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박스에 마련된 이토이 코퍼레이션의 작품을 보자. 이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적어도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출근하거나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참회하는 종류의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이토이의 약력을 보면 이들은 범상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이테크와 내세, 영원과 불멸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기존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무엇인가 색다른 시도와 경험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토이의 강점은 현대 테크놀러지 문화의 문제점에 비판적인 시각과 기술적인 해결책을 함께 제시한다는 데 있다.
이미 1996년에 이토이는 알타비스타, 인포시크, 라이코스 등과 같은 글로벌 서치 엔진에 침투, 다수의 인터넷 사용자를 납치하여 기업들이 설계한 인터페이스 이상의범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디지털 하이잭에서는 수 천 명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토이가 설치한 웹사이트로 이동하도록 하여, 인터넷 시대에서의 전복행위란 권력구조의 취약점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과 더욱 분리가 어려워지는 선진기술도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술집단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해커수준이다. 아마 이들이 이 기술을 예술이 아니라 광고에 이용했다면 우리는 예전에 더 악랄한(?) 스팸과 성인광고에 시달렸을 지도 모른다. 벤처기업을 차렸어도 되었을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들은 사업이 아닌 예술을 하고 있다.

이토이의 이번 전시팀 리더를 만나 인터뷰를 해보았다. 사진의 중앙에 계신 분이다. 스위스 국적으로 이름을 '자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서구의 예술가 타입인데 어쩐지 음악쪽 아티스트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통역에는 미소가 매력적인 정경화 씨가 맡아 주었다. 영어로 이뤄진 인터뷰의 핵심 부분을 소개한다.



Q: 당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관객들이 보고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다. 각자 느낀 대로가 정답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담고 싶은 정답이 따로 있는가?

A: 우리는 자유로운 작품을 통해 관객과 공감하고자 한다. 각자 편하게 보고 느낀 것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Q: 예술말고 당신이 사적으로 가장 주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A: 음... 아마도 내 아들?

Q: 관객들이 때로는 당신 예술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게 뭔데? 라고 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을텐데, 어떻게 생각하나?

A: 우리 예술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도 나올 수 있다. 그런 사람들도 최소한 재미있다. 혹은 이런 것이 있다 정도만 느낀다고 해도 충분하다.


장치예술이란 특성상 이들의 작품은 일단 구태의연한 작품이 아니다. 직접 만져볼 수도 있으며 음악과 영상을 적절히 이용한다. 때문에 최소한 흥미는 유발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즉 딱딱한 그림이나 조각상 보다는 재미있어도, 헐리우드 영화나 전자오락기 수준의 재미는 줄 수 없다. 쿤스트할레는 어쨌든 예술공간이지 극장이나 아케이드 센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토이의 작품은 말 그대로 예술품과 장난감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붉은 색의 이 자동판매기를 보자. 색깔부터 평범하지 않은 이 자동판매기는 공짜약(FREE DRUGS)! 이란 이름하에 모든 사람에게 치유제를 준다. 자세히    보면 저 비닐봉지 안에는 붉은 색 진통제가 들어있다. 통증을 무디게 해주는 저런 약이야 말로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동시에 예술가들이 즐겨쓰는 어떤 각성제를 연상케하는 효과까지도 준다.




이번엔 밖으로 나가보자. 또 하나의 컨테이너 박스가 보인다. 안쪽에 설치된 예술품 이외에 야외 설치물이다.
블러드 탱크. 자궁을 뜻하는 단어가 들어있는 이것은 마치 원료가 들어가면 제품이 나오는 기계처럼 생겼다. 5세에서 11세 사이 아이들만 특수 허가를 받고 들어갈 수 있다는 데 안쪽에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11세 이상이라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탐험을 하게 된다. 미술과 미래, 무한성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인데 간단히 보면 그냥 놀이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커다란 파이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게임 마리오 브라더스 속에 나오는 연결된 파이프처럼 닫혔지만 무한히 연결된 공간 말이다. 더구나 중앙에 있는 커다란 공간은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편한 것은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에 바로 자궁을 그리워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귀소본능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는  뜻이다.



미션 이터니티 사코파구스. 영원을 상징하는 컨테이너다. 가장 신비적이고 묘한 분위기가 드는 이 예술품은 2006년에 만들어졌다. 팜플렛에 적혀진 문구를 일부 소개해본다.

미션 이터니티는 디지털 시대에서 정보와 예술, 기억, 죽음 등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온,오프라인에서 만들어낸 데이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쿤스트할레 광주에서의 전시를 위해 이토이는 죽은 자에 대한 도발적이고 불안전한 기념비로 앞마당 아트광장에 6미터 길이의 컨테이너 석관(SARCOPHAGUS)를 설치할 예정이다,. 데이터가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정보가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를 수반하는 본 프로젝트는 인공두뇌 문화의 초기 옹호자였던 티모시 리어리의 디지털 유해를 필두로 이미 시작되어 왔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 내가 죽은 후에 나는 어떻게 될까. 모두 다 잊어버리고 허무하게 사라지는 게 아닐까. 이런 공포는 종교를 만들었고 각종 기념물을 만들었다. 석관이나 기념비를 세우고 유물을 남기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다. 이토이의 이 작품은 디지털에서의 유물을 남기고자 하는 시도다.



즉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블로그의 글, 여기 저기에 남긴 댓글, 카페 등에서 한 활동 등이 우리가 죽은 후에 의미없는 정보의 쓰레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에게는, 그리고 남은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디지털 발자취이자 유물이 된다. 이 프로젝트는 그래서 죽은 후의 데이터를 보관하는 유효하고 예술적인 수단을 제시해 준다.
 



사람의 두개골을 본뜬 조형물과 고통을 게임과 접목시킨 전자기기, 눈의 잔상현상을 이용한  시각효과를 보여주는 작품 등 이토이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재미와 함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던진다. 따라서 관객들이 자유롭게 생각하라는 예술가 자이의 말은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유연함을 상징한다. 정형화된 어떤 것이 아닌 이런 형식의 예술은 만드는 쪽에서도 재미있고 보는 쪽에서도 흥미깊다.


죽은 자를 위해 종이돈을 태워 노자를 보태주는 중국의 전통풍습은 무엇을 상징할까. 영원과 불멸을 위해서 우리는 현실을 무시해서 안된다. 저승갈 때 조차도 돈이 필요하지 않는가? 현실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 내세에서도 성실하고 좋은 삶을 살게 된다. 타버린 종이돈의 재처럼 사람도 결국 죽어서 흙과 재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영혼은 자유롭고 영원히 남게 된다. 석관에 기록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고, 작은 공처럼 어딘가를 굴러다니며 말이다.
 


이번 쿤스트할레의 이토이 작품은 어렵게만 생각하는 예술을 좀더 가깝게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좋은 작품이 빛고을 광주의 상처가 어린 장소에 전시된 것은 상징성이 크다. 아무쪼록 그곳에서 자유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고결한 영혼이 편하게 쉬며 그 정신이 불멸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