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의 정부 연구개발 혁신방안, 무엇이 달라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학교, 직장, 사회라는 모든 조직체에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이 있다. 이것이 비합리적이거나 너무 낡았을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1초가 급한 응급 상황에서 서류작성과 보고를 먼저 해야한다든가, 혁신적 제품 하나가 간절한 상황에서 단순 개량제품 여러 개를 만들어 더 높은 인사평가를 받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 흔히 사람들은 뛰어난 천재가 재능과 노력으로 상황을 타개해주길 바란다. 그렇지만 천재는 자주 나타나지않으며 개인의 천재성에 기대서 얻는 변화는 지속되지 못한다. 결국 조직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근본 시스템부터 바꿔야한다. 한 사람이 100퍼센트의 노력을 추가해야 가능한 변화는 거꾸로 백 사람이 각자 1퍼센트씩만 맡으면 달성할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부R&D(연구개발)에 대한 혁신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6월 23일, 미래부 최양희 장관은 블로거와의 만남을 통해 정부의 연구개발 혁신방안의 취지와 구체적 내용을 설명했다. 근본적인 혁신방안인 만큼 국민들과 소통하며 의견도 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과연 정부에서 추진하는 이번 혁신방안이 기존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하나씩 알아보자.
혁신의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정부 연구개발 방식이 과거에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양적 성장에 치우친 낡은 시스템이라는 반성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일정부분 효과가 있었지만 선진국에 오른 한국에게 더이상 유용한 방법은 아니라는 판단이 뒤따랐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에서 하드웨어적 완성도의 차이는 크지 않다. 아이폰6와 갤럭시S6에 이르러서는 양쪽 모두 고급스러운 메탈재질을 사용했고 매끄러운 배터리 일체형 디자인이다. 고성능디스플레이와 카메라, 고성능 연산칩에 이르기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하지만 운영체제를 보면 애플은 자체제작한 iOS이며 삼성은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가져왔다. 그 위에서 돌아가는 앱을 포함한 소프트웨어(SW)역량에서 삼성은 애플에게 현저히 뒤진다. 제조업 기반의 기술은 따라왔지만 창의성과 혁신성이 중요한 SW에 대한 연구개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5년전에 삼성관계자가 말한 "애플에는 운영체제가 있지만 삼성에는 없다"라는 반성이 지금도 여전한 것이다.
미래부 최양희 장관은 제조업 중심 발전을 강조했던 기존 시스템이 이런 차이를 계속 끌고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니까 정부가 앞장서서 연구개발 시스템을 바꿔야 기업이 뒤따르며 한국사회 전체가 변할 수 있다.
정부R&D 혁신방안의 핵심취지는 연구개발 성과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중소기업 성장을 더욱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개발 방식에서는 논문건수, 특허 갯수 같은 양적인 것에만 치우쳤다는 것과, 기업과 시장의 요구와는 상관 없는 나홀로 연구를 해왔다는 판단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미래부, 산업부, 중소기업청 등 관련 부처가 모두 38개 핵심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비슷한 과제에 대한 중복 연구를 해소한다. 결과물이 동일하게 나올 연구를 한쪽에서 정부가 하고 다른 쪽에서 기업 연구소와 학계가 따로 연구하는 일을 없애면 한정된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 대기업에 대한 직접적 연구비 지원을 줄이고 사업을 공고할 때 연구과제 별로 지원 대상을 명확하게 표기하기로 했다. 특히 2016년까지 대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은 300억원 삭감을 목표로 하며 2014년에서 2017년까지 누적 1,400억원 삭감이 예정되어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예산이 삭감된다는 걸 기분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이렇게 대기업 관련 지원을 큰 폭으로 줄이면 반발은 없을까? 이 부분을 질문하자 최 장관은 '지원방식'의 전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정부가 어떤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싶을 때 직접적으로 대기업에게 예산을 배정했지만 이제는 간접적인 지원인 세제 혜택 등으로 전환한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과 달리 당장 운영자금에서 큰 압박을 받지 않는 것이 대기업이다. 따라서 예컨대 직접적인 지원금이 1,400억원 삭감되더라도 연구개발 성과에 따라 그 이상의 세금을 감면 받는다면 반발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좋은 방안이다.
