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권이라는 건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중요한 개념이다.

본래 상표, 즉 브랜드라는 것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믿음과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본질은 하나도 차이가 나지 않는 검은 설탕물에 불과할 지라도 그것에 탄산을 불어넣고 <코카콜라>라는 상표를 붙이면 갑자기 미국이 지닌 전통을 상징하는 음료수가 된다. 또한 거의 같은 방식의 탄산 설탕물에 <펩시콜라>라는 상표를 붙이면 또다른 이미지를 받는다.

제품만이 아닌 회사이름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어도 어떤 회사가 만들었냐에 따라 그 신뢰성이 달라진다.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일명 <맥가이버칼>도 중국의 어느 짝퉁 회사가 만든 것과 스위스 <빅토리녹스>의 상표가 달려 있는 것에서 받는 가격차와 대우는 천지차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에서는 제도로서 제품과 회사이름을 이 상표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소비자는 이 브랜드를 보고 제품을 안심하고 구입한다. 그러다보니 이 브랜드를 위조하거나, 유사품을 만들거나,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느낌을 나는 브랜드를 만들어 어떻게든 편승하려고 하는 기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전부 법적으로 퇴출하고 싶은 짝퉁 회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이름의 회사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다. 악의적으로 그렇게 이름을 지은 곳도 있지만, 상관없이 그냥 비슷해진 곳도 있으며, 분야가 다른 곳도 있고, 훨씬 전부터 그 이름을 써왔는데 상표권 등록만 안한 곳도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이 악의성이 있고 없는 지 상관없이 고소를 남발하거나, 아예 정당한 고소까지 체념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생긴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도 대충 비슷하면 생각나는 연상작용이 있다보니 상황은 더 미묘해진다. 중국에서 삼성 휴대폰이 인기일때 나돌던 가짜 상표 가운데 유명한 <SAMMUNG> 같은 건 참으로 웃음만 나오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웃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같다. 다음 뉴스를 보자. ( 출처 : 매일경제 )


CNN머니 인터넷판은 27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이 '페이스캐시'라는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를 상대로 사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 앱을 개발한 싱크컴퓨터 최고경영자(CEO) 아론 그린스펀은 페이스북의 조치에 이의신청을 제기하기 위한 시간을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그린스펀은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주커버그의 하버드대 동창으로 지난해 페이스북 개발에 힘을 보탰다고 주장해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그린스펀은 "페이스북의 조치는 이해가 가지만 특허 관련 자료를 조사해보면 '페이스(fac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명이 수천개나 된다"며 "이번 소송은 우리 회사 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페이스북은 최근 자사 사명중 '북'에 대해서도 조치를 강구, 최근 교사들 커뮤니티 '티처북닷컴' 사이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이달 초에는 여행사이트 '플레이스북' 사명을 '트립트레이스'로 바꾸도록 했다.

별 건 아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 자산인 회사이름의 상표권을 지키지 위해 애쓴다는 뉴스다. 그런데 의도는 이해하지만 방법은 매우 무리가 많은 듯 싶다. 소송의 남발이라는 낭비가 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얼굴 또는 표면이란 뜻의 페이스(Face)와 책이라는 뜻의 (Book) 북, 이 두가지 매우 대중적인 일반명사를 결합한 회사명을 가졌다. 주력 어플리케이션 이름도 동일하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유명해졌으니 앞으로 창업하는 IT회사는 이 두 가지 단어를 마치 금기어처럼 전혀 쓰지 않아야 하는 걸까? 만일 이것이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법적 금칙어(?)가 존재할 것인가.


<코카>란 단어와 <콜라> 란 단어도 쓸 수 없고 <초코> 와 <파이> 란 단어마저 쓸 수 없을까? 상표권은 분명 보호받아야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단어를 아에 못 쓰게 해서 금지하다가는 수많은 모순과 불합리를 만나게 될 것 같다. 하긴 바로 그래서 소송을 통해 악의성을 증명하자는 것이지만... 어쩐지 지극히 미국적인 법정 만능주의와 낭비적인 소송이 될 것 같다.

페이스북과 회사이름 비슷하면 고소당한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다. 얼마전에도 우리는 인텔이 <인텔 인사이드> 와 유사하다며 엉뚱하게도 <디시 인사이드>를 고소했던 일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분야가 다르니 착각할 우려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인텔의 주관적 판단으로는 아니었다. 그러면 언제든지 고소의 여지가 있으니 이건 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국내에도 화장품 업체인 <더 페이스 샵>이 있고 <바로북> 같이 끝에 북이란 단어를 쓴 업체가 존재한다. 심지어 애플에는 기술적으로도  비슷한 의미의 서비스인 <페이스타임>이 있다. 그런 업체들은 모두 이런 페이스북의 소송 을 주의깊게 지켜봐야 될 참이다. 상표권이 어디까지 적용되고 어디까지는 적용되지 않을 지는 이제 누군가 딱 잘라서 설명해주기 모호하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일일히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서 가려야만 할까?


이번 페이스북 소송을 보면서 내가 느낀 점은 바로 이런 상표권의 확장이 가져오는 불합리성이다.
천하의 애플조차 처음에 <애플 컴퓨터>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 비틀즈가 만든 음반회사인 <애플 레코드>와 협상을 해서 음악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이름을 쓸 수 있었다. 애플 레코드가 먼저 시작했고 훨씬 인지도가 있기에 신생업체에 불과한 애플컴퓨터가 그 브랜드에 편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통해 애플은 음악사업을 했으며 회사명을 <애플>로 바꿨다. 이제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비틀즈의 <애플 레코드>보다 유명해진 상황에서도 그런 상표권 합의을 어겼기에 막대한 합의금을 물어주고,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야 애플은 그 이름을 쓸 수 있었다. 상표권의 보호가 가져온 불합리는 바로 이런 점에 있다.


이것이 페이스북의 이번 소송 행보를 우리가 관심있게 봐야 하는 이유다. 과연 회사이름이 비슷하기만 하면 약간의 의혹만 가지고도 소송 당하거나 회사 이름을 바꿀 것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상표권이 보호하는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많은 것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