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을 좋아한다. 굳이 내가 소설가란 직업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이란 나와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창조해내고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흔히 접하기 힘든 예술행사 하나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광주에 마련된 쿤스트할레다.


'쿤스트할레'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것이 예술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독일어 특유의 딱딱함 때문인데 이것이 실은 예술공간- 아트홀이란 뜻이란 것에 약간 놀랐다. 그렇지만 같은 의미의 단어일 지라도 그 언어의 국적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국의 베이스볼 과 일본의 야큐는 같은 야구가 아니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쿤스트할레 역시 아트홀과는 다른 차이가 느껴졌다. 영어의 아트홀보다 강건하면서도 건실
하고 실용적인 그런 느낌 말이다. 어쨌든 이 쿤스트할레 안에 전시된 작품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처음 인상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광주에 도착한 후 나를 맞아준 것은 이 컨테이너 박스였다. 예술관이라는 이미지에 무엇인가 고급스러운 건물을 기대했던 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쿤스트할레에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하는 안내자 앞에서 나는 <그런데 쿤스트할레는 어디 있죠?>라고 물을 뻔 했다. 저 컨테이너 박스가 설마 쿤스트할레의 작품 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공사용 외부 가건물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컨테이너 건물이 광주 쿤스트할레의 거대한 건물이자 작품이었다.



이 안에 전시된 작품은 이토이(etoy) 코퍼레이션이란 창작집단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은 흔히 설치예술이라고도 하는 성격의 작품을 만든다. 미술이나 음악, 조형물 같은 규격화된 예술이 아니라 현대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물건과 첨단 기술까지 동원한다. 상징화된 형상물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다.

어떻게 보면 한때 우리를 열광시켰던 비디오아트의 대가 백남준의 작품과도 성향이 비슷하다. 실제로 이토이의 일부 작품은 직접적으로 백남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 이 안에는 어떤 전시물들이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제일 먼저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미션 인피니티 타마다' 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아주 귀엽고 단순한 스피로폼 볼이다. 마치 축구공처럼 찰 수도 있고 굴리기도 하고 열어볼 수도 있다. 하얀 색깔이 어쩐지 겨울날 굴리는 눈덩이 같기도 하다. 저절로굴러다니는 이 하얀 공들은 아마도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그냥 웃으며 즐기면 되는건가? 라고 굴러다니는 공을 보고 건드려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을 통한 의미는 가볍지만은 않다. 타마다란 일본어로 영혼의 구슬이다. 영혼들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어떤 공간(연옥)에서 흘러다니고, 일부는 끈에 묶인 채로 충전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중앙에 있는 단말기에서는 영상과 함께 스피커로 음향을 내보낸다. 즉 이 작품은 우리의 영적 삶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이 스티로폼을 움직이는 건 인간의 영혼도, 어떤 신비한 에너지도 아니다. 이토이의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운영체제와 컴퓨터를 가지고 제어하는 것이다. 애플의 맥북을 가지고 제어에 열중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재미있다.


이토이는 기업이자 예술집단이다. 실제로 주식을 발행하며, 예술품의 가치를 주식으로 환산한다. 누군가 이토이의 작품을 사면 그 가치는 달러 등으로 표시되는 게 아니라 이토이 주식으로 표시되어 증서가 붙는다. 어느 정도의 이윤을 추구하는 예술집단이라는 의미지만 이런 행위 자체 역시 파격적인 행위예술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렵게 말해서 주식이지 쉽게 말하면 그냥 싸이월드의 '도토리'로 생각해도 된다.

이토이 회사의 주식가치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래프로 표현한 도표는 그런 면에서 흥미롭
다. 예술가 집단이 스스로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계산한다는 개념인 것이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조건에 따라 모이고 흩어져 결성되는 창작집단은 꼭 프로젝트 팀처럼 느껴진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모든 예술을 표현하고 거주도 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삶도 하나의 행위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컨테이너에 집착하는 건 쉽게 예술품을 이동할 수 있는 편의성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그냥 컨테이너에서 나왔더니 낯선 다른 공간에 있더라. 이런 경험을 느껴보고 싶다는 희망이다. 나름 타임머신 같은 공간이동을 하는 느낌이 아닐까.



이토이는 설치예술이자 행위예술을 지향하는 듯 하다. 이들은 자기들을 둘러싼 모든 흥미있는 일을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그것도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말이다.

이들이 만든 것 가운데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토이워'라는 작품이 있다. 미국의 장난감
회사 가운데 etoys란 회사가 이 예술집단을 상대로 상표권과 인터넷 도메인 권리를 둘러싸고 소송을 걸었다.

한쪽은 돈 많고 공격적인 판매기업이고 다른 쪽은 예술을 위한 가난한 예술집단이다. 사실
재판정에 가면 어느쪽이 불리할 지는 뻔했다. 그러자 예술집단 이토이를 옹호하는 네티즌들이 일제히 간단한 해킹프로그램을 써서 기업 이토이의 사이트를 공격했다. 정상적인 주문접수와 판매가 불가능해지고 기업이미지마저 손상된 기업 이토이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하고 말았다.
칭작집단 이토이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10분짜리 영상물로 만들었는데 그
것이 바로 '토이워' 다.



우리가 보통 예술이라고 칭하는 것은 대부분 세상과는 좀 동떨어진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음악이나 미술, 조각, 문학도 그렇다. 하지만 이토이의 예술은 이렇듯 우리의 인생과 그가운데 흔히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제활동 영역까지 포함한다. 이들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각 나라마다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장치등을 가지고 독특한 예술을 만들어낸다.



일본의 빠칭코 기계에서 힌트를 얻은 이 기계 역시 그렇다. 행운의 숫자 7과 각종 아름다운 기호가 그려져 있어야 할 슬롯 안은 죽음과 알 수 없는 기호로 채워졌다. 주황색과 붉은 색으로 울긋불긋 아름답게 보여야 할 기계는 삐져나온 전선과 프레임으로 인해 기괴한 느낌을 준다. 백남준의 작품 '패신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재해석했다는 이 작품에서 어떤 이미지를 볼 수 있을까. 아마도 현대 물질문명의 기계와 행운 두 가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는 건 아닐까.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준 담당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토이의 멤버들은 특정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지전을 태워 죽은 자를 보내는 중국의 풍습에서 착안해서 이렇게 이토이의 독자적인 지전까지 만들었다. 판에 박힌 서구 종교가 아닌 다양한 나라들의 문화와 정신을 통해 영원과 윤회, 불멸에 대한 고찰을 하는 것이 이들의 예술 방향이다.

움직이며 직접 이렇게 체험하는 예술공간과 작품은 매우 드물다. 참으로 흥미있는 시도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기회가 되면 광주에 가서 한번 이런 예술적 경험을 해보기 바란다. 이어지는 다음편에서는 예술가와의 인터뷰와 다른 좋은 작품에 대해서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