▲ 프라운호퍼 연구소 (출처 :쉬퍼스저널)
산업계와 직접 연결되는 산업기술연구 중심기관에는 프라운호퍼 지원방식을 쓴다. 1995년에 도입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로 인해 정부과제 수주 경쟁에만 몰두하고 미래 원천기술 연구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이 점을 해결하려는 방안이다. 이들 연구소의 연구성과는 관련 기업에 혜택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연구에 필요한 자금인 출연금을 혜택을 받게 될 민간기업에서 분담하며 연구를 위탁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우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재료연구소 등 6개 기관에 적용하고 점차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예산따내기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산업계가 절실히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시스템적 장치라고 해석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법도 전략성을 강화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주도하게 하고 정부는 지원에 힘쓴다는 것인데 정부출연 연구소 안의 중소기업 공동연구실을 확대해서 2015년에는 25개 내외, 100억원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한정된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올바른 방법이다.
관리방법도 바뀐다. 종래 연구실적 평가방법이 특허건수나 논문 제출 수 같이 양적 측정 위주로 이뤄져서, 현장에서는 형식적 결과물만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 평가에서 논문건수 지수를 성과 지표로 활용하는 비율을 현저히 줄인다. 2017년에는 2.5퍼센트 정도로 줄일 예정이다. 중장기 연구개발 전략을 세우고 철저히 질 위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 정부출연연구기관 13곳이 있는 대덕특구(출처: 굿모닝충청)
마지막으로 모든 정부 연구개발을 총괄해서 기획하고 관리할 콘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한다. 최근의 각종 재난 상황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조직을 빠르고 낭비 없이 관리하려면 최종 책임을 지고 콘트롤하는 기관이 명확해야 한다. 이에 국과심에 산업계 참여를 확대하고 가칭 과학기술전략본부를 설치해서 자금을 나누고 집행하는 과정의 공정성을 높이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효율성도 좋아져서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하늘 아래 완벽한 제도란 없다. 이런 혁신적 변화에도 우려되는 부작용은 있다. 예를 들어 질 중심의 평가를 위한 세부 추진내용을 보면 특허나 논문 건수 대신에 평가위원회에 의한 평가를 강화했다. 소액과제의 중간평가를 폐지하고 연구책임자와 관계가 있는 전문가도 친인척이나 사제관계만 아니라면 평가위원이 될 수 있다. 과제선정에 참여한 평가위원 중 일부도 기존과 달리 참여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학연이나 지연 등에 의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새롭게 변화되는 시스템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은 어떻게 예상하며 대비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최양희 장관은 매우 도전적인 의지를 보였다. 변화는 피할 수 없는데 그런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며 부작용보다 순작용이 더 많으면 용기있기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대답이었다.
변화를 주도하는 책임자로서 너무 부작용을 경시한다는 느낌도 있지만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도 있다. 오히려 책임만 두려워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용기있는 태도는 중요하다. 그에 따른 책임만 분명하게 진다면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블로거를 상대로 친절하면서도 명확하게 정책을 설명하는 이 자리에서 미래부 장관이 보여준 문제의식은 명확했으며 해결책으로 제시한 비전은 근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이었다. 선진국에 비해 산업기반은 물론 과학기술 기반조차도 역사가 짧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적 풍부한 예산과 정책수립권을 쥔 정부가 발전을 주도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보다 자율적인 민간에서, 창의력이 뛰어난 중소기업 중심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미래부는 앞으로 수십년 이상 우리 기술의 미래를 만들 혁신적 시스템을 내놓았다. 앞으로 이런 변화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기대해 보자.
* 본 포스팅은 미래창조과학부 R&D 혁신방안 소개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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