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두고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나를 두고 노골적으로 <애플만 욕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굳이 말하자면 누구나 비판하고 누구나 칭찬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내 개인의 좋고 싫음이 아니다. 넓고 커다란 흐름이라는 면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동질감을 느낀다. 물론 잡스는 희대의 혁신을 이룩한 전설적 CEO고 나는 그저 소설가이자 일개 블로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을 결과만으로 비교하지 않는다면 잡스와 나는 공통점이 꽤 많다.


예를 들어 잡스는 컴퓨터와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았지만 막상 수학을 잘하지도 못했고 전자공학에 능숙한 엔지니어도 되지 못했다. 심지어 코딩도 못했다. 그가 잘하는 건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과 사물의 핵심을 직관으로 뚫어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주장해 설득할 수 있는 열정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컴퓨터를 좋아해서 정보통신공학과에 들어갔지만 막상 복잡한 대학수학과 공업수학에서는 늘 낙제점을 받았다.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나는 수학과 공학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면에 나는 인문학 쪽은 늘 놀면서 대충 해도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때로는 담당교수가 놀랄 정도의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이건 자랑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솔직히 매우 슬펐다)

결국 나는 IT를 직업으로 삼는 걸 포기하고 그냥 취미로 즐겼다. 그리고는 오히려 소설적 재능을 인정받아 소설가가 되었으며 현재는 취미였던 IT를 글쓰기와 접목시키는 블로거로서 약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아마도 잡스도 스티브 워즈니악처럼 직접 자기가 꿈꾸는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일대기에서 여러 단서가 보인다. 그러나 잡스는 애석하게도 그런 쪽에 재능이 없었고 결국은 자기 재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인문학 쪽에서 컴퓨터 산업의 혁신을 이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비록 잡스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어도 그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행동하는 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건 인생의 승자와 패자란 결과를 떠나서 정말로 원하는 분야에서 핵심 재능이 아닌 다른 재능을 가지고 성공한 자들이 가지는 어떤 미묘한 심정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애플을 좋아하고 잡스를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도 서론이 약간 길었다. 오늘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의 두 가지 모토인 폐쇄와 개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참고로 이번 글은 다소 딱딱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 좀더 형이상학적인 글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주제는 다분히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특성이 비슷하다. 컴퓨터에서도 주로 논쟁이 되는 화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애플의 아이폰이 그 폐쇄성 때문에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안드로이드에 패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은 안드로이드의 무질서와 애플의 정돈된 질서와 우수성을 들며 애플의 승리를 예언한다.

나 역시 포스팅을 통해 애플의 폐쇄성이나 지나친 통제를 비판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을 개량하거나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충고에 불과하다. 또한 애플이 모든 면에서 폐쇄적인 것도 아니다.

좁게 IT계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범위를 좀 넓혀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역사상 내가 가장 많은 변신을 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로마다. 로마는 처음에 <왕국>으로 시작되었다가 <공화국>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다 쇠퇴를 맞게 되자 이번에는 로마신을 믿는 <다신교제국>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모순점을 드러내자 이번에는 기독교를 믿는 <일신교제국>으로 바꿨다. 그러다 비잔틴 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의 작은 도시에 갇혀서까지 바퀴벌레처럼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다가 끝내 사라졌다.

내가 왜 이런 로마사를 이야기할까? 그것은 이런 상이한 정치체제를 계속 채택한 로마사를 보는 것이야말로 기본적으로 폐쇄와 개방이 동전의 양면이며, 어느 쪽도 영원한 정답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찰하기 위해서다.


먼저 왕국을 생각해 보자. 왕이란 한 사람이 권력을 쥐고 세습하며 다스리는 정치체제는 폐쇄적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국가의 초기 단계에서는 강력한 한 사람이 이렇게 모두를 통제하며 공동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위기 앞에 강해지며 작은 나라를 키우는 데 더 유리하다. <로마인의 행복과 번영>이 곧 IT에서의 <소비자의 만족과 이익>이라고 놓아보자. 그렇다면 국가체제라는 형식은 곧 <폐쇄>냐 <통제>냐 하는 선택이다.
 
왕국이란 폐쇄를 채택했던 로마는 다시 로마시민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왕국으로는 다스릴 수 없게 된다. 그러자 재빨리 개방형 체제인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원로원을 두고 집정관과 호민관을 두는 이 체제는 그리스보다 덜 개방적이지만 아주 약간의 통제 위에서 개방을 원칙으로 했다. 덕분에 로마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아 명장 한니발을 물리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우수했던 개방형 운영체제-공화정도 오래 계속되자 눈에 띄게 활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각종 사회적 모순이 드러나며 더는 버틸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자유보다 질서와 통제가 중요해진다. 그러자 이번에는 케사르를 위시한 영웅들에 의해 로마황제가 군권과 행정권을 틀어쥐는 폐쇄형 운영체제-제국 이 탄생한다. 로마인은 제국이란 통제와 규율로 인해 오히려 야만인을 막고 문명을 유지하며 행복을 누렸다.

