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새벽 2시는 요즘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IT업계의 <섹시 아이돌>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G를 발표하는 날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장인의 예술품도 아니고, 희귀한 문화재도 아니다. 기껏해봐야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자 휴대전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제품 하나를 놓고 요근래 벌어진 헤프닝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가운데 기즈모도가 관련된 시제품 아이폰4G를 둘러싼 사건은 절도와 배신과 미스테리가 어우러진 헐리우드 영화같은 스토리까지 있다. 있을 게 다 있으니 여기에는 분명 <섹스 스캔들>도 있을 것이라는 농담마저 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는 건 이런 영광스러운 제품인 아이폰4G가 아니다. 또한 그 주역인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찬양하는 내용도 아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거나 누가 죽었을 때마다 방송국에서 흘러 나오는 <고난 극복의 감동 스토리>같은 내용은 다른 언론과 블로거들이 싫증나도록 말해줄테니까.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항상 혁신을 이루고 소비자에게 각광받는 제품을 만들어낸 데 대해서 많은 연구가 있다. 또한 그 놀라운 성과가 부러운 기업들은 지금 애플과 잡스에 주목하고 있다. 아마도 기업들은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서 애플 같은 기업이 되어 천문학적인 영업이익과 매니아들의 존경을 얻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는 애플과 잡스를 모델로 한 경영학 책이 넘친다. 그렇지만 나는 한마디로 단언한다.

애플의 성공비결은 창의력 착취 시스템에 있다.
 
혹시 후진국의 열악한 공장노동자를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과도한 노동을 강요당한다. 저임금에다가 시간과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성과급을 받지 못하기에 그들은 <자발적으로> 죽도록 일할 수 밖에 없다. 분명 강제노동은 아니다. 다만 폭력이 아니라 돈이란 채찍을 마구 휘두르는 자에게 얻어맞으며 일하고 있을 뿐이니까. 우리는 흔히 이것을 노동력 착취라고 부른다.

애플의 경우는 어떨까?

애플의 회사 분위기는 자유스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여기서는 청바지를 입고 출근할 수 있으며 회의때 스티브 잡스를 비판해도 상관없다. 서열이 거의 없으며 모든 창의적인 생각들이 반영될 기회를 얻는다. 이것은 분명 애플이란 회사의 빛나는 장점이다. 그러나 이 빛 뒤쪽에 있는 어둠은 생각보다 짙다.



외국의 칼럼리스트가 쓴 기사를 통해 애플의 실상을 알게 된 나는 충격을 받았다.(자세한 전문은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 를 참조하기 바란다.)

마치 종교 교주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하나의 팀장 아래 4명에서 25명 정도의 인원이 있는 수없이 많은 작은 팀으로 나눠진다. 이 팀들은 각자 부여받은 목표나 하고 싶은 목표를 프로젝트로 추진해 나간다. 3만 4천명이나 있는 되는 총 직원이 이런 식의 벌집 같은 식으로 조직된다.

애플에 입사할 정도면 나름 사회에서 천재소리를 들었던 인물이다. 젊고 패기도 있으며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뜨거운 의지가 있다. 바로 이런 천재들을 잘게 쪼개진 팀별로 몰아넣고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그들의 창의적 두뇌를 짜낸다. 때로는 잠자는 시간만 뺀 하루 20시간의 두뇌노동을 몇개월 이나 계속하기도 한다.


이건 창의력 착취다.

어떻게 사람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이들은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잡스가 단 5분동안의 시간을 할애해서 자기들을 소개하며 30초간의 박수를 이끌어내는 그 영광의 순간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마치 죽음 뒤에 구원이 올 테니 살아있는 동안은 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라는 복음을 믿는 신도들처럼.

아마도 이들 스스로는, 그리고 잡스와 애플을 옹호하는 누군가에게는 신성한 일에 기꺼이 재능과 목숨까지 바치는 고결한 성자로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서 한걸음 물러난 내 눈에는 후진국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는 근로자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견디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신경쇠약에 걸리는 사람도 제법 많이 나온다고 한다. 창의력이 전부 고갈되고 잡스에게 쓰레기라며 온갖 비난을 받은 끝에 쓸쓸히 애플을 나오는 직원도 있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니 상관없을까. 대신에 돈을 많이 받으니 충분할까. 육체노동도 아니고 두뇌노동이니 문제없는 것일까. 인류와 소비자의 편의와 혁신을 위해서 저 정도의 희생은 당연한 것일까.



