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기술의 발달을 좋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들은 발달된 기술을 두려워한다.


아날로그 기술이 디지털기술에 밀려날 때 특히 그런 일이 많아졌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는 합리적인 기술마저 거부하는 일은 상당히 많다. 발달된 기술에는 '예술혼'이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직업으로 삼는 소설의 영역에서는 아직도 나이드신 분들 가운데 진정한 문학은 컴퓨터와 키보드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 원고지에 펜으로 정성스럽게 쓴 글이 진정으로 문학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수단이 본질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사진예술가 가운데는 디지털 카메라는 경박하고 차갑기에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가 예술에 더 알맞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컴퓨터에 연결해서 만드는 음악보다는 오선지에 악보를 그려넣어야 진정한 음악성이 갖춰진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아날로그 기술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런 생각은 한편으로는 따스한 감성을 느끼고 싶다는 인간다움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본다면 수단이 본질을 지배한다는 우스꽝스러운 논리일 뿐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로 유명한 헤밍웨이는 모든 작품을 타이프라이터로 썼다. 기계니까 문학성이 없을 것인가?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은 모든 작품은 전자기기로 만들었다. 전기와 기술로 만들었으니 예술성은 없는 것일까? 사진예술가 김중만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낸 작품은 사진예술이 아닌 것일까?





발달된 기술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경계해야 한다. 우선 기술을 썼다고 해서 본질이 가치없다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원고지에 펜으로 썼든 컴퓨터에 키보드로 썼든 중요한 건 그 안의 글 내용이다. 글 내용이 문학성을 결정하는 유일한 가치이다.


반대로 발달된 기술을 적용했다고 본질과 상관없이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고가의 디지털 카메라와 비싼 렌즈를 써서 찍은 사진이라도 구도가 흔들리고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으면 쓰레기일 뿐이다. 싸구려 1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었더라도 순간의 장면에서 강렬한 매시지를 느낄 수 있다면 걸작이다.


서두가 좀 길었다.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민주주의 국가의 필수 제도인 투표제도이다. IT인프라가 발달한 한국에서는 전자투표 제도가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누군가는 모바일 투표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한편에서는 해킹이나 기술에 서툰 사람이 있다는 점을 내세워 기존 투표만을 고집한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길인가?


IT기술이 투표방법을 바꿀 수 있을까?



(사진출처: 부산일보)



투표의 본질은 무엇인가? 유권자가 가진 의사 그 자체이다. 투표함이라는 물건도 아니고 투표용지나 기표도구라는 수단도 아니다. 유권자가 누구를 지지하는 지에 대해 비밀과 정확한 전달이 가능하다면 그 수단은 무엇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고대 로마에서는 조개껍질로 투표를 했고 우리는 종이를 쓴다. 어딘가에서는 양피지를 썼을지도 모른다. 수단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이런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경제활동이다. 옛날에는 직접 물건을 물건으로 교환했다. 물물교환의 시대이다. 소금이 돈 역할을 하기도 했고 귀금속이 쓰이기도 했다. 금화와 은화의 시대를 거쳐서 지폐가 나왔다. 이후로 신용카드와 은행의 자동이체에 이르기까지 물건과 가치를 교환하는 방법은 점점 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내 나라의 은행에 인터넷으로 접속해서 내 구좌의 돈을 디지털로 인출해서 1초만에 옮겨올 수 있다.





무엇보다 보안과 신뢰가 중요한 돈을 이렇게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투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기술의 적용으로 보다 편리해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정치인이나 유권자 가운데 '그래도 역시 투표는 종이에 써서 투표함에 넣어야 제대로 된 투표다.'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낡은 생각일 뿐이다. 본질을 해치지 않는 기술은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스마트폰, 태블릿이 우리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나이드신 분도 당연한 듯 스마트폰을 사서 쓰고, 초등학생도 카카오톡을 쓸 줄 안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된 IT기술은 우리의 투표방법도 보다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야만 하는 아날로그적인 방법에서 벗어야 한다. 지구반대편에서도 간단한 인증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영화 스타워즈나 매트릭스에나 나오는 미래기술이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실현가능한 기술이다. 이것을 막는 것은 그저 일부 정치인과 국민들의 낡은 생각이다. IT기술이 그런 생각을 바꾸고 우리를 한단계 더 발달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율을 두고 나오는 보도와 투표독려 캠페인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IT기술이 투표방법을 바꾸고 우리의 생각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