점은 미래에 물밀듯이 나올 지 모를 아이돌 맞춤형 스마트폰이나, 각종 캐릭터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지나친 경직성은 아이폰에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디즈니의 배신이니 하는 점보다 오히려 나는 이 점이 가장 걱정된다.

P.S : 올해부터 이페이퍼포럼(http://epaperforum.com)에 제 블로그글 일부를 정기적으로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전자책과 전자책 컨텐츠를 아우르는 수준높은 곳으로서 유익한 포럼을 자주 여는 곳입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