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PC뿐만 아니라 워크스테이션이란 개념의 고급 데스크탑이 전성기를 맞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충격적인 농담을 들었다. 워크스테이션용으로 나온 소프트웨어 가운데 가격이 천만원에 달하는 게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웃긴건 그 소트프웨어를 사면 워크스테이션은 무료로 준다는 것이다.



얼핏 들어서는 무슨 다단계판매나 신종 사기수법같다. 그렇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분명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때 내 사고방식과 한국적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일이었을 뿐이다. 사실 소프트웨어란 것이 물질이 아니다 보니 그 가치가 손에 잡히는 게 아니다. 쓰임새와 효과에 따라서는 분명 수천만원도 아깝지 않게 사서 쓸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상대적으로 몇 푼 안되는(?) 하드웨어 정도는 무료도 줘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무심코 살펴본 뉴스 가운데 이런 옛날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뉴스가 있었다.(출처)



'앱비스타’에 따르면, 가장 비싼 아이폰용 앱과 아이패드용 앱의 가격은 999.99달러(한화 약 111만원)다. 해당 가격은 앱스토어 등록 가능한 가격 중 최고가다.
이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기기보다 비싼 가격이다. 아이폰4 32GB의 미국 발매 가격은 통신사 약정 시 299달러(한화 약 33만원)이며, 애플스토어 내 아이패드 와이파이(Wi-Fi) 모델 64GB 제품은 699달러(한화 약 78만원)다.

가장 비싼 아이폰용 앱은 999.99달러인 ‘바맥스 NY(BarMax NY)’다. 미국에서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 변호사시험인 바시험(bar exam)‘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다.
2위는 감시 카메라 제어프로그램인 ‘이라 프로(Ira Pro)’다. ‘이라 프로’는 899.99달러(한화 약 100만원)로 감시 카메라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조정 가능하다.

아이패드용 앱스토어에는 999.99달러 앱이 다수 등록됐다. ‘바맥스 NY’의 아이패드 버전인 ‘아이패드용 바맥스 CA(BarMax CA for iPad)’외에도 ‘ICS 울프비전(Institution Control Solo WolfVision)’, ‘앨커미스트 SMS(The alchemist SMS)’가 주인공이다.

‘ICS 울프비전’은 울프비젼의 라이브 촬영 시스템 비쥬어라이저를 조정할 수 있는 앱이며, ‘앨커미스트 SMS’는 금속 제조업체들의 원자재 비용을 줄여주는 앱이다.

아이패드를 세달 넘게 쓰면서도 여태 내가 돈 주고 산 앱은 오로지 워드프로세서인 페이지스 하나 뿐이다. 나머지는 하다못해 0.99달러짜리 하나 조차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사지 않는다. 끝내는 무료앱을 찾아내 쓰고 있는 정도인 나에게 999달러란 앱 가격은 무슨 배짱이나 사기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다. 과연 저걸 돈주고 사는 사람도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서두에서 든 워크스테이션 이야기는 물론이고 요즘도 PC에서 고가 소프트웨어는 드물지 않다. 심지어 우리가 늘상 쓰는 MS의 윈도우도 용도 제한 없는 개인정품으로 구입하면 대략 30만원에 가까운 돈이 든다. 산업용인 오토캐드나 포토샵, 3D렌더링 소프트웨어등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

다만 그럼에도 우리는 저것들이 일상에 쓰이는 일이 적은데다가, 정 필요하면 불법복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비싸다는 의식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앱 스토어와 아이튠스를 만든 애플의 정책은 크게 무리하지 않는 가운데 전반적인 소프트웨어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때문에 개발사들이 자꾸만 저가나 무료로 흐름을 유도하는 압박을 받는다고 볼멘 소리를 할 정도다. 곡당 0.99달러라는 아이튠스의 성공은 애플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기존 PC시장의 가격질서에 익숙해진 업체들은 애플이 지배하는 모바일 앱 세상에 들어와서도 전혀 변화를 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기업대 소비자인 B2C시장을 중시하는 애플과 달리 기업대 기업 시장인 B2B시장을 중시한다. 그러기에 비싼 가격이라고 해도 한정된 회사에만 고가로 팔아서 이익을 볼 생각만을 한다. 이건 기업의 영업방침에 해당하기에 막연히 좋다 나쁘다로 가를 수 없는 문제다.

스마트폰보다 비싼 앱, 그것이 가진 의미는?

그렇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떤 제품의 경우, 필요한 기능만 넣은 가벼운 버전을 부담없는 가격에 내놓고, 한편으로 기업을 상대하는 고급 기능의 고가 제품을 내놓으면 더 소비자가 이익을 볼 제품이 있다. 예를 들면 워드 프로세서 에서 일반 소비자는 문서작성과 폰트 변경, 표와 그림 삽입 기능만 쉽고 재미있게 쓸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 본격 DTP기능 같은 건 기업용으로만 필요하다.

그런데 기업은 두 버전을 하나로 통합해서 무리한 가격으로 출시해서 불법복사를 유발하기도 했다. 애플은 이런 경우를 가장 싫어하기에 앱 스토어에서 유무형의 압박을 넣고 있다. 가장 많이 팔린 앱, 유료와 무료 앱 같은 경우로 베스트를 뽑아 홍보해주고, 하루만 무료 같은 것도 잘 홍보해주는 것이 그 증거다.



이번 뉴스에 나온 초고가 앱의 출현은 점점 스마트폰에서도 기존 PC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비싸지만 살 사람은 산다는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기능과 사용층에 따른 버전과 가격차이를 두지 않는 일방적 가격의 앱이 나온다면? 더구나 그 앱이 어떤 이유로든 대체할 수단이 별로 없는 오피스 같은 앱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이상훈 메조미디어 신규사업본부장은 “전체 앱에서는 생활 정보나 흥미 위주의 앱이 많은 반면, 고가의 앱 목록에서는 라이프나 엔터테인먼트 앱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스마트기기 사용자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 정보나 실질적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앱에 기꺼이 고가의 대가를 지불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위 기사에 딸린 이런 긍정적 평가에 나는 한가지 우려를 덧붙이고 싶다.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막연한 고가 앱의 출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