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폭스바겐'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가 있다. 이 차의 원래 이름은 '볼크스바겐'이고 의미는 '국민차'이다. 어쩐지 한국에서도 있었던 '새나라자동차'라든가 '국민차'라는 명칭이 떠오른다.



아이폰5C



비공식적이지만 독일 국민차는 미국 포드사 자동차에서 영향을 받았다. 미국에서 포드사가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분업화, 자동화 생산라인을 채택했다. 표준화된 부품과 각종 원가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저렴한 차를 만들어 보급했다. 이렇게 미국 국민의 평균소득으로 구입가능한 자동차가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이것이 독일에도 자극을 주어서 비슷한 가격정책으로 만들어 파는 국민차를 만든 것이다.


애플과 아이폰, 그리고 저가형 이라는 세 가지 단어가 조합되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떠올릴까? 각기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 언론에서 자꾸만 부채질했던 저가형 아이폰은 포드사의 자동차와도 같았다. 대량생산과 부품단순화, 소재의 혁신을 통해 보다 저렴하고 성능좋은 제품을 내놓으라는 요청이었다. 사실 그것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승리자가 된 미국의 엄청난 공업력을 만든 원천이기도 했다.



아이폰5C



애플 아이폰5C가 중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을 노리고 메탈소재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많은 언론이 바로 위와 같은 공식을 떠올렸다. 이전 아이폰5에서 쓴 산화 알루미늄과 다이아몬드 커팅 방식은 명품을 만들 때나 어울리는 기술이다. 중국 폭스콘에서 아무리 대량으로 주문받아 생산한다고 해도 소재가 비싸고 가공기술이 정밀해서 불량품이 많이 나왔다. 원가절감에 한계가 있는 기술이었다.


따라서 가공이 쉽고 재료 가격도 싼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이폰이라고 하면 당연히 판매가격이 상당히 쌀 거란 인식이 있었다. 하다못해 애플이 내놓은 투명 플라스틱 아이맥만 보더라도 이전 맥 제품보다 상당히 저렴했다. 저렴한 소재로도 아름답게 만든 다음 비교적 싸게 파는 제품들은 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다못해 원가절감을 위해 외부 액정까지 삭제한 이전 아이팟 셔플조차도 랜덤플레이의 미학을 부르짖는 젊은 층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문화현상을 일으켰다. 당연히 아이팟 셔플의 가격은 쌌다.



아이폰5C



그런데 2013년 9월 11일 새벽(한국시간)에 공식 발표한 아이폰5C는 사람들의 기대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기존 아이폰5 위치에 대신 들어간 아이폰5C는 소재를 컬러 플라스틱으로 바꿨다. 그뿐이었다. 지문인식센서는 없었고 각종 성능은 한단계 떨어졌다. 아이폰5C만의 개성적인 어떤 기술도 없었다. 가격은 100달러 떨어뜨린 전통적 정책에서 한치의 벗어남도 없었다.


과연 이런 제품으로 당초 목표라 예상했던 중국시장에 파고들 수 있을까? 아예 중국에서 돈 있는 사람이면 아이폰5S를 살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이면 아예 아이폰5C의 가격조차 부담이 될 것이다.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 가운데 품질이 좀 좋은 제품 가격이라고 해도 아이폰5C보다 쌀 것이다.

 


아이폰5C



그렇다면 아이폰5C가 나온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가격문제는 제쳐두자. 만일 아이폰4S 판매를 중단하고 그 자리를 대체했다면 4인치 디스플레이로 모델 전체를 통합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정쩡하게도 아이폰5를 없애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로지 한 가지다. 생산비가 많이 드는 아이폰5의 외형을 유지한 채로 100달러 떨어뜨려 팔기가 싫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이전 애플 CEO였던 존스컬리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존스컬리가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후에 잡스는 스컬리가 맥을 고가정책으로 유지해서 윈도우에 졌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잡스는 살아있을 때 저가 아이폰에 대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잡스의 뒤를 이은 팀쿡이 기존 애플의 정책과 다른 움직임을 보일 때 사람들이 다시 저가형 아이폰에 기대를 가진 건 당연했다. 그리고 실제로 플라스틱 케이스의 아이폰 모델이 흘러나왔을 때 저가 아이폰은 기정사실화되는 듯 싶었다.



아이폰5C



하지만 아니었다. 발표한 아이폰5C의 모든 메시지는 하나로 압축된다. "애플은 저가폰을 만들지 않습니다"라는 선언이다. 이로서 저가 아이폰에 관한 모든 루머는 당분간 사라질 것이다. 애플은 시장의 승리자로서 현상유지를 원했으며 거기에는 단지 기기당 이익률을 유지하고자 하는  바램만 있었다. 애플에게 저가폰은 없다. 우리가 아이폰5C를 통해 얻은 중요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