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이론>을 이어서 이야기해 보자.

앞서 나는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닌텐도가 차지했던 휴대 게임기 시장의 약간을 점유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체스나 테트리스 같이 간단한 캐쥬얼 게임이나 인터넷을 통한 소셜 게임 수준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애플에게 새로운 게임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때문에 마침 터져나온 닌텐도의 판매성장률 둔화와  맞물려서 애플이 닌텐도의 시장을 크게 잠식할 것이란 예측이 흘러나왔다.



터치 스크린 기반의 모바일 머신이란 점에서 보면 닌텐도의 NDSL과 애플의 아이폰, 아이팟터치는 매우 비슷한 특성을 지녔다.
하지만 아이폰이 보다 넓은 활용도를 지닌 플랫폼이고 NDSL은 거의 게임에 특화된 용도다. 가격 기반도 다르다. 아이폰은 매우 고가의 IT제품이지만 NDSL은 약간 비싼 장난감 수준이다. 주 타겟층도 아이폰이 어른 위주고 NDSL은 저연령층을 위주로 한다.


때문에 두 회사의 대립과 경쟁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장상황은 점점 두 회사가 일정부분의 시장을 놓고 대립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닌텐도의 비지니스 모델은 놀랍도록 정확히 애플과 일치한다.

1.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전부 만들며 일정한 주기로 플랫폼을 발표한다. 소프트웨어로도 돈을 벌지만 하드웨어로도 일정한 이득을 보고 있다.

2.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혁신기술을 탑재시켜서 시장을 주도한다.

3. 써드파티 소프트웨어 회사와 협력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플랫폼마다 확실한 지원을 해준다.

4. 폐쇄적인 정책을 쓴다. 호환기종은 일체 없으며, 운영체제도 개방하지 않는다. 때문에 해커들의 표적이 되어 해킹 소프트웨어가 나오고 있다.

5. 은행빚이 한푼도 없으며 둘 다 엄청난 현금보유고를 가지고 있다.
 
6. 지나치게 폐쇄적인 정책 때문에 한 차례 몰락에 가까운 추락을 경험한 바 있다.

나는 분야만 다르지, 이 두 회사를 미국과 일본 양쪽의 쌍동이 같은 IT회사로 보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닌텐도는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가 없이, 독재적인 경영자도 없이, 업계와 그리 많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도 지금의 위치를 이룩했다는 점이다.


애플이 닌텐도에게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이런 너무도 닮은 점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장기로 삼는 모든 특성이 닌텐도에게도 있으니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애플은 기회만 되면 자기 플랫폼을 통해 남의 영역에도 거침없이 들어간다.
애플은 아이리버의 아성이었던 MP3플레이어 시장에 휠 인터페이스의 아이팟을 가지고 들어갔다. 생소했던 휴대폰 시장에도 아이튠즈를 가지고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MS가 실패한 타블렛 시장에도 아이패드로 신기원을 열었다. 심지어 해본 적도 없는 TV에 진출하기 위해 애플티비도 만들었다. 상대에게 빈틈이 있고 이쪽에 승산이 있다면 판단되면 기회를 잡는 데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만일 닌텐도가 조금이라도 나태한 모습으로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했더라면 애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아이폰에서 휴대폰 기능만 뺀 아이팟 터치를 내놓았듯이 아이팟 터치에서 사양을 낮추고 게임기능만 간추린 <아이게임>같은 저가형 기기를 내놓았을 수도 있다. 혹시 지금 우리가 모르는 애플 중역회의에서는 새로운 게임기 출시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을 지 모른다.


