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무엇이든 극단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기초 교육과정이 천자문부터 시작해 사서삼경을 배우지만 마지막에는 중용(中庸)으로 끝난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무엇이든 학문에서 배운 원칙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유연성 있게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탈옥에 대한 합법판결이 난 이후 애플의 행보는 이런 동양의 미덕과는 자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법원(국회도서관)의 판결과는 별도로, 애플은 아이폰을 비롯한 자사제품의 탈옥 사용자를 보다 철저히 색출(?)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우선 다음 뉴스를 보자. ( 출처 : 아이티 뉴스 )

애플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탈옥 차단을 위해 적극 나설 전망이다.
애플이 탈옥(jailbreak)이나 해킹된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을 금지하는 다양한 인증 방법을 특허 출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특허는 휴대폰 등에 저장된 신용카드 번호나 비밀번호 등의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고 도난 기기를 추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폰 분실자는 이 기술을 이용해 휴대폰에 저장된 민감한 정보를 애플 원격 저장장치로 전송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또, 해킹이나 탈옥, 잠금장치해제 기술을 적용한 휴대폰을 감지하는 기술도 담고 있다. 이 기술은 메모리 이용실태를 체크해 갑자기 메모리 이용률이 늘어날 경우 해킹 프로그램의 작동 여부를 조사하는 방식이다.

탈옥폰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특허 기술도 포함돼 있다. 아이폰이 분실된 것인지 탈옥된 것이지 판단할 수 없을 경우 애플이 고객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휴대폰 사용을 중지시킬 수 있는 기능이다.

아직은 특허출원 중인데다 애플이 정확히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밝히지는 않았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이 기술이 도난당하거나 분실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보안을 강화해주고, 불법적으로 정보를 빼가는 것을 막아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면 뒤에 무엇이 감춰져 있을 지도 한번 생각해보자. 선거로 뽑지도 않았고 권한을 위임해 준 바도 없는 애플의 관리센터와 경영진의 정책과 판단 하나에 우리가 쓰는 모바일 기기의 제어권한 자체가 박탈되거나 제한되는 것이다.


단지 맘에 들면 안사면 되지 않냐고 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식이면 인터넷 각종 사이트 가입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거나 네이트에서 개인정보를 빼내려 해도 문제삼을 필요없다. 싫으면 사이트 가입을 안하거나 네이트를 안 쓰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항의하며 업체에게 시정을 촉구한다.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애플에게도 마찬가지다. 애플에서는 탈옥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분명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으며 항소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AS 만 해주지 않겠다는 부분만 확실하면 되지, 이렇게 최신 기술을 이용해 자꾸만 탈옥 자체를 범죄자 색출하듯 잡아내려 한다는 건 지나친 통제다.

아직은 존재가 확실치 않지만 애플의 감시자 기술인 <탈옥 워터마크> 기술도 문제가 있다.

애플에서 얼마 전 개발자들에게 iOS 4.1 beta 버전을 배포했다. 이 새로운 SDK에는 몇 가지 새로운 기능들이 포함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탈옥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iOS 4.1 beta 버전에서는 iOS 4.1에서 탈옥을 할 때, 아이폰, 터치에 워터마크가 표시된다고 한다. 워터마크는 사진을 보다보면 흐리게 찍혀있는 로고, 이름 이런 것이 워터마크다. 탈옥된 아이폰, 아이팟 터치에 나타나는 워터마크는 복원 후에도 지워지지 않으며, 애플 서비스 센터에서도 이것을 체크한다고 한다.


또한 아이폰의 가속도 센서와 내장된 각종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아이폰에 어떤 인위적인 충격이 가해졌는지 이것을 기록에 남기도록 하는 기술도 특허신청을 했다. 이 기술의 목적은 AS시 소비자 과실을 가려내는 것으로 고장난 아이폰이 그 전에 과도한 충격에 노출되었다는 증거가 남으면 무상 AS를 거부하기 위함이다. 달리 이 기술의 쓰임새는 없다. (더 자세한 것은 이전 포스팅 - 애플이 만들어낸 반갑지 않은 혁신기술은? 을 참고 하기 바란다.)

