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토피아



연초부터 이동통신 업계에 '대란'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최신 갤럭시 시리즈, G시리즈, 아이폰 같은 고가 단말기가 파격적인 가격으로 나오자 사용자들은 양떼처럼 무리지어 이동했다. 이런 대란은 결국 규제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한 사상 최대의 과징금 대란, 이어서 사상 최장기간 동안 한꺼번에 두 개 이통사의 영업을 정지시키는 영업정지 대란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돌아가면서 2개 이통사가 영업정지를 당하는 상황은 결국 이통사 점유율 대란을 불러왔다. 오랫동안 고착되던 이통시장의 5:3:2 점유율 구조가 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의 50퍼센트(%) 이동전화시장 점유율이 지난 주말 무너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영업정지 기간 동안 가입자는 단독영업을 한 이통사에 빠르게 몰렸다. 다만 최초에 단독영업을 한 이통사가 상대적으로 몸조심을 한 반면, 나중에 할 수록 익숙해지고 대담해졌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의 자료에 따르면 최초 영업한 SK텔레콤이 약 6,200명, 두번 째인 LG유플러스가 약 8,500명, 맨 마지막에 영업한 KT가 4월 27일 단독영업 시작 이후 5월 16일까지 22만 6,290여 명을 유치했다. 총 결산을 해보면 SKT는 손해, LG유플러스는 소폭 이익, KT는 대폭 이익을 보았다. SK텔레콤은 약 12만 명의 가입자를 타사에 빠앗겼다. LG유플러스는 약 4만 3,000명이 늘었다. KT는 약 7만 8,000명의 순 가입자증가를 달성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5월 20일부터 모든 이통사에 대한 영업정지가 풀렸다. 잃어버린 고객을 찾아와야 할 입장이든, 확보한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는 입장이든 치열한 마케팅 싸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5월 20일, 이통사는 각자 마케팅 효과가 큰 이벤트를 개시하며 기선제압에 나섰다.



영업개시



◇ SKT, 사상 최다 기종 출고가 인하 - SK텔레콤은 영업재개 시점인 5월 20일부터 6종, 20일 이후 추가 5종 등 총 11개 모델의 휴대폰 출고가를 인하했다. 4월부터 제조사들과 휴대폰 출고가 인하를 지속 협의해 온 SK텔레콤은 협의가 완료된 6종에 대해 출고가 인하를 우선 적용해서 5월 20일부터 판매한다. 나머지 5종에 대해서는 협의가 마무리되는 즉시 인하 가격으로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SK텔레콤은 그 동안 출고가 인하 대상에서 제외돼 온 피처폰(일반폰) 1종을 포함해 중저가 보급형 7종, 고급형 4종 등 다양성을 확보해서 고객의 휴대폰 선택 폭이 크게 확대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삼성전자 7종, LG전자 3종, 팬택 1종 등 고객이 원하는 제조사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생각하면 이번 출고가 인하로 보급형 휴대폰들은 대부분 구입가격이 10만원대 미만으로, 고급형 휴대폰도 시장에서 20~30만원대에 구입 가능할 전망이다. 

 


출고가인하



또한 여기에 SKT는 자사 광고모델인 전지현, 이정재의 패션 아이템 등을 담은 선물함 ‘스타박스’를 제공하는 경품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이벤트를 펼치며 스타마케팅 전략도 선보였다.


◇ LGU+, 출고가 인하 - LG유플러스는 5월 20일부터 자사 전용 스마트폰인 LG Gx를 포함하여 4종의 LTE 스마트폰 출고가를 전격 인하하여 판매한다. 또한  다른 5종의 스마트폰 출고가도 이후 추가로 인하한다.

 

우선 인하된 출고가로 판매하는 모델은 LG Gx, LG G2, LG 옵티머스 GPro, 베가 아이언 등 4종이다. LG유플러스는 갤럭시S4 LTE-A(32GB), 갤럭시S4 LTE-A(16GB), 갤럭시S4, 갤럭시 노트3, 갤럭시 윈 등 남은 5종에 대해서도 출고가 인하 협의를 빨리 끝내서 판매할 예정이다. 출고가 인하금액 외에 추가로 가이드 내 보조금을 적용받을 경우 베가 아이언은 10만원대에 LG Gx와 옵티머스 GPro의 경우 2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을 전망이다.



출고가인하




상대적으로 소폭 이득을 본 LG유플러스는 조용하게 실리를 굳히겠다는 태도다. 크게 이벤트를 하지는 않지만 고객이 유출될 우려가 있는 출고가 인하에 대해서는 다른 업체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 KT, 기가토피아 선언 - 이번 영업 정지 기간에 가장 큰 이익을 본 KT는 큰 틀의 기업전략을 발표했다.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KT 회장은 5월 20일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여기서 기존 통신망보다 10배 빠른 기가토피아(GiGAtopia) 시대를 선언하며 이후 KT 전략의 화두를 던졌다.

 


기가토피아



KT는 유선과 무선, 국가기간망 등 다양한 분야를 맡고 있다. 그런 장점을 활용해서 단순히 무선 통신망의 속도가 아니라 유선과 무선, 사물인터넷과 IPTV를 포함한 네트워크 전체의 사용자 경험을 크게 끌어올리겠다는 뜻이다. 단기간의 영업전략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미래전략을 제시하고 '기가'란 이슈를 선점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기가토피아는 기존 인터넷보다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 LTE에 기가 와이파이를 결합한 이종망 융합기술(GiGA Path) 및 구리선 기반 초고속 전송기술(GiGA Wire)로 3배 빨라진 네트워크로 상징된다. KT는 기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큰 대역폭이 필요한 초고화질(UHD) TV를 2014년 안에 상용화하겠다고 강조한다. 빨라진 속도에 대한 분명한 쓰임새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황창규 회장은 "지금 통신의 판을 바꿔야 한다. 통신망과 휴대폰이 ICT에서 가장 핵심이다" 라고 전제하고는 "미래에 대해서 전략을 가지고 나서기에 우리가 반드시 주도할 수 있다. 그동안 통신은 포화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성장 여지가 많다. 차별화된 속도와 데이터 서비스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 고 설명했다.


연초에 단말기 대란부터 시작된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월부터는 대란이 몰고온 단말기 유통법이 발효된다.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까지 규제하고 극단적 소비자 차별을 없애자는 이 법은 이통시장에 또다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당국과 이통사의 행보에 따라 국내 이통시장은 더 교묘한 편법이 판치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선진국 이통시장처럼 성숙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이통시장의 기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전문가는 "우리나라 이통시장은 단말기값과 통신요금에 거품이 잔뜩 낀 상태에서 출발했다" 며 "이 상태에서는 이통사가 개별 가입자에게 특혜를 주는 식의 가입조건이 횡행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함께 혜택을 누리려면  거품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란이 가져온 영업정지가 끝난 5월 20일부터 정상영업으로 돌아온 3개 이통사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뛰게 될까? 진정으로 이용자를 위해 거품을 줄이게 될 지, 아니면 눈앞의 실적을 위해 다시 편법과 보조금 살포로 돌아갈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