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최초에 단순한 개인용 컴퓨터 회사로 시작했다. 8비트 컴퓨터인 애플2를 비롯해서, 16비트인 매킨토시 클래식, 잡스가 독자적으로 만든 32비트 컴퓨터 넥스트큐브, 애플에 복귀해서 내놓은 아이맥에 이르기까지 주력제품이자 유일한 전략제품은 컴퓨터였다. 키보드가 달리고 화면을 통해서 제어하는 그런 고전적인 컴퓨터 말이다.



아주 초기에 히트한 애플2를 제외한 모든 컴퓨터 역사에서 애플은 한번도 시장지배적인 승자가 되지 못했다.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IBM, 워크스테이션에서는 SUN에게 크게 뒤진 채로 특정 분야와 매니아층을 대상으로 주된 매출을 올렸다. 기능도 뛰어나고 보다 쓰기 편한 인터페이스를 가졌지만 늘 점유율에서 밀리며 소외되는 입장이었다.

다분히 이것은 문화계에서 흔히 말하는 '컬트'적인 특성이라고 해도 좋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실제로 주도권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도전자의 형태다. 애플은 이런 입장을 미국인의 기호에 맞게 '부당하게 탄압받는 발랄한 도전자'로 포장해서 광고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컴퓨터 점유율은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애플의 제품은 항상 세계 점유율에서 3-9프로 사이를 기록했다. 의미없는 점유율은 아니지만 커다란 힘을 가질 수 있는 점유율도 아니었다.

1997년, 망해가는 애플을 살리기 위해 돌아온 잡스는 MS의 빌게이츠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빌,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실제 PC시장 전부를 가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오." 라고 말이다. 빌게이츠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칫하면 애플과 MS가 시장을 반씩 나눠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풍기기 때문이다. 빌게이츠는 다시 정정했다. "애플이 3프로, MS가 97프로요." 라고 말이다.


당연히 이때의 애플의 광고와 마케팅은 마치 선거전에서 패색이 짙은 2위 후보가 1위 후보를 노리는 듯한 공격적인 비난 전략이 많았다. 상대를 멍청하다고 조롱하기도 하기도 하고, 심각한 위협이라고 정색을 하기도 했다. 독점을 막아달라고 소비자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애플의 마케팅 전략은 음악 플레이어 아이팟의 대히트를 계기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컴퓨터만 만들던 애플이 픽사를 통해 문화 컨텐츠에 눈을 뜨게 된 잡스에 의해 상대적으로 값싼 음악 플레이어를 만들고, 이것을 컴퓨터를 통해 연결시켰다. 그리고는 아이튠스란 뮤직스토어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단숨에 미국의 MP3 플레이어 시장을 휩쓸어버렸다.

당시 음악 플레이어는 일본의 유력업체 소니 등은 MD에 집착하느라 뛰어들지도 않았고 한국 업체가 앞서 만들고 선도하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애플이 클릭휠이란 인터페이스와 쉬운 사용법, 아이튠스란 통합관리 프로그램을 적용해 세계 시장을 압도적으로 점령했다. 처음으로 애플이 단일 제품에서 독점에 가까운 점유율과 위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이제 애플은 아이팟을 광고하고 마케팅하는 데 있어서 과거의 전략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애플이 이미 시장의 최강자인데 대체 어디서 '부당한 압박자'를 찾을 수 있을까? 모두가 아이팟을 쓰는 세상인데 이것이 '암흑의 제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플이 이미 지배자인데 '발랄한 도전자'를 어디서 만들어낸단 말인가?


애플은 아이팟 홍보 전략은 이때부터 발랄하고 명랑한 캠페인이 되었다. 거기에는 '1984' 광고처럼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나 침울하고 비장한 각오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이팟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가 일체감을 느끼며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교류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일상의 애플' 이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아이팟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애플에 엄청난 전환점이었다. 아이팟은 분명 대단한 히트작이지만 단일한 음악플레이어 하나로서는 미래가 없었다. 세상은 휴대폰과 음악 플레이어, PDA와 전자사전 등 분산된 기기의 통합을 원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애플은 힘들여 지배자가 된 아이팟의 시장 자체가 사라지기 전에 성공을 연장하길 원했다. 그러자면 아이팟의 기능을 포함한 통합 디바이스를 만드는 게 필수였으며 그것은 바로 휴대폰이었다.

애플의 스마트폰 - 아이폰의 성공이란 아이팟의 연장선에 위치해 있다. 아이팟을 쓰던 사람들이 휴대폰을 바꿀 때, 그 기능을 포괄한 스마트폰을 원하게 될 거란 계산을 했다. 그리고 아예 애플의 주력분야인 운영체제와 컴퓨터 기술을 집약시켜 휴대폰에 집어넣었다. 아이폰은 대성공했으며, 휴대폰 기능만 제거한 아이팟 터치와 함께 다시 시장의 강자가 되었다.

이제는 애플이 '암흑의 제국' 이 될 차례였다. 애플은 매킨토시 광고에서는 뚱뚱한 PC와 샤프한 MAC을 등장시켰지만 거기엔 더이상 상대를 노골적으로 거대한 제국으로 묘사하는 비유는 없었다. 애플 자체가 제국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는 오히려 안드로이드폰이 해방자 취급을 받고 있고 아이패드에서 애플은 거의 독점적 지배자다.

최근 나온 모토롤라의 XOOM 광고에서는 옛날 애플의 광고를 역으로 이용했다. 온통 흰옷을 입고 하얀 이어폰줄을 찬 사람들이 종교집단 같은 분위기로 지하철에 타는 가운데 주인공만 다른 색깔의 다른 기기를 들고 있다. 이미 한 분야를 차지해버린 아이패드와 아이폰만이 정답인가라는 심각한 의문이었다. 이건 옳고 그름을 떠나, 강력한 지배자를 원치 않는 미국인의 정서를 이번에는 모토롤라가 이용하는 전략이다.


애플의 입장이 1984년과는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화면에 나와서 '하나의 힘! 강력한 파워!' 를 역설하던 독재자의 얼굴을 잡스로 바꾸고 '단일기기! 강력한 기능!' 이라고 바꿔보자. 이젠 다른 회사들이 금발미녀처럼 뛰어들어와 잡스의 얼굴에 대고 망치를 던져볼 차례인 것이다. 물론 관객들이 그걸 보고 열광해줄 지 비난을 퍼부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이폰의 문화 마케팅, 그 속에 감춰진 전략은?

근래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광고를 보면 애플의 바뀐 광고전략을 알 수 있다. 애플은 이제 자기들이 강자가 된 세상이 음악과 유머가 넘치며 밝고 희망찬 세상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 그 뒤에 감춰진 다양성의 실종, 통제된 폐쇄성의 불만을 가리기 위해서는 한껏 발랄해야 한다.


애플이 아이폰을 이용해 보여주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문화와 함께 가는 감성에 있다. 픽사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손에 쥐고, 아이튠스를 통해 음악을 손에 넣었으며, 이제 아이북스로 책을, 애플티비로 방송을 노리는 잡스다. 애플의 기기를 가지게 되면 문화를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즉 문화적 감성을 가지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것이 새로운 감성 마케팅 전략이다. 편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유롭다는 것과는 반비례한다. 가이드에 따라 가는 패키지 여행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매우 편하듯이 말이다.

한편 삼성 역시 새롭게 재편된 업계와 사업영역에 따라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특히 스마트폰을 맞아 과감한 변신과 전략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