그런데 곧 이 제국의 남겨진 개방성이 문제를 드러낸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폐쇄적이지만 다신교란 종교의 개방성이 이번에는 개방의 무질서와 피로감을 드러냈다. 기존의 신을 모조리 부정하고 오로지 야훼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도의 질서있고 확신에 찬 모습이 오히려 활기가 되었다.

그러자 로마는 다시 더욱 폐쇄적인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제국을 채택했다. 또한 이 덕분에 로마제국은 이후 비잔틴 제국까지 오랜 기간 국가를 유지하며 자국민에게 이익과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이런 통제만이 정답이었는가? 그게 아니다. 오랜 통제는 당연히 피로감으로 이어졌다. 특히 일신교의 통제는 중세란 기간을 이른바 암흑기라 불리도록 했다. 이런 일신교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를 추구하는 흐름은 다시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오랜 통제가 아예 억압이 되어 새로 태동한 과학까지 억압했기 때문이다. 지동설이 부정되고, 진화론이 부정되는 상황에서 통제가 주는 질서는 효용가치가 다하기 시작했다.

그럼 르네상스 이후로 자유와 개방만이 정답이었는가? 아니다. 이 또한 생활의 문란과 쾌락위주의 생활이란 역효과를 가져오자 이번에는 엄격한 절제와 규범을 앞세운 청교도 운동을 불러왔다. 이렇듯 통제와 개방은 긴 안목에서 보았을 때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았을 뿐 어느 것도 영원히 정답이어던 적이 없다. 각 시대가 요구하는 정답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굳이 경제체제로 말하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로도 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소는 중국의 토지제도 변천사나 서양의 경제제도를 연구하면 게속 뒤집히며 변화함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인간을 가지고 실험한 생생한 데이터의 집합체다. 굳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의 비교에 이런 예를 든 것은 너무도 짧은 시선으로 이 문제를 보다보니 대립이 격해지기 때문이다.


아이폰 VS 안드로이드, 영원한 정답은 없다.

아이폰의 폐쇄성은 아직까지는 단점보다는 장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장점으로만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좋은 제도라도 오래되면 단점과 모순이 격화된다. 아이폰의 통제와 질서는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결국 모순에 처하게 되어있다. 그때는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안드로이드가 추구하는 개방성이 일시적인 정답으로 전환될 것이다.

물론 안드로이드 역시 그 자리에서 계속 승자가 될 리 없다. 개방성의 무질서와 모순 역시 승자가 된 순간부터 쌓여가며 결국 다시 통제와 폐쇄가 정답으로 대두될 때 자기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 가운데 어느 하나가 완전히 시장에서 사라질 리는 없다. 하지만 폐쇄와 개방성이라는 양쪽 특성이 강조된 이들은 시장에서 각각의 흐름에 따라 선호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외면받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건 소비자의 이익과 편의를 추구하려면, 어느 한쪽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으려 하거나 폄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태극의 음과 양처럼 전자의 플러스와 마이너스처럼 개방과 폐쇄는 어느쪽이 특별히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존재가치가 없는 그런 게 아니다. 개개의 장단점을 지닌 요소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흐름은 어떨까. 나는 스마트폰에서 아이폰의 통제정책이 수레바퀴의 처음을 멋지게 돌린 후 개방쪽의 흐름을 예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드로이드의 개방을 보다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 다만 개방을 원하지만 통제가 가져다 준 질서와 편안함도 버리기는 싫은 것이 소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모든 것다 취하고 싶다. 지금 소비자들은 통제와 개방의 균형잡힌 조화를 원한다.


어차피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이 특별히 변화를 못하는 정체된 플랫폼이 아니다. 누가 부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아이폰이 약간씩 더 개방하며 이탈하려는 소비자를 막아서 승리할 수도 있고, 안드로이드폰이 약간의 폐쇄성을 첨가하여 질서있는 개방을 원하는 대다수를 안심시키며 끌어들일 수도 있다. 누가 승리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더 능동적으로 변화하며 소비자를 만족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구르는 것이고 그 안에서 각자는 시대적 소명이 무엇인가를 재빨리 파악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누군가는 성공하여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실패하여 패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그걸 분석하여 교훈을 얻을 뿐이다. 아이폰이든 안드로이드든 그 위에서 춤추는 바둑알에 불과하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이폰 VS 안드로이드, 영원한 정답은 없다. 다만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과 환경 속에 어떤 형태가 보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답에 가깝게 가려 노력하는지 주의깊게 지켜보자. 이것 또한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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