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잘 모르고 영어는 어릴 때부터 배워 유창한 지금 젊은 세대들이 거의 쓰지 않게 된 사자성어 가운데 곡학아세란 말이 있다. 똑똑한 사람이 학식을 이용해서 전혀 엉뚱하게 진실을 왜곡하거나 숨기려는 행위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가 다 그렇다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일방적으로 횡포를 부리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심지어는 높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정보를 쥔 자가 그렇지 못한 계층을 향해 말도 안되는 주장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긴 예전 백분토론에서는 삼시를 패스했다는 엄청난 학력의 정치인이 중학생도 알 수 있는 진실을 호도하느라 혀가 꼬이고 말을 더듬기도 했다.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이 선진국 등 주요국가보다 저렴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얼마전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총선에서 경쟁적으로 휴대폰 요금을 파격적으로 인하하겠다는 급조공약을 내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출처)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요금이 선진국 등 주요국가보다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요금 코리아 인덱스 개발협의회는 통신요금 국제비교 방법론을 개발하고, 24일 지난해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개국과 비교·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음성·SMS·무선인터넷의 요금 수준을 OECD 주요 10개국과 비교한 결과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ies) 환율상으론 3~4번째로 저렴했으며, 시장환율로는 가장 저렴하거나 두 번째로 저렴했다. 


우리나라 이용자의 요금 부담 규모는 비교 대상 10개국 평균과 비교하면 PPP 환율로 61.9%~77.8%, 시장환율로는 41.7%~51.4%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비교 대상이 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호주다. 


이번 요금 비교에 쓰인 국제 비교 방법론은 협의회가 독자 개발한 것으로 음성과 SMS 요금만 비교한 2010년과 달리 무선인터넷 이용도 비교 대상에 포함했으나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 휴대전화(피처폰)의 데이터 이용량과 LTE 요금은 비교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자와 같이 똑똑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기사를 썼을 리는 없다. 따라서 이 기사는 분명한 목적을 팩트로 포장해서 내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란 단 한가지로 보인다. 이동통신사에 대해 요금 인하 압박을 더이상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 객관성이라고 보여주는 통계숫자 가운데 의심스러운 것은 한 두개가 아니다. 통계란 것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표본과 항목을 교묘히 조정하면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비교항목부터 시작해서 비교대상이 된 선진국과 한국의 국민소득 차이까지 의문스러운 게 너무 많다. 그렇지만 이런 것조차도 그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이 조사를 한 기관과 이 결과를 기사화한 기자는 기본적으로 한국 휴대폰 요금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혹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한국 휴대폰 요금, 선진국에 비해 싼 것일까?


한국 휴대폰 유통구조와 요금제의 근원적 문제점은 통화나 데이터, 단말기를 아껴쓰려는 사람에게 이익은 커녕 엄청난 손해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견 다양한 것처럼 보여도 실질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과소비 위주의 요금제만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통사에서 선심쓰듯 내놓은 장애인 요금제나 실버요금제 같은 특수한 요금제를 제외하고 한번 살펴보자. 단 한통화도 안하더라도 내야하는 기본요금이 너무 높다. 조금이라도 기본료를 낮추려면 이번에는 통화료가 너무 비싸진다. 선진국에서 무료이거나 무료에 가까운 문자는 아직도 요금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이익은 매달마다 단말기를 바꾸고, 엄청난 데이터와 통화를 펑펑 써대는 사용자에 대한 각종 할인과 혜택으로 돌아간다.  대체 돈이 없어서 절약하려는 사람이 돈이 많아 마구 소비하려는 사람에게 돈을 보태주어야 하는 이 구조가 정상적인가?





따라서 저런 조사를 한 기관이나, 기사를 쓴 기자는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하고 전반적인 요금제 비교의 항목과 시선을 정했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한국은 천원짜리 프리미엄 라면만 파는 시장이다. 나머지 나라에는 삼백원 짜리부터 천오백원짜리까지 다양한 라면을 판다. 그런데 프리미엄 라면끼리 비교해보고는 선진국의 천오백원짜리 라면에 비해 한국은 천원이니 라면값이 더 싸다고 호도하는 격이다. 돈이 없어 삼백원 짜리를 먹고 싶은 사람에게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이다.


역시나 당장 오늘 다른 주요언론에서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한 반박이 함께 실렸다.(출처)


이동통신요금이 비싸다고 느끼는 국내 정서와는 반대의 결과여서 여전히 코리아인덱스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비교대상이 모두 소득과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구매력평가 환율을 적용해도 실제 소득수준을 모두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직접 비교가 가능한가의 문제다.


코리아인덱스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이동통신이용국가를 찾다보니 선진국으로 제한되는게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이동통신사들이 쓰는 보조금이 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국내 소비자들의 경우 보조금을 받아 고가의 단말기와 함께 통신서비스에 가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경우 실제 부담하는 통신요금에는 단말기 부담가격까지 포함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통신요금만 비교 조사했기때문에 실제 체감 부담금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보통 휴대폰 요금이 비싸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은 당연히 적게 쓰고 적게 내고 싶은 사람이다. 어차피 단말기를 자주 바꾸고 통화도 많이 하면서 많이 낼 것을 각오한 사람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비싸다고 하는 개념 속에는 과연 싼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느냐는 것이 분명히 들어가야 한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이통사가 지급하는 단말기 보조금과 대리점에 주는 가입 장려금이 위치한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정보를 전할 때는 사실을 넘어 그 속에 숨은 진실을 알려야 한다. 곡학아세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보다 근원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사를 하고 기사를 써서 낸다면 대중들이 그 매체를 대하는 신뢰도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 아마도 저 기사에서 예로 든 선진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자국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사를 쓰는 언론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