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몇 가지 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다른 사람이 하는 보통 일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명예는 물론 돈이나 그 어떤 보상도 적게 돌아간다고 치자. 그러면 아마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설령 호기심이나 다른 이유에서 시작해도 곧 그만둘 것이다.

한국의 IT는 나름 많은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관련 산업도 그렇거니와 많은 수준높은 블로그의 탄생과 운영 역시 대단하다. 선진국인 일본이나 고성장중인 중국도 한국 정도의 블로그 수준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얼마전 만난 중국의 블로거들은 아직 그저 포털 주위에서 취미로 글을 올리는 정도였다. 제대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쓰는 블로그 문화에서 한국은 분명 세계에서 수준급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한국의 IT와 블로그 문화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관점을 확실히 드러내며 유머있고도 날카로운 논리를 내세운 IT평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기존 IT블로거들이 간혹 평론글을 쓰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다수는 그저 리뷰 아니면 감상수준에 머물렀다.

IT평론가인 나 - 니자드의 출현은 어쩌면 그런 공백이 가져온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웃 블로거 주작의 소개로 우연히 IT관련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 인기를 얻게 된 나는 이후의 방향을 고민했다. 어떻게 해서 IT블로그에 첫발은 성공적으로 딛었지만 솔직히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이대로 애플 관련 이야기를 쓰는 것만으로는 향후 발전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나는 다른 유명 IT블로그를 찾아가 살펴보았다. 깔끔한 사진과 담백한 글, 그리고 각종 제품의 리뷰와 기능 해설 매뉴얼 같은 포스팅이 대부분이었다. 대기업 제품을 써보고 사용감상을 올리거나, 특정기업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글이 많았다.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한 다리 건너 다른 관련 파워 블로거에게 도움과 조언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잘 되어 봐야 경쟁자일 뿐이고, 나같은 신진 <듣보잡> 블로거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기 귀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거절당한 것이 내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기필코 여기서 성공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도움은 바랄 수 없으니 나만의 길을 찾기로했다. 거기서 생각해낸 것이 평소 즐겨읽던 외국의 저명한 IT평론과 컬럼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이코노미스트의 컬럼 들은 재미있는 풍자속에서도 날카로운 IT전망과 비평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는 유독 그런 IT 전문평론가가 없다는 걸 깨닫고 그 길을 가기로 했다.

나는 내 블로그 글의 성격을 셋으로 나눴다. 우선 <현재>, 최신 뉴스를 가지고 그 위에 내 나름의 해석을 붙여 관점있는 비평을 한다. 다음으로 <과거> 지금 잘 나가는 기업과 인물의 옛날 역사를 연구해 그 속에서 역사적 교훈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미래>, 각 제품과 기업동향을 연구해서 미래에 어떻게 나갈 것인지 전망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또한 첫번째 집중연구 대상으로 아이폰을 히트시킨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선정했다.



소설가라는 주업조차 한시적으로 접어버렸다. 때로는 일 때문에 새벽에 들어와서도 안 마시던 커피를 마셔 잠을 쫓으며 포스팅 글을 썼다. 내 목표는 단순한 블로그글 수준이 아닌, 유명 외국잡지 수준의 글이었다. 동시에 차곡차곡 쌓이면 바로 책으로 낼 수 있는 수준의 글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블로그보다는 책을 목표로 한 글을 썼다.

결과적으로 내 이런 구상은 성공했다.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매달린지 한달이 좀 지나서 나는 다음 티스토리 IT분야 1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두달 뒤에는 웅진출판사에서 메일이 왔다. 목표로 했던 관련 단행본을 내자는 출간제의였다. 몇가지 우여곡절 끝에 12월 3일, 웅진 지식하우스에서 <애플을 벗기다>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어 순조롭게 팔리고 있다.



이때쯤 나는 스스로를 IT평론가로 정립했다. 처음에는 다른 IT블로거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려했지만 분명 내 글은 다른 블로거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차라리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IT평론가란 듣기에도 좀 생소한 이 분야는 한국에서 아직 꽃피지 못한 분야다. 주로 대학교수나 관련 연구소장 등이 이 역할도 하고 있을 뿐, IT평론가가 주업인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블로거 가운데는 거의 전무한 듯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알아주지도 않고 금전적 이익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IT평론가는 논점과 비판정신이 생명이다. 그런데 돈이 되는 기업의 리뷰나 체험기 등은 필연적으로 광고나 홍보를 요구한다. 평론정신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요구와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 월등히 인정받는 IT평론가가 출현하든가, 기업이 보다 장기비전을 보고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나 역시 상당수의 돈이 되는 리뷰와 광고요청을 IT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거절해야 했다.

연말이 되어 많은 분야에서 블로그 대상 투표가 시작되었을 때도 나는 그다지 큰 기대가 없었다. 어차피 나는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면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블로거로서 IT평론가는 나 한사람일 뿐이다. 나는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지 7개월이 좀 넘었으니 인맥도 없다. 어떤 기업이든 제품이든 거침없이 비판했으니 기업이나 언론이 나에게 호의적일 리도 없다. 특정 회사와 제품을 지극히 사랑하는 팬보이들이 나를 지지해줄 리도 없다. 나는 그저 외롭게 좋은 글을 쓰고 올리는 데만 전력을 다했다. 그 외에는 무엇도 나에게 힘을 줄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기쁜 소식이 들어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하는 2010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에서 내가 IT분야 최우수상에 선정되었다는 낭보였다.(잠시 그쪽 착오로 최우수상이 아닌 우수상이라 잘못 게시된 헤프닝도 있었다.) 과분한 상을 준 주최측과 이때까지 나를 응원해준 모든 이웃과 독자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역시 열심히 노력하면 아직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IT평론가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첫 발자취를 내가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더불어 요즘 블로거 사이에서도 정식으로 IT평론글을 써보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것도 기쁘다.



다음 티스토리에서 2010 우수 블로거로 선정되었다. 한해 동안의 활동이 인정받아 이런 영광을 얻게 된 것 같다. 또하나 2010년 다음뷰 대상 후보로서 IT분야에 후보로 올라가 있다. 처음에는 단지 후보로 올라간 것만해도 영광이었다. 그렇지만 새삼 생각해보니 이것만으로 내가 만족해버리면 안될 것 같다. 왜냐하면 뒤를 이어 IT평론가를 꿈꿀 몇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들에게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가 아니라도 감히 IT평론가가 대상을 타는 그날을 꿈꾼다.



한국의 IT평론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아직도 한국에서 블로그를 통해 IT평론가를 한다는 건 험난하다. 남들 다 하는 제품리뷰나 기업 협찬도 조심해서 해야하고, 함부로 광고성 글을 올릴 수도 없다. 돈과는 인연이 먼 셈이다. 그러나 최소한 그렇다면 명예라도 확실히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를 맞아 나는 관심분야를 게임까지 넓혀 게임평론과 재미있는 게임리뷰도 올려볼 생각이다. 더불어 비평이 탁상공론이 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취재와 오프라인 활동을 해볼까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특정 기업을 밀착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블로그 활동도 할 것이다.

다만 무엇을 하든 내가 IT평론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통해서 한국에서 과연 IT평론가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 지를 시험해보려고 한다. 또한 잠시 접어두었던 소설을 써서 전자책이란 영역을 개척해보려고 한다.


한해동안 애독해주고 격려해주신 독자와 이웃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새해에도 부디 변함없이 힘을 주시길 바란다. 또한 혹시 내가 이런 초심을 잃어버리고 방황한다면 꾸짖어주기 바란다.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쓰고, 독자를 위해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란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