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일으키는 혁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어려운 말로 흔히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보다 쉬운 말로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사품의 대량출현>, 이런 말로 말이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유행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업체가 총력을 다해 유사품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아이폰도 그랬지만 특히 아이패드를 처음 스티브 잡스가 발표했을 때 반응은 매우 싸늘했다. 각계의 IT전문가들은 이것이 2002년 빌게이츠가 야심차게 발표했던 타블렛PC와 닮았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분석했다. 한편으로 애플제품을 사랑하는 사용자조차도 아이패드는 아이팟을 잡아 늘려놓은 데 불과하며, 차라리 맥 운영체제를 채택한 고성능 타블렛을 원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패드가 발매되고 나자 그토록 냉소적이었던 언론과 전문가들은 열광적인 시장의 반응에 당황하고 말았다. 비관적이던 애플 매니아도 차츰 아이패드가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변화는 바로 이제까지 필수요소로 여겨졌던 키보드와 마우스를 떼어내고 터치스크린을 얹은 타블렛이 주력시장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전에 애플이 실패했던 뉴튼의 부활일 수도 있고, MS가 실패했던 타블렛PC와 오리가미 프로젝트가 빛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아이패드의 뒤를 이어서 많은 크고 작은 IT업체들이 타블렛 형태의 제품컨셉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MS의 혁신적인 제품 <쿠리에>, HP의 야심작 <슬레이트>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이들 거대기업의 제품은 중단 혹은 연기의 길을 걸었다. 아마도 이 둘은 아이패드와 정면승부를 벌여 멋지게 이겨보겠다는 마음 때문에 긴 생각에 잠겨있는지 모른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업체들이 빨리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과연 나름대로 기존 PC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업체들인 만큼 순간적인 대응력은 훌륭했다. 벌써 우리는 이 회사의 시제품을 손에 들고 써볼 수 있게 되었다. 언론에서는 역시나 이때다, 하고는 이 제품에다가 <아이패드 대항마> 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놓았다.



아수스는 컴퓨텍스에서 인텔 코어 2 듀오 CULV 프로세서와 윈도우 7, 10 시간 사용 배터리 등을 제공하는 'Eee Pad' EP121을 발표했다. 'Eee Pad' EP121은 12 인치 터치스크린, dock/ 키보드 하이브리드 솔루션, USB 포트, 웹캠 내장 등을 제공한다.
또한 10 인치 'Eee Pad' EP101은 NVIDIA 테그라와 윈도우 임베디드 컴팩 7으로 구동된다. 예상판매가격은 $399에서 $499 사이다.




MSI에서는 Wind PAD라는 이름을 붙인 태블릿을 발표했다. 1024 x 600 해상도의 10인치 디스플레이, 인텔의 아톰 Z530 프로세서, 32GB SSD와 2GB 램을 탑재했다. OS는 윈도우7을 사용했으며 MSI가 직접 만든 터치스크린 중심의 UI를 얹었다.
3G와 Wi-Fi를 모두 지원하며 웹캠, 2개의 USB 포트, 1개의 HDMI 포트를 내장하고 있어서 TV와 연결해서 고화질 동영상을 출력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게는 770g으로 아이패드에 비하면 조금 더 무겁고, 가격은 스펙에 비해 저렴한 499달러다.





LG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 부스에서 윈도 7 기반의 태블릿 PC를 최초 공개했다. 전체적으로 모서리를 둥글게 다음어 부드러운 느낌이 난다. 화면 크기는 25.6cm(10.1인치)에 시야각 문제가 없는 IPS패널을 썼다. 프로세서는 아톰 Z530(1.6GHz)에, 램은 1GB DDR2, 120GB 하드디스크를 저장 장치로 넣었다. 130만 화소 웹캠과 HD 오디오, 7500mAh 배터리, HDMI 출력, 유무선 랜이 갖춰져 있다.

이 제품들을 하나씩 보았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냥 제품 하나 나왔구나.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듯 연속으로 보게 되면서 어쩐지 조금 화가 치밀었다.


아이패드 대항마는 노트북 재활용품인가?

유심히 사양을 보면 알겠지만 재빨리 나온 이 제품들은 모두가 비슷하다. 인텔에서 나온 X86기반의 칩과 특색없는 메인메모리, 역시 별다를 것 없는 보조기억장치에 대략 많이 보던 옵션장치들을 달고 나왔다. 애플이 아이패드에서 보여주었던, 사용자를 위해 고심해서 최적화한 부품조합 같은 특색이 없다. 또한 소프트웨어에서도 윈도우7 아니면 안드로이드라는 식으로 매우 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조합뿐이다.


