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계속 화제에 오르고 있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병가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병으로 인해 CEO가 휴가를 얻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회사가 애플이고, 그 사람이 잡스라는 게 문제다.

보통 리더 한 사람의 역량에 상당히 의존하는 게 미국 IT기업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애플은 의존도가 굉장히 심하다. 과장을 좀 보태서 말하면 지금의 애플은 아무리 종업원이 많고 순이익이 늘어나도 스티브 잡스 1인 기업일 뿐이다. 잡스 없이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 모든 것을 잡스가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굳이 세계사에서 비유하자면 나폴레옹때의 프랑스군을 생각하면 된다. 천재전략가 나폴레옹이 있는 곳에서 프랑스군은 항상 이겼다. 하지만 전선이 넓어졌을 때 나폴레옹이 없는 곳에서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때 가장 상승세를 탄 프랑스군에서 나폴레옹이란 존재를 쏙 빼놓았다면? 프랑스군의 앞날이 걱정될 것과 마찬가지다. 애플이 지금 그 상황이다.

스티브 잡스의 병가를 보도한 뉴스 하나를 보자.(출처)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잡스가 병가를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세계 IT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스티브잡스는 2009년 간이식 수술 때 6개월 이라는 구체적인 기간을 밝힌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이를 개인사생활을 이유로 밝히지 않아 각종 의혹이 일고 있다. 잡스는 이메일을 통해 "이사회가 병가를 허가해 줘서 건강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복귀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이에 해외에서는 췌장암이 재발했거나, 간 이식 수술 후유증과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전에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이때 애플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애플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어떤 중요한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고, 구심점이 없어진 개발팀과 내부 파벌 간의 알력이 나타났다. 따라서 애플은 잡스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산더미 같은 결제서류를 쌓아놓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돌아온 잡스는 자기가 없는 동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것에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모순이다. 자기가 이끌어가는 동안 자기 하나가 없으면 돌아가지 못하게 시스템을 만든건 잡스 스스로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잡스는 독재자였다.

만일 부재 상황에서 누군가 혜성처럼 나타나 잡스의 역할을 대신하고 회사를 아무런 차이도 없게 이끌었다면? 되돌아온 잡스가 할 일은 그 누군가를 바로 해고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기 권력에 가장 위협이 될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잡스는 나름 인재를 발탁하고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잡스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원활하게 돌아갈 시스템이 아니다. 단지 잠시의 부재 정도에 대응할 수 있는 정도이며 그나마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시스템이다. 구체적으로 예시해 말해보겠다.

스티브 잡스의 병가, 이후 애플의 전략은?

이대로 잡스가 어떤 이유로든 다시 애플의 경영일선에 복귀하지 못한다고 치자. 이후 애플이 취할 수 있는 전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잡스의 후계자로 첫손에 꼽히는 팀쿡을 들어보자. 그는 생산 관리와 조직운영에 있어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성실하고 나름 안정감도 있어 잡스가 가장 신임하는 측근이다. 따라서 팀쿡이 당분간 애플을 주도해서 이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팀쿡의 이런 점은 바로 잡스가 쫓겨나서 돌아오지 못했던 때의 리더이던 존 스컬리와 닮았다. 당시의 존 스컬리 역시 실적과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였다. 잡스가 선택해서 직접 펩시콜라에서 영입한 사람이니 두말 할 것도 없다. 존 스컬리가 잡스에 비해 모자랐던 점은 단 한 가지, 미래의 주력제품을 기획해내는 능력이었다.

불행히도 팀쿡에게도 기획 능력이 없다. 따라서 팀쿡의 애플은 이미 출시된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을 적당히 변형시키고 부품을 업그레이드 시키며 우려먹기만 할 수 밖에 없다. 존 스컬리의 맥이 바로 그랬다. 그러면서도 순이익률과 점유율은 높일 수 있다. 외견상 그러면 성공적인 경영으로 보인다. 팀쿡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창의력이 결핍된 우려먹기는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가져온다.



2) 애플의 디자인 전반을 책임지는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가 리더를 맡는 방법도 있다. 그의 디자인 센스는 대단하며, 애플의 매력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시 잡스가 신뢰하는 인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조너던 아이브는 디자인만을 알 뿐,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기술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IT제품은 예술품이 아니라 하이테크 제품이다. 디자인만 우수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사지는 않는다. 예전에 잡스가 넥스트를 만들었을 때 검은 색의 마그네슘 큐브로 그걸 디자인한 프로그의 에쉬링거는 천재 디자이너 였다. 넥스트는 모든 잡지에서 꿈의 디자인으로 뽑혔다. 그러나 디자인만으로 1만달러짜리 워크스테이션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너던 아이브의 애플은 평이한 기능의 제품에 디자인만을 극도로 집중한 아름다운 제품을 주력으로 할 것이다.스터프 잡지 같은 데서 매력적인 비키니 모델이 몸매를 뽐내며 들고 있기에는 아주 좋은 제품이겠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 직접 구입하기에는 어딘가 허전한 제품 말이다.



3) 이 두사람이 아닌 다른 인물이 리더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권한을 분담한 집단 지도체제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스탈린 이후 소련의 권력체제 예측 같다. 분명한 건 현재 애플 성공의 모든 원동력이 스티브 잡스의 독재였다는 것이다. 독재로 흥한 기업이 독재가 아닌 방법으로 번영과 영광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어떤 방법을 쓰든지 조직 내부의 알력과 권력 암투, 분열을 피하기 힘들다.

물론 애플은 당분간 무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남겨놓은 기반은 상당히 단단하다. 이것만 잘 운영해도 향후 5년간 애플은 경영상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잡스가 뿌려놓은 혁신과 창의성의 시효가 지나고 났을 때 감히 누가 나서서 고집스럽게 자기 철학을 주장하며 콧대높은 애플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호령하고 설득할 것인가? 누가 나서서 소비자 앞에서 '이것이 미래입니다!' 라고 외치며 한편으로 기능을 제한하고, 다른 한편으로 미래 기술을 과감히 적용한 제품을 선보일 것인가? 누가 감히 그런 제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소비자들로 하여금 문화를 만들게 할 것인가? 또다른 천재 빌게이츠조차 해내지 못했던 일을 말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닥쳐올 일이었다. 잡스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채식을 하고 선불교를 믿어도 우리는 그가 불노장생하거나 환생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는 다시는 그와 같은 인물을 갖지 못했다. 징기스칸 이후 몽고도 다시는 그런 인물을 가지지 못했다. 애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차분히 잡스가 없어도 나름 생존해갈 수 있는 다른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남은 자들의 책무다. 잡스는 사람이라서 언젠가는 죽지만, 애플이란 회사는 잡스 이후에도 살아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애플이란 회사가 잡스와 함께 무덤에 순장당할 수야 없지 않은가?

P. S : 이번 주부터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에 스마트폰 특집 컬럼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번째 칼럼 <와이파이와 블루투스가 만드는 새로운 세계> 가 연재되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