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보는 외국 IT칼럼리스트 한 명의 글이 있다.

이 사람의 글은 대단히 애플편향적이다. 모든 사건을 애플 중심으로, 그리고 애플의 입장과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며 글을 쓴다. 이 사람의 글을 보고 있으면 애플이 세상에서 제일로 멋있고, 혁신적이며, 이익을 잘 챙기고 있다. 반대로 애플에 대항해서 싸운 모든 기업과 개인은 멍청하거나, 독선적이며, 자기기만과 위선에 가득 차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이 사람의 글도 가끔은 애플의 잘못을 혹독하게 지적하곤 한다. 다만 그 잘못은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없었을 때 애플 경영진이 벌인 일이다. 예외는 없다. 그 외의 모든 사건에서는 일방적으로 애플이 현명하고 멋진 결단을 내렸다고 해석한다. 맞다. 이 사람은 사실 애플편향적인 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 편향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의 컬럼을 좋아한다. 이 사람의 너무도 분명히 편향된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재미있고 위트에 가득 찼으며, 때로는 높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어차피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기에 의견의 방향성은 내가 알아서 걸러 읽으면 그만이다. 나는 이 사람이 보여주는 시각과 해석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가 좋은 글을 쓴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우리 모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상대를 좀 인정했으면 한다.
이건 IT문제일뿐 종교가 아니지 않는가?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에게는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분이 희대의 석학이며 멋드러지고 교양있는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동시에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스님이 평생을 걸쳐서 쓴 불교서적이 우상숭배 허접쓰레기 글로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중립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양식없는 판정을 내리게 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요즘 내가 서론을 좀 길게 가져간다. 오늘은 최근의 애플 관련 뉴스 몇 개를 종합적으로 묶은 관점을 하나 던져보고자 한다. 바로 애플 제품의 해킹- 아이폰의 탈옥,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PC에 인스톨하는 해킨토시에 대해서다.


아이폰의 탈옥이란 간단히 말해 사용자가 애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막아놓은 기능을 활성화시켜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팟 터치 등에서 사용자의 편의와 제품의 안정성, 앱의 수익성 보장, 자사 통제력 유지, 배터리 성능 등을 이유로 여러 기능을 제한했다. 이것을 일련의 해커들이 소프트웨어적으로 깨뜨리고 모든 기능을 쓸 수 있게 했으니 그게 바로 <탈옥>이라 불리는 해킹이다.

그동안 이 해킹에 대해 애플은 특별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분명 이것은 애플이 규정한 이용규약에 위반되므로 계약위반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애플의 제품보호와 AS는 받을 수 없다. 이것에는 별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단순히 이렇게 해킹을 해서 기능을 활성화한 자체가 저작권법을 어긴 <불법>이냐 아니냐 였다.

애플은 법정까지 끌고 가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불법이라는 암시를 주려고 노력했다. 이에 사용자 일부와 법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생겼다. 이러는 동안 애플은 사용자의 이익과 편의라는 명분으로 더욱 통제를 강화했다.

나는 이전 포스팅 <애플의 통제에서 벗어나면 그건 불법인가?> 란 글을 통해 이것이 단순한 이용약관 위반일 뿐 다른 불법복사나 불법 컨텐츠 이용을 수반하지 않는 다면 결코 형사상의 불법이 될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때 댓글 가운데 많은 분들은 그 자체가 불법이라고 말했으며, 법을 공부하셨다는 분은 저작권 조항까지 들며 불법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법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법에는 조문 이상으로 그 법이 추구하는 법정신이란게 있음을 알고 있다. 때문에 저작권법의 정신에 의하면 탈옥까지 불법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막상 법정에 올라갔을 때 어떻게 판결이 내려질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 출처 : 지디넷 )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를 바꾸거나 애플이 허가하지 않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기 위해 아이폰에 적용된 잠금장치를 푸는 제일브레이킹(Jailbreaking: 일명 탈옥)이 불법이 아니라는 미국 정부의 판결이 나왔다.

미국 의회 도서관 저작권청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애플 앱스토어에 올라오지 않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거나 AT&T가 아닌 다른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 네트워크를 쓰기 위해 아이폰 잠금 장치를 풀 수 있는 것은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결국 애플이 묶어둔 사용자 제한은 불법이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형사상 불법이 아닐 뿐 이용자 규약을 깬 것이므로 애플의 AS 보장 의무는 없어진다는 점도 인정했다.

