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가며 정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을 때였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자유와 평등, 정의와 박애가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에 나는 매우 놀랐다. 그것은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분노로 변해갔다. 이때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놈이 그놈이지. 나은 놈이 어디 있어?

그것이 먹고 사는 것과 아무 관련도 없는 쓸데없는 것에 관심두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체념하고 살라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보다는 훨씬 긴 세월을 살아오신 분이 인생에서 얻는 절실한 삶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근래에 IT업계에 대해 공부하면서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관련된 비판적 글을 올릴 때마다 나에게 충고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애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도 있고, 삼성이나 비판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애플도 결국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다. 다른 회사도 전부 마찬가지다>란 의견이다. 그런 의견을 볼 때마다 나는 예전에 들었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그놈이 그놈이고 나은 놈은 없는 걸까?

오늘 나는 흥미있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텔레콤 스마트폰 <옵티머스Q>가 네이버 검색 엔진을 기본 탑재했다는 이유로 평소보다 2주 정도 늦게 출시됐다. 구글의 호환성 인증 테스트에 시간이 걸린 때문이다.
지난 7일 출시된 옵티머스Q 단말기에는 네이버 검색엔진이 기본 탑재됐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옵티머스Q'에는 네이버 검색엔진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NHN의 한 임원은 "네이버 검색 엔진이 탑재됐다는 이유로 구글이 호환성 인증 테스트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옵티머스Q 출시가 평소보다 2주 정도 지연됐다"면서 "구글은 개방을 운운할 게 아니라 애플처럼 폐쇄 정책을 쓴다고 시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잠시 나는 이게 구글이 아니라 애플 관련 기사인 줄 알았다. 요즘 애플이 하도 이런 종류의 논란을 많이 겪었기에 조건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나도 어느새 종만 울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었나보다.

구글코리아 정김경숙 상무는 "검색엔진 탑재는 구글은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제조사(LG전자)가 결정할 문제"라면서 "옵티머스Q에는 왑 브라우저가 디폴트로 들어가 있는데, 왑 브라우저를 웹브라우저로 바꾸기 어렵게 돼 있어 지연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핵심은 이렇다. 안드로이드에 대한 관리권한을 가진 구글이 옵티머스큐에 구글이 아닌 네이버가 기본 탑재된 것에 불만을 품고 딴지를 걸었다는 것이다.

일단 해명을 듣고보니 그다지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물론 네이버 임원은 민감하게 느끼고 다시 반박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네이버가 기본 검색엔진으로 채택됐다.


대체 어째서 이런 신경전이 발생하는 걸까.

원인을 보면 예전 MS의 웹 브라우저 익스플로러가 문제였다.
웹의 태동기에 전세계 웹을 지배한 웹브라우저는 <넷스케이프>였다. 처음에 MS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발달하는 웹이 운영체제 시장을 잠식하면서 언젠가 운영체제 시장이 웹브라우저를 중심으로 재편될 거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그러자 뒤늦게 MS는 익스플로러라는 웹브라우저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사의 운영체제에 기본으로 포함시켰다. 이어서는 아예 탐색기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서 운영체제의 필수요소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히 넷스케이프는 밀려났다. 한때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던 넷스케이프는 점점 외면당하면서 마침내 오픈소스로 방향을 틀어 모질라재단을 거쳐 지금은 파이어폭스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문제는 이 사례가 여러 IT기업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비교적 플랫폼 중립성을 지키던 MS가 작심하고 밀어붙이면 윈도우에서는 어떤 경쟁기업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동시에 플랫폼을 지배하면 저런 짓을 해도 상관없구나하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결국 MS는 이 문제로 긴 재판 끝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었다. 하지만 그 벌금이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미 넷스케이프는 망해버렸고 MS는 승자로서 벌금을 물고도 끄떡없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 이건 전혀 공평한 게임이 아니었다. 한때 MS가 반독점법에 걸려서 회사가 찢어지기 직전까지 간 것은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이런 사태 때문에 다소 몸조심을 하고 있는 MS 대신 이제는 애플이 문제다.
나찌에 박해당하고 학살당한 유태인들은 이스라엘을 세워 힘을 갖게 되자 이번엔 팔레스타인과 아랍을 상대로 박해와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한때 MS의 독과점과 플랫폼 지배에 눌려 숨도 쉬지 못했던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플랫폼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런 애플에게 우리가 관대한 플랫폼 정책을 기대했던 게 잘못인가?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애플은 MS보다 더한 지배자가 되고 있다.
애플의 사업영역과 조금이라도 겹치는 업체는 애플의 플랫폼에서 영업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자칫 심기라도 거스르면 약관을 고쳐서라도 철저히 퇴출당한다. 정당한 이유든 말도 안되는 변명이든 명분은 아무거든 상관없다.



