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폰에 대해 알게되면서 듣게된 섬뜩한 단어가 있다.

탈옥(JailBreak).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아이폰을 가진 죄수가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광경을 떠올렸다. 아이폰이 워낙 우수하니까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한 장면처럼 혹시 감옥지도를 기억해서 나오는 범죄도구로 쓰이기라도 하나보다. 라고 짐작했다.

아이폰에서 말하는 탈옥은 그저 유쾌한 농담같은 작명일 뿐이었다. 단지 아이폰이나 아이팟 터치, 혹은 나중에 나오는 아이패드 운영체제를 해킹해서 본래 사용할 없는 기능을 사용하게 만드는 행동을 가리킨다는 걸 알았다.다른 하드웨어에서는 보통 해킹이라고 하는 데 아이폰에서는 본래 사람들이 유머감각을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이름지은 것이다.

그럼 왜 굳이 이런 탈옥을 사용자가 선택하는 것일까.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는 애플이 안정성을 위해 제한한 기능-멀티태스킹, 폴더기능, 배경화면 바꾸기 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는 하드웨어 안에 장비되어 있지만 일부러 활성화시키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원하는 디바이스 - 블루투스모듈 등을 완전히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세번째로는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깔 수 있는 정식 앱 외에 불법적인 복제 앱이라든가 여러 가지 이유로 허락되지 않은 앱을 얻어서 사용할 수 있다.


세번째를 제외한 나머지는 나름 수긍이 가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PC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내가 제 돈주고 산 하드웨어에 뭘 깔아서 어떻게 쓰든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폰 사용자로 대표되는 애플 제품 사용자들은 결속력이 강한 편이다. 그들은 애플 제품의 편의성과 디자인을 자랑하기를 좋아하며, 애플과 잡스를 사랑한다. 그런데 유독 이 탈옥에 대해서만은 의견이 갈려있다.

한쪽에서는 애플이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아이폰 등의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으로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일단 정당하게 제품을 돈 주고 구입했으면 그 제품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런 논쟁은 굳이 아이폰 만이 아니다. 아이팟 터치나 아이패드의 경우에도 탈옥이 존재한다. 그리고 경우가 약간 다르지만 시중에서 산 보통 PC나 노트북에 해킹을 통해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를 깔아서 쓰는 <해킨토시>의 경우에도 불법이냐 개인의 선택이냐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어쨌든 각자 경우는 달라도 논란의 핵심은 단 하나인 것 같다.

애플의 통제에서 벗어나면 그건 불법인가?




이렇게 탈옥을 하는 것이 굳이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야말로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개인의 선택에 의해 탈옥이라는 일종의 해킹 행위를 한 것이 과연 현행법을 어겼다는 의미의 불법인가? 라는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탈옥이나 해킨토시를 하면서 상용 앱이나 상용 운영체제의 불법복제 행위가 함께 이루어졌다면 그건 당연히 불법이다. 이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문제는 상용 앱을 복제하지 않았고 맥의 운영체제를 정식으로 제 값을 주고 샀을 경우다. 이런 경우에도 과연 불법 일까?

일단 불법이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국가의 법을 어긴 불법이 아니라 애플이 제시한 사용규정을 위반한 약관위반이다.

애플이 아이폰에 대해 일반 사용자가 허락없이 코드를 변경하거나 그것을 인스톨해서 쓰면 안된다고 했다면 저작권 위반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경우에 명확히 저작권 위반이란 판결도 없다.


보통 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합법이라고 본다.

솔직히 좀 우습긴 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불법이라고 판단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이패드를 사서 믹서기에 갈아버린 사람이나, 두들겨 깨부시고 산산이 분해한 사람에게 누가 불법행위를 했다고 경고하던가? 제품을 돈주고 샀으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걸로 땅에 묻든 바다에 던지든 원숭이에게 주든 불법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이것은 폐쇄적인 소니나 닌텐도의 게임기에서 많이 벌어지던 현상이다. 주로 게임을 불법 복사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제조사가 금지한 해킹을 하고 불법 게임소프트웨어를 돌리는 경우가 있어서 논란이 되었다.




