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겉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본질을 전부 파악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껍질을 벗겨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나나의 속이 하얀 색인줄 모를 것이다. 또한 수박의 안쪽이 빨간 색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피상적으로 드러난 것만 봐서는 이렇듯 사소한 과일 안쪽 색깔조차도 알 수 없다. 하물며 과일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요 며칠 동안 인터넷에서 떠들썩한 뉴스 화제 가운데 하나는 애플의 아이폰이 사용자에게 알리지 않고 위치정보를 저장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구글 역시 비록 암호화했다는 점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똑같이 위치정보를 안드로이드 단말기에 저장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은 애플에게 이 문제에 관한 질문서를 보냈다. 애플은 그 답변에서 위치정보 저장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어떤 목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는 미국의 어떤 해커가 애플이 아이폰에 넣은 위치정보 파일의 존재를 알아내고는 이것을 풀어낸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자 아이폰 소유자의 이동경로가 완벽하게 표시된 것이다.

사용자의 동의를 구하고 한 일이 아니기에 당연하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평소 아이폰과 애플을 싫어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매도했다. 반대로 애플을 옹호하는 사람은 안드로이드폰에도 똑같은 기능이 있다는 걸 찾아내 받아쳤다. 그러자 한심하게도 이 중요한 문제는 단지 애플이 나쁘냐, 안드로이드가 나쁘냐는 동네 유치원생 수준의 말다툼으로 변해버렸다. 사적인 감정이 사회적 이슈거리를 형편없이 질 떨어지는 논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우선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애플의 이런 위치정보 저장에 대한 이슈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움직이고 있다는 뉴스를 언급하고 넘어가보자. (출처)

방통위는 아이폰의 위치정보 저장이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등 관련 법에 위반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애플코리아에 질의서를 보내고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을 요청했다고 25일 밝혔다. 이에 앞서 방통위는 21일 애플코리아에 아이폰의 위치정보 축적 문제 보도 내용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 바 있다.

김 과장은 "위치정보 보호법상 개인이나 사물의 위치정보를 수집하려면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형태로 위치정보를 수집해야 할 뿐 아니라 이용자의 동의와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만약 애플이 개인을 식별할 수 있게 위치정보를 수집했다면 동의ㆍ허가를 받은 내용을 모두 어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의 위치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하는 것은 사업자와 가입자 간 관계가 아니므로 위법 사항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민감한 개인정보가 해킹이나 분실에 의 해 노출될 가능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질의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조사 결과 애플이 허위 신고 등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판명되면 최대 사업 폐지에서부터 영업정지, 과징금 처분 등의 조치를 내릴 계획이다. 이 같은 행정처분과 별도로 사법부 판단에 따라 형사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

김 과장은 구글의 위치정보 수집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다면 조사를 하겠지만, 구글은 개인을 식별하지 않는 상태로 위치정보를 저장하며, 해당 정보를 일정 기간 후 삭제하는 `캐시' 방식을 사용해 현재로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삼 강조해서 말하지만 이 사안에서 애플이 나쁜 회사이니, 아이폰을 사지 말라느니 안드로이드도 마찬가지라느니 이런 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위 기사에서 보듯 애플쪽은 암호화를 하지 않았기에 위법성 여지가 크고, 구글은 암호화했기에 위법성이 적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사소한 문제다. 소비자에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피상적인 면만 보지 말고 속을 보자.


애플과 구글의 위치정보 수집, 진짜 문제점은?

애플과 구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미국회사고, 둘째로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책임진 회사이며, 세째로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단말기를 틀어쥔 '플랫폼 홀더' 이다. 이들의 입장은 라이벌이긴 해도 거의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미국식 자본주의를 통해 최대의 이익을 보려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최선두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주로 장점만 눈에 보였다. 애플 아이폰이 스마트폰 혁명을 가져왔고, 구글은 검색엔진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둘 다 사용자를 배려한 좋은 서비스와 기술로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두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회적 책임이나 소비자의 권리 같은 '돈안되는' 요소와 막대한 자사의 이익이 걸린 '돈되는' 요소가 미묘하게 충돌할 때 어떤 쪽을 택하느냐 같은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점점 인터넷이 사생활의 영역으로서 알리고 싶지 않은 곳까지 파고 든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인터넷 브라우저에 개인의 사용정보를 필요이상 수집하지 말라는 표시를 하는 캠페인까지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모든 개인정보를 무한대로 긁어모아 비즈니스를 하려는 기업들과 최소한의 개인영역은 침범당하고 싶지 않다는 소비자의 요구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파악하는 개인의 위치정보가 왜 필요할까? 당연하게도 광고 때문이다.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 스마트폰에서 미키마우스가 튀어나와 팬시상품을 권하고, 공항에 있으면 특정 항공사를 권하는 광고가 나오며, 야구장에서는 홈팀 유니폼을 광고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기업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며 검색광고의 효과보다 더 크다.

여기에다가 곧 추가될 근거리 정보교환(NFC)기능을 통한 결제정보를 합치면 개인의 소비성향 패턴까지 파악가능하다. 기업으로서는 최고의 기회다. 아마 수백만달러를 주고라도 이런 정보를 얻고 싶은 글로벌 기업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애플과 구글도 그런 정보를 이용해서 기업에게 광고를 수주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 이런 추적정보를 통해 자기 신상이 낱낱이 벗겨지길 원하지 않는 소비자도 있다. 또한 그 숫자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는다. 개인정보 유출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피로를 느끼고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동의를 받지 못하게 되면 애플이든 구글이든 광고주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광고주가 원하는 것은 '전부' 이지 군데군데 이가 빠진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애플과 구글의 위치정보 수집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중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당신은 편리한 스마트폰을 쓰는 대가로 기꺼이 스스로의 이동정보와 상품구매내역 같은 사적 정보를 선택의 여지없이 전부 넘겨주고 싶은가?

당신이 언제 호텔에 들어갔으며 얼마만큼의 술과 음식을 사먹었는지 등등 온갖 정보가 스마트폰에 쌓인다.
애플과 구글의 천재들은 그걸 이용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지 머리를 싸매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성공해도 물론 당신에게는 한푼도 떨어지지 않는다. 앱처럼 70대 30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제공한 위치정보의 대가는 아무 것도 없다. 애플이든 구글이든 위치정보에 대해서만은 누구도 소비자 편이 아니다. 오로지 철저히 자기 회사편일 뿐이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과 구글이 보다나은 서비스를 위해 위치정보를 파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비즈니스에 이용하려면 최소한 개별 소비자에게 대가를 제시하며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물며 저장하거나 가공하는 건 더 철저한 동의가 필요하다. 이런 동의과정이 없는 가운데 돈만 벌려는 애플과 구글의 행동은 결국 사회보다 돈을 더 생각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기업의 문제점을 역력히 보여준다. 추후 이 문제에 대한 각국의 소비자와 정부의 반응을 주시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