그래.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쪼잔한 줄 이제 처음 알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쪽은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드로이드를 앞세운 구글까지도 이런 구설수에 휩싸이는 걸 보니 기분이 몹시 착잡하다.

<악해지지 말자> 는 기업모토까지 앞세운 구글은 애플에 비해서 브랜드 가치는 뒤져도 기업윤리적 이미지는 매우 좋다. 그래도 역시 안드로이드란 물리적 플랫폼을 운영하게 되니 이런 논란을 피하지는 못한다.

구글과 애플, 똑같은 놈이 되려는가?

엄밀히 따지면 아직까지 구글은 희생자에 가깝다. 이런 날카로운 신경전의 단초는 MS가 익스플로러 사태로 제공했고, 애플이 각종 앱 거부와 플래시, 애드몹 거부로 확장시켰다. 그러니 이제는 사소한 마찰만 있어도 플랫폼 지배자가 뭔가 꾸미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아마도 이후 플랫폼을 운영하는 모든 회사가 이런 양상을 피할 수 없을 듯 싶다. MS와 애플이 뿌려놓은 가장 안 좋은 선례다.

네트워크정책국 허성욱 네트워크기획보호과장은 이에 대해 언급하기를 "인터넷정책과를 통해 '이용자선택권포럼'을 운영하면서, 플랫폼 중립성과 망중립성에 대해 정책적 과제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이제부터 출시될 스마트폰의 기본 검색엔진은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구글과의 관계가 틀어진 애플이 결국은 기본검색 엔진에서 구글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갈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하물며 안드로이드폰을 둘러싸고 한국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다음>, <네이버>와 공룡 <구글> 가운데 무엇을 기본으로 하느냐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구글은 플랫폼의 운영체제를 만드는 자로서의 권리를 이용하려 할테고, 이에 대항하는 한국검색업체는 플랫폼 중립성과 한국시장의 특화를 주장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논의가 아이폰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
구글이 문제제기를 한 셈이 되지만 이렇게 되면 플랫폼 중립성에서 애플도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다. 플랫폼을 지배한 업체가 기본검색 엔진을 임의로 지정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합법이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거대한 논란이 벌어질 것이며 그 속에는 구글도 애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쯤에서 나는 맨 처음 할머니가 말한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놈이 그놈이지, 나은 놈이 어디 있어?

솔직히 애플에게 플랫폼 중립성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애플은 우리가 뭐라고 하든 자기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구글 만이라도 다른 길을 가 주었으면 한다. 플랫폼을 지배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자사 이익만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좋은 선례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구글과 애플, 똑같은 놈이 되려는가?
아니, 구글은 그래선 안된다. 내가 만든 플랫폼이니 내 맘대로고 여기서는 어떤 공정경쟁도 할 생각이 없다는 그런 식으로 장사해서는 안된다. 닌텐도가 마리오 카트를 만들었다고 자사 게임기에서 모든 레이싱게임을 배제해버린다든가,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에서 MS의 기술을 거부해버리는 사태가 오는 일이 당연시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약육강식의 논리가 IT업계의 미래로 당연시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놈이 그 놈이어서는 안된단 말이다.


부디 안드로이드 업계와 검색업체들, 그리고 구글의 현명한 대응을 바란다. 최소한 지금 대놓고 경쟁업체를 깔아뭉개며 질주하는 애플보다는 보다 나은 협력과 상생의 미덕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부디 구글이 <애플과 똑같은 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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