이 모든 것이 실용화되면 우리는 좋아서 선택한 아이폰을 쓸 때는 정말 즐겁지만 고장나는 순간부터 지옥을 맛보게 된다. AS 센터에 갈 때마다 법정에 출두하는 기분이 될 것이다. 혹시 내가 조금이라도 가속도 센서에 무리를 줄 만큼 떨어뜨린 적은 없는가, 습기에 노출되어 침수라벨은 반응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기분을 맛보기 위해 아주 잠깐 탈옥을 한 것이 기록에 남아서 무상 AS를 거부당하지 않을까. 말이다.

이렇게 전전긍긍하게 될 소비자에 비해 애플은 아주 공정(?)하게 하드웨어의 로그 기록만 보고 기계적으로 판정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가속도 센서와 자이로스코프의 기록에 의하면 애플에서 정한 허용기준치 이상의 충격이 가해졌군요. 무상 AS 불가입니다.>
<침수라벨이 변했네요. 무상 AS 불가입니다.>
<탈옥했다는 워터마크가 남았군요. 무상 AS 불가입니다.>

순수익률 40퍼센트가 넘는 애플은 다시 소비자에게 들어가는 AS비용을 아낄 수 있고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소비자들은 이런 정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저 애플에 순종하고, 돈 내라면 내는 것뿐? 아! 차라리 기회와 돈이 되면 애플 주식이나 사는 게 났겠다. 그럼 차라리 애플이 아끼는 돈으로 내 주가가 오르고 배당금이라도 떨어질 것이 아닌가?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주장했고, 미국의 판결에서도 나왔듯 탈옥 자체는 합법이다. 또한 돈을 주고 구입한 아이폰의 편리한 내장 센서들이 구입자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건 불법이다. 구입자는 그 센서에 대한 권리도 가진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허락하지 않는 정보를 센서가 함부로 아이폰의 메모리에 기록하거나 애플의 관리센터에 전송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가속도 센서나 자이로스코프 센서가 편리한 게임이나 기능을 제공하는 건 괜찮다. 그건 사용자가 허락했으니까. 그러나 왜 사용자 개개인의 허락도 없이 충격 정보와 탈옥 정보를 함부로 지워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긴단 말인가? 그것도 개인이 산 개인 소유물에 말이다.

더구나 아이폰 메모리 이용실태를 파악해서 이용률이 늘어나면 탈옥으로 간주한다? 이건 거의 실시간으로 감시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한 것이다. 애플은 우선 이용자 개개인의 동의부터 확실히 얻기 바란다. 빅브라더도 아니고 애플이 개인 사용자 아이폰의 메모리 사용량까지 일일히 체크한다는 나는 그런 것에 동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애플은 아이폰을 판 것이지, 빌려준 것이 아니다. 단순히 애플은 제품을 판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차라리 애플 제품 렌탈 서비스를 하나 따로 만드는 게 났다.
소비자들이 훨씬 덜 헛갈릴 테니 말이다.


아이폰 최신 탈옥차단기술, 과도한 통제다.

이렇게 침수라벨부터 시작해서 애플은 기술을 통한 밀고자, 혹은 감시자 시스템을 굳건하게 하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든 통제되는 하드웨어와 함께 이것은 하드웨어로서 밀고자를 키우는 공포정치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정책은 도청된 데이터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각국 법정신과도 배치된다.


나는 애플의 이런 지나친 통제 정책에 반대한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나라의 모든 정책을 찬성해야만 애국자가 되는 건 아니다.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던 사람들도 애국자였다. 애플을 사랑하는 사용자라고 해도 개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범하는 잘못된 정책에는 반대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탈옥은 단순히 불법 복사 앱을 쓰려는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훨씬 다양한 요구와 쓰임새가 있다. 글이 너무 길어질 듯 싶으니 그 부분은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