양계장의 좁은 공간에서는 수많은 병아리들이 소비되기 위해 쉽새없이 모이를 먹고 몸을 키워간다. 그들은 이미 생명체가 아니라 먹을 것이고 제품이다. 마찬가지다. 애플이 직원들을 저렇게 쥐어짜는 순간, 이미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참깨를 짜듯 머리에서 창의력을 쥐어짜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잡스는 그런 창의력을 착취하기 위해 쉴새없이 돌아다니며 호통치고 무시하고 때로는 이름을 부른다.


직원들은 잡스의 따뜻한 목소리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또다시 온갖 창의력을 짜낸다. 그러면 잡스는 스스로의 뛰어난 미래전망 능력에 따라 제출된 각종 아이디어와 혁신적 제품을 평가한다. 어떤 것은 쓰레기며 형편없는 것이 되서 폐기되고, 어떤 것은 지구를 바꿀 미칠 듯이 굉장한 제품이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대부분 잡스의 공로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 하긴 우리가 전쟁을 기억할 때 그 전쟁을 이끈 장수만 기억하지, 이름없이 용감히 싸우다 죽거나 병신이 된 병사를 신경이나 쓸까.

한국에서도 최근 아이폰 열풍과 혁신에 대한 유행 때문에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배우자는 열풍이 불고 있다. 심지어는 잡스가 무슨 양식어류도 아닌데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자는 말도 나온다. 기업과 국가가 나서야 될 미래과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애플의 성공과 혁신의 뒷배경에는 이런 <미칠듯한 창의력 착취 시스템>이 있다. 과연 바람직할까?



예를 들어보자. 삼성이 애플이 되고 싶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고도 패기있는 젊은이에게 연봉 1억이상을 보장하겠다며 3만명 넘게 회사에 입사시킨다. 그 다음  수용소 같은데 이들을 팀 별로 가둬놓고는 뭐라도 좋으니 이제껏 지구상에 나오지 않았던 아이디어를 짜내라고 무섭게 강요한다. 그리고 성격 더러운 회장 한 명이 제출된 아이디어를 심사한다. 어떨 때는 인간 이하의 모욕을 주고, 어떨 때는  최고라며 잔뜩 칭찬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대부분의 공로는 회장이 제품 발표회장에서 독차지한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SOS 긴급출동>이나 <추적60분>, 혹은 <PD수첩>에 나오지 않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업문화가 된다면 우리도 애플 같은 회사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림도 없다. 이것은 결국 창의력 착취 시스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가?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애플같은 회사가 나와야만 할까?

이게 무슨 헛소리냐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자기 손에 들린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좋은 제품인데. 어째서 그렇게 삐딱하게 보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창의력이란 게 착취당한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잡스가 그렇게도 변명하고 싶어하는 폭스콘의 자살 노동자를 보라. 그들은 쉬지도 못하고 육체적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우리가 손에 들고 다니며 자랑스러워 하는 아이폰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하루에 12시간이상을 연속으로 일하든 그 이상 일하다가 연쇄자살을 하든 말든  뭐가 문제인가?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고, 그들이 선택한 일인데.
마찬가지로 애플 직원 누군가 두뇌를 착취당하며 정신분열에 시달리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인가? 나에게는 내 손에 있는 아이패드의 이쁘고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만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물만을 원한다. 자기 손에 들어오는 혁신만을 원한다.
세상에 있는 어떤 곳에서 내전끝에 다리가 잘리고 소녀들이 강간당해도, 내 손 위의 영롱한 다이아몬드가 더 소중한 사람이 있다. 시에라리온? 그런 국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구상 어딘가의 커피농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으로 노예노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당장 내 컵 속의 싸고 향긋한 커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다. 공정무역 커피? 그런 비싼거 왜 마실까.




그렇다. 이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그렇고... 또한 우리 가운데 누군가도 그렇다. 그러면서 다들 미래를 말한다. 그 미래가 과연 어떤 얼굴을 한 미래일지 나는 매우 궁금하다.

이제 곧 아이폰4G와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 열광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때까지 부디 잠시라도 생각해보자. 인간의 얼굴을 한 혁신은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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