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때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참 기묘하다. 획기적인 발상이나 파격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이 따지고 보면 이미 한참 전에 나왔던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완벽히는 구현되지 않고 있는 PC의 플러그 앤 플레이 개념을 들어보자. 이건 간단히 말해 주변 기기를 꽂으면 그대로 동작한다는 것이다. 따로 드라이버를 인스톨 할 필요도 없고 세팅이나 어려운 걸 해줄 필요도 없다. 가전제품처럼 그냥 플러그 꽂듯 끼우면 아무 문제 없이 동작하는 주변기기와 부품을 만들기 위한 MS와 인텔 등의 목표가 담긴 구호다.



하지만 이건 사실 말만 새로울 뿐 90년대 8비트 컴퓨터나 게임기에서 전부 구현됐던 개념이다. 당시 나는 일본에서 만든 MSX제품을 쓰고 있었는데 각기 다른 회사 제품이었어도 같은 MSX규격이면 어떤 주변기기든 문제 없었다. 그냥 끼우면 동작했다. 드라이버 설치나 세팅도 필요없었다. 심지어 베이직 언어만 이용해도 그 주변기기를 자유자재로 이용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까지 가능했다.

아이폰으로 촉발된 현재의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로 생겨난 태블릿 시장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것 같지만 그 기본은 역시 한참전에 나왔던 개념이다. 바로 PC와 포터블 게임기 두 가지 특성만 이해해도 모바일의 변화는 전부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이 둘은 PC와 휴대폰을 합쳐놓고 무선인터넷 모듈을 달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애플의 iOS니 안드로이드니, 윈7이니 하고 싸우는 이들 시장에 대해서 이런 의문점을 품을 수 있다. 그냥 한가지 하드웨어에서 다 깔아서 쓰면 안되나? 선택해서 쓴다든가? 말이다.


이미 PC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평범하게 우리는 윈도우를 쓰고 있지만 윈도우XP를 쓰기도 하고 윈도우7을 쓰기도 한다. 나같이 좀 색다른 것에 관심있는 사람은 리눅스도 쓰고, 더욱 매니악하거나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은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인스톨한 해킨토시도 쓴다. 원한다면 제닉스나 유닉스 계열도 사용이 가능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별개의 것이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에도 점점 이런 시대가 다가온다. 다음 뉴스를 보자.(출처)

인텔-마이크로소프트(MS)의 합작품 ‘윈텔’의 한 축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경쟁관계라 할 ARM 진영에 손을 내밀어 눈길을 끈다.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자(CEO)는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가전전시회(CES) 기조연설에서 “‘윈도7’ 운영체제(OS)의 대대적인 성공을 태블릿PC 시장으로 이어가겠다”며 “차기 윈도 OS부터 ARM 코어(설계도) 기반 CPU를 만드는 제조사들과 협력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태블릿PC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성능과 형태, 크기, 소비전력 면에서 선택권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라며 “모바일 컴퓨팅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윈도가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RM은 휴대폰, 스마트폰, 넷북까지 모바일기기 CPU 시장을 움켜쥐고 있는 강자”라며 “결국 MS도 모바일기기에서 ARM의 강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가 현재 가장 많이 쓰는 윈도우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특정한 명령어를 가진 칩, 더욱 정확히 말하면 인텔이 만든 표준형 칩인 X86명령어 기반 CPU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AMD라든가 하는 호환칩 회사도 있지만 주도권은 확실히 인텔이 쥐고 있다. 때문에 이 운영체제는 다른 명령어 구조를 쓰는 칩을 쓴 하드웨어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에 비해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90퍼센트 이상이 ARM계열 칩이다. 영국의 설계회사가 내놓은 이 칩은 저전력을 소모하면서도 처리능력을 높이고 발열을 낮추며 크기를 작게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윈도우가 추구하는 고성능과는 거리가 있었으면 윈도우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MS는 날이 갈 수록 커지는 모바일 시장을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 ARM계열에서도 똑같은 윈도우를 실행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기존의 확고한 주도권을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끌어오겠다는 것으로 막 전성기를 맞은 애플을 양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가 있다.



그런데 이게 뭐?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하고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애플에서 제공하는 운영체제만 내장되어 실행되는데 말이다. 윈도우하고는 상관도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다음 뉴스를 보자.(출처)

해커 Nick Pack은 안드로이드 2.3(진저브레드)을 아이폰 3G로 포팅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밝히며, 본인의 트위터에 구동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Nick은 iDroid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였으므로 iOS와 안드로이드 OS를 선택적으로 듀얼 부팅 시킬 수 있다고 밝혔으며, 3GS와 4 포팅 작업도 진행중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아이폰과 아이패드 역시 하드웨어와는 별개로 다른 외부 운영체제를 구동시킬 수 있다. 비록 애플에서 공식지원하는 게 아니므로 작업이 힘들고 최적화가 좀 떨어질 수 있지만 어쨌든 가능하다. 그리고 위의 기사에서야 안드로이드지만, 윈도우가 ARM용으로 나오고 나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도 윈도우를 돌릴 수 있다. 두 하드웨어에 쓰인 칩셋 역시 Arm계열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나 모토롤라의 드로이드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될까?

결국 가까운 장래에 각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표준 운영체제와 별개로 소비자 각자가 원하는 운영체제로 교체 혹은 다중 부팅 체제로 만들어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지금의 맥북 등이 부트캠프를 이용하면 똑같은 하드웨어에서 OS X와 윈도우를 동시에 쓸 수 있듯이 말이다.

태블릿에 있어서 이런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듀얼코어 칩셋과 고용량 램, 넓은 기억장치가 달린 태블릿이 다중 운영체제까지 소화해낸다면 우리는 한가지 하드웨어에서 윈도우 7(혹은 윈도우8)과 안드로이드, iOS를 동시에 쓸 수도 있다. 부팅을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한 운영체제 안에서 가상머신으로 돌려서도 말이다.



이런 변화는 비록 각 회사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비자로서는 매우 반가운 변화다. 어차피 각 회사는 운영체제 비용을 이미 하드웨어 가격에 반영했다. 그 이상 다른 무엇을 쓰고 마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이다. 그 가운데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고 기술이 발전할 것읻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의 아이패드에서 안드로이드와 윈도우7을 자유롭게 오가며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맥의 OS X나 리눅스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