1) 아이폰 게임의 보안이나 보호를 위해 탈옥
2) 교육, 비평, 논평 등 비영리적인 동영상에 한해서 교수, 학생, 다큐멘터리 제작자 등은 저작권에 구해받지 않고 동영상을 아이폰에서 사용가능.
3) 시각장애인을 위한 e북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앱을 탈옥을 통해 설치 할 수 있음.

등도 허용됐다.

이번 판결은 EEF(전자프론티어 재단)라는 비영리단체가 애플을 상대로 싸운 끝에 얻어낸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그 내용을 보면 싸워서 얻어낸 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당연하다. 이건 기존에 소니 게임기라든가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와 관련해서 이미 수많은 국가에서 내린 판결과 거의 다른 점이 없이 똑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판결로 인해 기존의 어떤 애플 제품 사용에 달라질 점은 하나도 없다. 여전히 애플은 탈옥을 막기 위해 힘쓸 것이고, 탈옥에 대한 AS는 거부할 것이다. 심지어 디지털 워터마크까지 찍어가며 탈옥한 사람을 색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뉴스는 신선하게 들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플이 이 당연한 권리 하나를 계속 막고 인정하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자기 회사로서는 이익될 게 없으니, 통제할 법적 정당성이 부족하지만 과도하게 규제하다가 법정에서 판결하니 그제야 인정한 것이다.

이게 정말 애플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과 존망을 위협할 정도라면 이 정도로 조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항소를 하고, 여론에 호소하며, 광고를 이용한 홍보전에 들어갔을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반독점법에 걸려 호되게 당하기 전 얼마나 그 판결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면 이번 애플은 너무도 조용하다. 그냥 당할 거 당했다는 분위기다.

애플의 기분이야 어쨌든 이 판결은 향후 애플 제품과 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단지 아이폰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를 PC에 인스톨해서 쓰는 <해킨토시>도 이와 같은 케이스에 속한다. 현재 맥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묶어서 팔고 있지만 운영체제인 OSX는 따로 팔기도 한다. 문제는 운영체제만 정당하게 따로 사면 별도의 방법을 통해 자기가 산 PC에 깔아서 쓰는 것도 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애플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OSX를 일체 별도로 판매하지 않거나 하드웨어에 락을 강하게 걸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걸 해킹해서 다시 깔아서 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있다.



정작 내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이 판결이 나온 뒤 발표된 애플의 공식성명이다. ( 출처 )

애플의 목표는 우리의 고객들이 항상 그들의 아이폰과 함께 멋진 경험을 갖도록 보장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탈옥이 이 경험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에도 말했듯이, 대다수의 고객들이 탈옥이 그들 아이폰의 워런티를 취소시킬 수 있고, 아이폰이 불안정해지고 신뢰성 있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탈옥하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평이하고 무난한 내용이다. 법정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애플은 약관위반인 이런 탈옥을 결코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애플의 목표가 고객들이 위대한 경험을 갖도록 보장하는 것이다.>라는 부분에 주목해보자. 결국 자기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탈옥은 멋진 경험을 막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 법원이 탈옥을 합법이라 보장해주었다. 결국 이 말의 뜻은 이렇게 된다.

애플이 주는 멋진 경험을 미국법원이 막았다?

음,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미국 이야기니까 아주 미국 문화적인 비유를 해보자.

어릴 때 내가 즐겨읽은 미국 소설 가운데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의 모험>이 있다. 마크 트웨인이 지은 이 소설속 두 주인공은 못말리는 개구장이라서 늘 보호자들과 주위에서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한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 두 명은 집을 벗어나 알지도 못하는 험한 곳에서 여러가지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다.


자, 한번 생각해보자. 이 두 어린이들이 주위에서 주는 <보호와 통제>를 받아들여서 얌전히 집과 주일학교만 잘 다녔다면, 그게 그렇게도 <멋진 경험> 이 되었을까? 이들은 비록 위험이 따르고 미지의 가능성이 많았지만 그걸 각오하고 과감히 통제를 벗어나서 돌아다녔기에 오히려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째서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통제만이 멋진 경험을 제공한다고 단정하는 걸까?

우리 인생에 있어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에게 멋진 경험을 제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모든 자식이 부모의 보호와 통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렇게 부모의 보호와 통제를 받는 자식만이 <멋진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소설이 아닌 현실이 중요하다고? 좋다. 너무도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과연 스티브 잡스는 어렸을 적과 성장기에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얌전히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면 더욱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위험까지도 각오하고 미지의 가능성에 도전했기에 달성한 오늘날의 위치가 더욱 <멋진 경험>일까?


결론과 판단은 언제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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