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소프트웨어


아이폰 초기에 삼성은 애플이 가진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매우 신기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국내에는 아이폰을 계기로 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애플이지만 이전부터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회사의 제품을 익히 알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깔끔한 디자인, 고급스러운 마감을 갖춘 소재, 인간지향적인 인터페이스, 그리고 다소 비싼 가격이 사과마크와 함께 주어진 애플의 특징이었다. 


애플은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같은 제품을 가지고 훨씬 높은 이익률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드웨어를 팔아서 이익을 보고, 다시 콘텐츠와 악세사리를 고가에 판매한다. 제품을 한번 사면 어느새 끌려 들어와서 애플을 칭찬하면서 열심히 지갑을 열어 소비를 해주니 이처럼 고마운 고객이 없다. 그 시점 어떤 지상파 방송에 나온 전직 삼성직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러워 미치겠는' 정도였다.


애플이 보여주는 힘의 원동력은 여러가지로 분석되지만 가장 핵심에 있는 것이 소프트웨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애플은 잘 만든 독자 운영체제와 자사 제품만을 위해 설계된 앱. 그 안에서 가장 좋은  소비형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이 사용자의 선순환을 만들어 애플 제품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지게 한다.


삼성이 독자적인 스마트폰 운영체제와 앱 개발을 추진하게 된 것도 이러한 비결을 알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바다'를 개발했다. 그리고는 이 운영체제가 탑재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비록 시장에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삼성은 이후로도 꾸준히 바다를 탑재한 제품을 발표했고 지원을 했다. 

 

하지만 결국 삼성은 바다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바다 개발자 사이트에서 바다 개발자 포럼 운영을 2015년 1월에 중단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이미 2013년에 바다 OS 개발 종료를 공식 발표했으며 개발자 지원조차 끊어지만 미래가 없는 셈이다. 이미 바다 운영체제용 카카오톡 서비스는 종료되었으며 금융결제원과 시중 은행들은 2015년부터 바다 OS용 스마트폰 뱅킹 서비스를 중단할 예정이다. 사용자 부족과 삼성전자의 지원 중단으로 인해 보안성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이 내놓은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챗온' 역시 2015년 2월부터 종료된다. 챗온은 2011년 10월에 삼성 스마트폰의 메신저 서비스로 출시되어 플랫폼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기본 탑재된다는 점 외에 성능이나 기능에서 특별한 차별성을 주지 못했다. 사용자로부터 외면받은 챗온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듯 잇따른 삼성의 독자 소프트웨어 포기는 일단 사용자의 외면이 원인이다. 바다를 탑재한 스마트폰의 판매는 부진했고 챗온의 이용률은 극히 저조했다. 사용자가 써주지 않는 소프트웨어는 사실상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왜 사용자에게 외면받게 되었는가 하는 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창사 이래 최고의 매출신장과 순이익을 기록했던 삼성전자가 과연 얼마만큼 바다와 챗온을 신경써서 개발했으며 지원했을는지 의문이다. 바다는 구색맞추기 내지는 안드로이드를 쥔 구글에 대한 견제목적이 전부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챗온은 삼성 스마트폰에 기본탑재한 점 외에는 본격적인 플랫폼으로서 마케팅이나 홍보를 하지 않았다. 획기적인 기능이나 파격적인 협력 콘텐츠도 없었기에 경쟁 업체 서비스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독자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는 실적부진을 이유로 너무도 쉽게 포기한다는 의견도 있다.


독자 소프트웨어

물론 삼성전자가 모든 독자 소프트웨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대안으로 타이젠 OS를 독자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내세우고 있다. 타이젠은 삼성전자와 인텔 등이 공동 개발해서 2012년에 공개한 스마트기기용 OS로서 샤프, NTT도코모, KT 등이 참여하지만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2015년 초에 열리는 CES 2015에서 타이젠 기반 TV를 선보이며 1월에 인도에서 첫 번째 타이젠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단순한 스마트폰 플랫폼 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 전략의 중심에 타이젠OS를 놓을 예정이다. 이미 웨어러블 기기에서 갤럭시 기어, 기어2, 기어2 네오 등 타이젠 기반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운영체제를 포함한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많은 초기 투자가 필요하며 끈기있게 지원을 하면서 확산을 노려야 하는데 삼성의 실적주의가 그런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대체로 2년 정도의 실적을 평가해서 경영진을 문책하고 조직을 개편한다. 소프트웨어는 2년 동안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면서 투자만 해야할 수도 있으며 그럼에도 실적전망이 불투명할 수 있다. 바다와 챗온의 실패는 그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새롭게 추진하는 타이젠OS 역시 비슷한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 타이젠은 비록 인텔이 참여하고 있지만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독자 운영체제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에 타이젠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다지 손해볼 것이 없는 입장이다. 오로지 삼성이 가장 절실하게 독자 운영체제를 필요로 한다.


어차피 한 번 정도의 시행착오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부디 삼성이 바다와 챗온의 실패를 거울삼아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길 바란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파워를 갖춘 애플이 여전히 높은 이익률을 누리며 돋보이듯이 삼성이 세계적인 회사에 걸맞는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추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