원래는 직접적인 상용게임 복사가 이뤄지는 행위만 불법으로 간주하고, 해킹 자체는 개인의 자유라는 판례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에는 닌텐도 DS의 경우처럼 하드웨어까지 따로 개발해서 장착하는 등 집요한 불법복사 목적이 많아지자 제조사가 인정하지 않는 HW/SW 의 상업적 판매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판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PSP의 해킹펌웨어는 불법이 아니다. 그저 약관위반이기에 소니는 애플과 비슷하게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차단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약관위반이 곧 불법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말해둔다. 제 아무리 대단한 기업이라도 어떤 기업의 약관은 그냥 약관일 뿐이다.

예를 들어 애플이 자기 제품에 <잡스만세!>라고 입력해야만 운영체제를 쓸 수 있도록 만들어 배포하고는 약관에 이것을 규정했다고 치자. 누군가 애플 제품은 쓰고 싶지만 <잡스만세!>라고 입력하기는 싫기에 그 부분을 해킹을 통해 없애 버린 운영체제나 패치를 배포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이것을 자기 제품에 받아 적용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것은 불법인가? 아니면 약관위반인가?


약관위반은 되겠지만 불법은 아니다.
헌법에 정한 개인 양심의 자유는 기업 약관 따위로 단죄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신체포기각서에 내가 자의로 도장을 찍었어도 그게 아무런 법적인 효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런 약관을 만든 애플이 불공정한 약관을 만들고 강제한 대가를 법정에서 치르게 될 것이다. <잡스만세!> 외치게 한다고 대단한 피해가 있는 건 아니니까 시정명령 정도겠지만.




물론 지금 벌어지는 탈옥 등에는 좀 법률적으로 해석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
때문에 아마도 최종적으로는 누군가 고소를 하고 재판정에서 최종판결을 내려봐야 확정될 것이다. 하지만 그 판결이 부담되기는 애플이나 잡스도 마찬가지인지 아직 정식 고소는 없는 것으로 안다. 탈옥이나 해킨토시에 대한 현재 애플의 정책은 그것이 불법복제 혹은 상업적인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한 묵인하는 것이다. 대신 보호는 해주지 않기에 AS는 거부한다.


애플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건 그걸 선택한 개인의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불법이 아니다. 단지 약관위반일 뿐이다.

아직도 탈옥이 불법이며 이런 애플과 잡스의 행동이 그저 관용일 뿐이라고 말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다른 사례를 하나 소개해 보자.

소니가 개발한 플레이스테이션3는 슈퍼컴퓨터에나 쓰이는 CPU인 셀이 들어간다. 그리고 초기에 소니는 여기에 리눅스를 인스톨해서 컴퓨터처럼 쓸 수 있게 허용했다. 그러자 미국 공군에서 슈퍼컴퓨터 대신에 PS3 100대를 사서 병렬연결을 통해 슈퍼컴퓨터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같은 성능의 슈퍼컴퓨터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되는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니는 최근 이 리눅스 기능을 펌웨어 업을 통해 막아버리고 지원을 끊었다. 그러자 미국 공군은 난처해졌다. 이미 운용하는 PS3는 자동펌웨어 업을 하지 않아서 상관없지만 도중에 고장나는 기기를 AS받게 되면 리눅스가 깔리지 않는 최신 펌웨어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연 이것은 이제 불법일까? 소니가 지원을 끊고 사용약관을 바꾸었으니 미공군은 불법 PS3사용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약관 위반일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미 공군에서 소니를 고소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제품 구입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내용일 것이다.

이 사례를 현재의 애플 제품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과연 애플만이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통제하면서  어기는 자에게 그것은 불법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나는 소니를 상대로 소송까지 낸 미공군처럼 강경파(?)는 아니다. 마치 CPU의 오버클럭킹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는 불법은 아니지만 비보호 정도로 해서 허용해야 된다는 의견이다. 바람직하냐 안하냐의 판단과는 별개다.

내가 결국 이 글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단 하나다.

애플의 통제를 벗어났다고 해도 그건 단지 약관위반이다. 아직은 결코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 아이폰 탈옥이나 해킨토시는 불법이 아니다!


애플과 잡스도 무엇인가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통제에서 벗어나는 사용자 역시 애플 제품이 좋아서 산 사람이다. 좋아서 자기 제품을 사서 쓰는 사용자가 범죄자처럼 취급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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