실제로 아이폰4에는 게임에 매우 유용한 자이로스코프 센서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이 센서를 소개할 때 쓴 방법도 바로 <게임>을 해보이는 것이었다. iOS 4,0에는 게임센터 기능이 추가됐다. 게임센터는 아이폰과 아이팟터치, 아이패드 등에 소셜 게이밍 네트워크를 추가해 다양한 이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고 게임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감히 <아이폰은 닌텐도보다 뛰어난 휴대용 게임기가 될 겁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닌텐도 게임기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미래에는 아이폰이 게임기능을 전부 흡수할 겁니다> 라고 당당히 도전하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의 판단으로는 아직 그렇게 닌텐도와 대립하는 건 전혀 이득도 없고 이길 가능성도 적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닌텐도 입장에서는 잡스가 도전하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기도 난처한 면이 있다. 비록 약간씩이지만 아이폰이 닌텐도 NDSL게임기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게다가 라이벌인 소니의 PSP가 곧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휴대폰과 하나가 되어 나올 예정이다.


3G망과 연결된 게임기는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닌다. 소니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닌텐도는 슬슬 휴대용 게임기를 휴대폰에 탑재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운영체제는 자사가 만들든가 안드로이드 등 외부에서 얻어와야 한다. 그런데 애플이 iOS를 라이센싱 해줄 리는 없으니 결국 애플과 닌텐도는 스마트폰에서 충돌 가능성만 있지 협력가능성은 별로 없다.

내가 굳이 애플과 닌텐도가 결전을 벌일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적어도 게임기 시장만 놓고 봤을 때, 애플은 닌텐도를 이길 수 없다. 둘 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혁신기업이지만 게임은 닌텐도의 홈그라운드다. 애플이 매킨토시를 가지고 있듯 닌텐도는 Wii로 게임콘솔을 가지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을 가졌다면 닌텐도 역시 NDSL을 가졌다. 같은 능력이라면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닌텐도 쪽이 더 유리하다.


게다가 애플은 현재 라이벌 내지는 적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애플은 부품 공급 외에는 삼성과 완제품에서 협력할 길이 없지만 닌텐도는 필요에 따라 부품이든 완제품이든 얼마든지 삼성과 협력할 수 있다. 구글이나 MS와의 협력도 굉장히 쉬운 편이다. 닌텐도는 오로지 소니에게만 협력을 구하지 못할 뿐이다.
 
과감한 상상을 한 번 해 보자.

스마트폰으로 진출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기반이 없는 닌텐도가 NDSL기술을 가지고 구글과 연합해 삼성에 찾아간다고 치자. 삼성은 본래 어느쪽이든 가능한 플랫폼을 모두 만든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삼성은 하드웨어 중심의 <영혼없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기는 편이 우리편일 뿐이다. 삼성-닌텐도-구글 연합의 휴대폰이 <아이폰 대항마>라고 나올 수도 있다. 그러면 나같이 게임도 좋아하고 스마트폰도 원하는 <철없는 어른들>에게 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아닐까?


단지 나만의 상상은 아니다. 실제로 2007년에 업계에 돌았던 루머를 보자

아이폰을 만든 애플처럼 닌텐도가 게임기능을 탑제한 위(wii)폰을 만들고 있고 비밀리에 특허출원을 신청했다. 특허내용에는 게임기능을 위한 cpu와 휴대전화를 위한 cpu를 따로 탑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특허의 여러가지 부분을 언급하면서 애플의 아이폰같은 휴대전화보다는 인터넷 폰을 구현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물론 닌텐도는 이것을 단지 루머일 뿐이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너무도 충분하다.

애플이 게임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며 아직 닌텐도를 자극하지 않는 것은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자칫 아이폰이 최고의 게임기라고 했다가 태평양 건너 또 하나의 혁신기업 하나를 적으로 삼게 된다. 애플에게는 피하고 싶은 최악의 상황이다.


애플이 닌텐도에게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둘째로 바로 이 위(Wii)폰이 현실화되어 버릴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나마 게임 플랫폼으로서의 아이폰에게 또 하나의 강적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두 회사가 모바일 게임을 놓고 충돌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더 좋은 아이디어와 혁신이 나와서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혁신회사 답게 닌텐도는 다시금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 게임을 멀리 뿌리칠 신제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뤄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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