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릴 때는 미래를 꿈꾸다가, 나이가 들면 서서히 과거를 추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만큼 노인으로 분류되며 창의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간주한다.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 로 시작되는 과거 이야기는 대체로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자랑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굳이 이 시점에서 20년도 넘은 8비트 PC라는 주제를 끄집어 낸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 위함이 아니다. 혹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삼미 슈퍼스타의 팬 같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재 한국의 IT세상에서 미래를 말하고 싶기에 이런 화두를 꺼냈다.

흔히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우는 입시교육속 역사는 그저 따분한 과거사에 불과했다. 어떤 사건이 몇 년에 일어났는지를 외우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진짜 역사의 의미는 미묘한 사건과 인물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대입하며 미래의 교훈을 얻는 데 있다.



어떨 때 과거는 단순히 뒤떨어졌던 역사가 아니다. 찬란한 로마의 문명은 그 후 중세의 암흑기보다 오히려 앞서있었다. 한국은 신라와 고려때 발전된 상업국가였지만 조선조에 이르러 오히려 상업이 쇠퇴하고 농업국가로 퇴보했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해보자. 지금도 이집트와 아즈텍 문화,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을 이야기하면서 잃어버린 초고대문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만큼 과거에서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8비트 컴퓨터는 미국에서 스티브 잡스가 성공시킨 애플2 컴퓨터부터 본격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 이 컴퓨터의 성공에 자극받아 나온 수많은 경쟁 컴퓨터는 곧 일본에도 붐을 몰고 왔다. 당시 전자산업에서 미국을 맹추격하던 일본은 많은 가전업체들이 저마다 나름의 기획을 가지고 컴퓨터 제작에 뛰어들었다.



개척기라는 건 그런 것이다. 어떤 표준도 없고 가이드라인도 없다. 기득권도 없지만 자기만이 쓸 수 있는 특허 같은 것도 잘 보장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것은 신생업체와 야심있는 인재들에게 엄청난 기회가 된다. 번뜩이는 착상과 과감한 도전이 혁신을 만들고 소비자를 만든다. 돈이 몰리고 업계 전부가 흥분되서 연이어 제품을 쏟아내며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런 시기는 그야말로 눈부신 황금기다.

작년까지의 스마트폰 산업이 바로 그러했다. 소비자들은 앱과 웹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스마트폰과 거기서 파생된 태블릿을 원했다. 그것이 어떤 업체에서 나온 것이든, 가격이 얼마가 매겨지든 쓸만 하다면 기꺼이 구입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 속에서 명암이 갈렸고 지금은 어느정도 승패가 갈라진 상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의 뒤에 있는 원인이다. 성공한 자에게는 성공원인이 있을 것이고, 실패한 자에게는 실패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분석하면 같은 실패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성공요인을 제대로 싶어내면 미래에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나는 지난 2년동안 IT평론가로서 국내외에서 벌어진 이 치열한 경쟁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묘하게도 과거에 이미 벌어졌던 8비트 컴퓨터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8비트 PC를 돌아보는 이유는?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절반은 8비트 컴퓨터를 접하고 그것에 매혹된 학생시절에 있었다. 애플2를 통해서 컴퓨터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알았다. MSX를 통해서 게임을 포함한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시절에 정신없이 수집하고 탐구하던 해외 컴퓨터 소식은 늘 짜릿한 자극을 주었다. 꿈을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의 기계- 이것이 당시의 내가 컴퓨터에 가진 한없는 애정의 근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애플에서 새로운 아이폰이 나오면 열광한다. 새로운 아이패드는 문화현상을 만든다. 매킨토시는 쉽고도 편한 컴퓨터 생활을 도와주며 애플티비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려고 애쓴다. 또한 경쟁업체들도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애쓴다. 시간이 흘러 업체와 기기는 바뀌어도 이렇듯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세부적인 기술적 차이를 떠나서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이 있다. 그것은 늘 혁신을 부르짖는 스티브 잡스에게도 있지만, 8비트 컴퓨터의 개척기를 살아갔던 당시에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라져버린 로마문명이나 잃어버린 유적 앙코르와트처럼 현재는 잊혀졌다. 하지만 나는 마치 고고학자처럼 이들을 발굴하며 미래를 말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8비트 PC를 돌아보는 이유다. 그럼 컴퓨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재미있는 여행을 떠나보자. 이어지는 글부터 하나씩 소개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