너무도 독창성이 부족한 원가절감용 부품 조합이다. 심지어 나는 이걸 보고 <아이패드 때문에 노트북이 잘 안 팔리니까 그 부품 뜯어다가 타블렛 모양 껍데기에 넣고 다시 찍어냈나?> 라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노트북 재활용품이라고 해도 할말이 없는 조합이다.




대체 넷북에서 키보드를 없애고 타블렛만 달면 아이패드 대항마인가?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안 변한채로 회전가능한 힌지만 추가한 채 정전식 타블렛만 붙여 내놓으면 비슷하게 봐줄 거라 생각했단 말인가?

뭔가 한가지라도 독창적인 비지니스 모델이나 아이디어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윈도7은 기본적으로 아톰CPU에 탑재하면 극악한 속도 때문에 도저히 타블렛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반응속도도 떨어지고 앱 실행속도가 너무 느리다. 그렇다고 코어2듀어를 달면 배터리가 많이 소모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팅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즉각 쓰고 끄는 식으로 편리하게 쓸 수 없다.

안드로이드는 모든 걸 구글에 맡겨 버리는 아주 편한 선택이다. 하드웨어 업체는 맥도널드 햄버거 조립하듯 종래의 넷북용 부품 가져다 타블렛에 얹어서 내놓으면 그만이다. 호환성이나 최적화는 관심도 없다. 그저 양산형으로 밀어내면 그만이다.



그럴 거면 많은 업체에서 나올 필요가 어디 있을까? 다양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데. 맥도널드 체인점에서 똑같은 구성의 치킨버거를 대만지점에서 내놓고 한국지점에서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열광할 거 같은가? 일부는 싸고 쓸만하다고 말하기야 하겠지만 제품 각각에서는 아무런 매력도 느낄 수 없다.
 
딱히 애플처럼 무슨 독자적 칩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하다못해 인터페이스라도 잘  디자인 하든지, 접속단자 같은 것이라도 아이디어를 붙이든지 해서 특색과 함께 아이패드에 자랑할 무엇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제품들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햇빛 아래서 읽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라도 채용했다면 엄청나게 주목받았을 텐데 말이다.

사실 이들 제품은 가격에 비해 부품의 성능은 매우 뛰어나다. 코어2듀오는 데스크탑에도 통하는 성능이다. 아톰CPU는 비록 윈도우를 돌리기에는 무겁지만 제대로 최적화 된 안드로이드와 그래픽 가속 칩의 도움을 받으면 A4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성능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에 나올 듀얼코어 아톰이면 아예 능가할 수도 있다.



아이패드 대항마들은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단지 싸게 빨리 많이 만든다고 이기는가?
중요한 건 직접 사용자가 쓰게될 운영체제와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민이다. 이것을 죄다 인텔과 MS와 구글에게 맡겨버리고 나서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차라리 제품을 내놓으면서 한 회사당 하나만이라도 티블렛에 최적화된 킬러 앱 하나씩만 얹으면 어떻까? 개인앱 개발사보다 훨씬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서 말이다. 어떤 회사는 기가 막히는 음악재생앱을, 어떤 회사는 무섭게 최적화된 동영상 재생앱을, 어떤 회사는 빠르고 강력한 다국어 워드프로세서를, 이런 식으로 각각 쓸만한 거 하나씩만 내놔도 그걸 모으면 현재 아이패드가 아닌 타블렛 사용자가 겪게 될 <쓸만한 앱이 없다.>라는 불만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패드는 무슨 외계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애플이 잘 하는 것은 기존에 있는 부품을 잘 조합해서 제품을 설계하고 그 제품에 맞게 최대한 최적화한 운영체제와 앱을 얹는 것이다.


마치 일본제 휴대용 게임기와도 같다.
닌텐도를 이기기 위해 소니가 대충 시중에 있는 범용칩만으로 조합해서 안이하게 제품을 만들었던가? 아니다. 소니는 특색있고 강력한 부품을 모아서 닌텐도가 가지지 못한 멀티미디어 기능까지 추가해서 PSP를 내놓았고 결과적으로 좋은 경쟁자가 되었다.

마찬가지다. 아이패드에 대항하려면 무엇보다 아이패드가 가지지 못한 각 업체제품만의 <특색>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지고 직접 소비자에게 어필해야 한다.

다시 한번 관련 업체에게 묻겠다. 당신들이 내놓은 이 아이패드 대항마는 노트북 재활용품인가? 아니라면 그에 걸맞는 성의를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 내가 절실히 하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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