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전에 재미있게 했던 게임 가운데 ‘역전재판’이란 작품이 있다. 창의력있는 게임이 잘 나오는 일본 휴대용 게임기용 타이틀이다. 내용은 죄를 지어 법정에 선 피고와 변호사가 알리바이와 증거물을 내놓으며 무죄를 만들려고 하면, 주인공은 그걸 논파하고 다시 새로운 증거와 분석을 제시해 유죄를 만들어야 하는 게임이다.


내용으로만 보면 전반적으로 평이할 것 같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이 게임은 매우 재미있었으며 지금까지 많은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치앞을 예상할 수 없이 새로운 증거물과 논리에 의해 결과가 ‘역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 역시 ‘역전재판’이다. 당연하게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술과 증거물인데 간혹 그것들은 조작되거나 변형된 형태로 쓰이기도 해서 그걸 나중에 간파하는 것으로 더욱 흥미를 배가시킨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게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보다. 현실에서, 그것도 지금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 애플과 또한 글로벌 기업 삼성사이에 벌어진 법정다툼에서 마치 역전재판 게임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미 내가 지난 포스팅으로 쓴 바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이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낸 갤럭시탭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네덜란드를 제외한 유럽 전 지역 판매금지를 명령한 바 있었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 삼성이 이의신청을 낸 후 애플이 무려 법정에 낸 증거사진을 조작했다는 혐의가 포착된 것이다. (출처)



뒤셀도르프 법원은 지난 8월 9일 "갤럭시탭10.1이 아이패드2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는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여 별도의 소송이 진행 중인 네덜란드를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갤럭시탭10.1의 판매를 중단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제기하자 받아들인 것이다. 

뒤셀도르프법원이 삼성전자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애플이 제기한 유럽지역에서의 ‘갤럭시탭 10.1’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은 사실상 무효가 됐으며, 독일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국가에서 갤럭시탭 10.1의 판매가 가능해졌다. 독일이 제외된 이유는 오는 25일 예정된 최종판결까지 판매금지 가처분의 효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현지 외신들은 전했다.

한편 애플이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에 "유럽에서 삼성전자 갤럭시탭 10.1의 판매를 중지시켜 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제출했던 증거 사진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네덜란드 IT전문지 웹헤럴트가 16일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웹헤렐트 보도에 따르면 애플이 제출한 사진은 실물의 크기가 약간 다르고, 정품에 있어야할 로고도 박혀 있지 않다. 또 갤럭시 탭 10.1의 실제 가로 세로 비율은 1.46이지만, 애플의 소송에서 제출한 사진의 갤럭시 탭 10.1의 비율은 1.36이다. 이는 비율 1.30과 아이패드 2와 거의 비슷하다. 



요약하면 애플이 잘못한 혐의는 다음과 같다.

1. 유럽법원을 상대로 한 소송인데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팔기 위한 갤럭시탭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

2. 제품 전면에 뚜렷이 표시된 삼성로고를 증거 사진에서 임의로 없애버렸다.

3.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이 화면비율이 다른데 유사함을 보이기 위해 포토샵 등으로 비율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4. 갤럭시탭 안의 앱스토어 그림을 삼성 특유의 터치위즈 인터페이스가 적용된 것이 아닌 평범한 안드로이드 표준 인터페이스 사진으로 대치했다.

5. 이런 사진제출을 설명하면서 실제 갤럭시탭 유럽 판매제품을 구할 수 없어서 사진으로 대치한다고 밝혔다.
 
하나같이 치명적이고도 어이없는 증거조작이다. 시가총액 1위에 미국정부보다 현금이 많은 애플이다. 법정에 쓰일 증거인데 지금 활발하게 유럽에서 팔리고 있는 갤럭시탭 하나 구할 수 없었다니. 이건 변명이라고 말하기도 구차하다. 또한 사진을 조작한 것 역시 하나같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교묘하게 한 것이지, 어디서도 실수정도로 느껴지지 않는다. 애플에 있는 엄청난 연봉의 능력있는 변호사들이 대체 어째서 이런 한심한 행동을 한 걸까? 마치 게임 역전재판을 연상시킬 만한 반전이다.


애플의 갤럭시탭 증거 조작, 무엇 때문일까?

갤럭시탭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아이패드 이후에 나온 태블릿들이 아이패드를 닮으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애플이 기분나쁘도록 디자인이나 각종 요소에서 은근히 닮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바보가 아니다. 완전히 똑같이 만들어 법정으로 끌려갈 만큼은 따라하지 않는다. 애플 - 특히 스티브 잡스 입장에서야 이렇듯 법의 한도내에서 줄타기를 하며 아이패드를 따라하는 태블릿들이 정말 증오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타겟으로 삼성을 어떻게든 법정에 세워 카피캣 판결을 받아내야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잡스는 법률가가 아니다. 특허전문가도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애플 변호사들에게 ‘저 놈 고소해! 어떻게든 유죄로 만들어!’ 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법정에서 그걸 실행해야 하는 변호사들은 법적으로 이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러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애플 내에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잡스의 지시를 따라서 무리한 소송을 진행해서 단기간에 결과를 내야했다. 그러다보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얼마전 애플의 수석 변호사가 사임했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이런 현재 애플의 무차별 고소사건과 맞물려 이해되고 있다.

현재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 이번 건은 아무리 삼성을 평소에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고개를 젓고 있다. 법정 증거를 조작하고, 유치한 변명을 한 애플이 이번 건만은 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하기로 유명한 독일법원도 권위실추를 무릅쓰고 이례적으로 가처분 범위를 번복했다. 상황은 애플에게 최악으로 흐르고 있다.

조금 시니컬하게 보자. 하긴 너무도 돈을 많이 버는 애플이 이런 곳에라도 패해서 법원에 내는 벌금을 통해서라도 다시 소비자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예전에 있었던 잡스와 소송에 얽힌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전 애플은 맥을 산 고객에게 평생 무료로 전화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을 판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돌아와서는 이 상품이 비용에 비해 회사가 과도한 부담을 진다고 여겨 즉시 없애도록 지시했다. 고객관리팀 말했다.
“어쨌든 계약인데요. 고객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잡스는 대답했다.
“엿이나 먹으라고 해!”
법무팀도 말렸다.
“분명히 이건 소송에 걸릴 겁니다.”
잡스가 다시 대답했다.
“엿이나 먹으라고 해!”
결국 고객들은 소송을 걸었고 애플은 패소했다. 애플은 고객들에게 소송비용과 손해배상을 해줘야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애플이 소비자에게 환영받는 만큼, 혹은 IT 발전에 기여한 만큼 법정에서도 경쾌하고 날카로운 활약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분명한 표절은 분명 법정에서 밝혀내야 하지만, 어설픈 흉내내기는 그냥 시장에서 판매고로서 경쟁하면 될 일이다. 쥐를 잡겠다고 온집을 다 때려부수는 난동을 보는 기분이 들어 유쾌하지 않다.

나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애플을 제품발표회에서 보고 싶지, 법정에서 주로 보고 싶지는 않다. 애플이 법으로 돈버는 로펌회사는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