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의 미래를 다룬 SF영화를 보면 가끔 참으로 어두운 미래세상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많이 보던 이런 영화는 말이 미래세상이지 무슨 폐공장이나 지저분한 뒷골목이 주 무대다. 미래는 미래인데 거기에는 꿈이나 희망이 없다.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디스토피아라 불리는 이런 세상을 다룬 영화는 '경고'의 의미가 있다. 이런 세상을 원한다는 게 아니라 반대로 이런 세상을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종종 이런 영화나 소설에 대고 당신의 예상이 틀렸다고 조롱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그 사람이 작가의 의도를 잘못 읽은 것이다. 조지오웰의 '1984'는 그런 세상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런 세상을 반대한다는 것이며 실제로 끊임없는 경각심을 이후의 대중에게 주었다. 덕분에 세상은 조금이나마 좋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최근 전자신문- ET NEWS에 기고한 글을 하나 소개한다. (출처)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어렸을 적 처음 보았던 개인용 컴퓨터는 작고 가벼운 본체를 갖고 있었다. 애플2와 MSX 등은 본체와 키보드, 파워서플라이가 일체형이었고 가벼웠다. 당연하게도 이때 컴퓨터엔 냉각팬이라는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컴퓨터 CPU가 펜티엄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냉각팬이라는 게 달리기 시작했다. 고성능 데스크톱PC는 전원만 키면 공장의 작업용 기계가 돌아가는 듯 한 우렁찬 소음을 내보낸다. 그야말로 '업무용 기계' 라는 인상과 존재감을 사방에 과시한다.

스티브 잡스는 선불교의 명상에 심취했다고 한다. 명상을 방해하는 이 소음을 싫어해 애플2때부터 지금의 매킨토시까지 소음을 최소화한 설계를 강조했다. 이 때문일까. 아이폰과 아이패드엔 일체의 팬이 없다. 맥북에어도 거의 소음이 없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태블릿PC)는 그래서 조용하고 효율성 높은 기기가 됐다.

이런 기술적 진보 역시 다시 후퇴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칩이 높은 성능을 보일수록 많은 열을 낸다. 모바일 칩은 싱글코어에서 듀얼코어로 넘어왔다. 그리고 올해 쿼드코어로 진화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다시 소형 '냉각팬'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냉각팬은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준다. 전력소모가 늘어나고 기기 내부로 먼지유입을 늘린다. 물리적인 부품이므로 고장률도 높다. 무엇보다 안 좋은 점이 소음이다. 기기를 사용할 때마다 들리는 소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바일 기기는 여태까지 냉각팬 없이 진보했다. 운용체계나 앱 최적화가 잘된 덕분도 있지만 주요한 원인은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에 그다지 큰 기대나 요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토샵이나 3D 온라인게임 같은 건 집에서 PC로 수행했다. 그런데 점차 모바일 부문이 진보하면서 아예 노트북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역할까지 요구한다. 당연히 고성능이 필요해지고 멀티코어가 적용된다. 결국 냉각팬을 달아 성능을 더 올리느냐, 아니면 팬을 거부하고 급격한 성능 올리기를 포기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개인적 의견으로 모바일 기기만은 끝까지 냉각팬 없이 발전하는 길을 가줬으면 한다. 그나마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술적 진보가 다시 후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은 PC조차 팬 없이 방열판만으로 무소음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다. 이럴 때 새 스마트폰을 켜 우렁찬 굉음과 함께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된다면 이 얼마나 이상한 세상인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성능을 올리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설사 가벼운 작업만 할 사람이라도 일단 빨라진다면 찬성한다. 문제는 그 성능향상을 위해서 치러야할 대가가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 냉각팬? 이런 미래를 반대한다.

점점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컴퓨터의 성능을 따라가려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소음을 유발하는 기계장치인 냉각팬의 필요성이 생기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보기 싫은 것이 이 냉각팬이다. 마치 미래는 미래인데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보는 것처럼 나는 냉각팬과 우렁찬 소름이 끔찍하다. 그래서 그런 미래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혹자는 아직 냉각팬이 달린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나온 것도 아닌데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두에 말했듯이 바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기에 미리 경고하는 것이다. 이런 스마트폰을 켤 때 냉각팬이 돌아가며 소음이 나오는 그런 미래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