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금기가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일관된 <살인하지 말라>와 같은 절대적인 금기부터 시작해서 <여자를 보고 음심을 품지말라>와 같이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남자라면 가끔씩 본능적으로(?) 어기게 되는 금기도 있다. 또한 <남의 가게 옆에서 똑같은 물건 팔지 말라> 와 같은 권장사항 비슷한  금기도 있다. 어찌됐든 금기란 건 많은 시간과 사회적 합의를 거친 룰이니까 지키는 게 좋다.
 

하지만 어떨 때는 이런 금기란 게 너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그 목적에 누구나 동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내가 지금 논하고자 하는 IT업계에는 이런 금기가 있다.

이미 나와있는 가격과 기능별 제품 분류를 깨뜨리는 제품을 내서는 안된다.
 
이것은 일종의 생산자간 담합을 목적으로 하는 금기다.

일본회사들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예를 들어 보자.
보통 디카는 가장 높은 가격과 성능을 지닌 하이엔드급의 플래그쉽 모델, 중간 정도의 가격과 성능을 보이는 중급 모델, 저렴한 가격과 기능일부가 의도적으로 생략된 보급형 모델로 나뉜다. 그런데 이런 구분이 엄밀한 생산원가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단지 회사 이익 극대화 차원의 마케팅적 분류라는 것이 문제다.


때로는 어떤 회사에서 공격적으로 이런 분류를 무시하는 제품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게 시장질서를 한번 크게 무너뜨리면 견디지 못한 다른 회사들이 다시 그에 맞춰 제품분류를 재정비한다. 예전에 DSLR 카메라인 300D를 하이엔드 컴팩트 디카와 비슷한 가격에 내놓아 업계 전체의 제품군을 다 무너뜨리고 재편성시킨 캐논의 예가 딱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닌텐도의 3차원 게임기 3DS가 의외로 업계의 비슷한 금기를 깨뜨려버렸다. 과연 무슨 금기를 어떻게 깬 것일지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

1. 휴대용 게임기로 컨텐츠 생산을 해서는 안된다.

휴대용 게임기는 게임이란 <소비>가 목적인 기기다. 마치 면도기가 면도날을 소비하며 면도하는 게 목적이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게임기로 돈을 벌거나 다른 기기에 쓰일 볼만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도구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많은 화제를 모았던 닌텐도3DS(이하 3DS)가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대표에 의해 발표됐다.3DS는 안경 없는 3D 입체 게임 영상을 제공한다. 3.5인치 와이드스크린 디스플레이 및 모션센서, 자이로 센서가 탑재됐다. 검은색 상단 부분에는 3D 디스플레이가, 짙은 초록색의 슬라이드 패드 부분은 기존 DS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터치스크린이 자리했다. 3D 슬라이더를 통해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3D 영상을 조절할 수도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바깥쪽 위치한 2개의 카메라다. 이용자는 이 카메라를 이용해 직접 찍은 사진을 3D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출처: 게임스팟코리아 - 봉성창 기자


놀랍게도 3DS는 단지 3차원 게임만 사서 <소비하는> 기기가 아니었다.
직접 사용자가 저해상도이나마 3차원 사진을 찍고 저장하며 다시 볼 수도 있었다. 이건 매우 놀라운 일인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대충 30만원도 안될 가격에 출시될 휴대용 게임기가 천만원이 넘는 고급 DSRL카메라도 하지 못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셈이다. 3차원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기는 많지 않다.



소니코리아는 자사의 렌즈교환식 카메라인(하이브리드 카메라)인 `알파 넥스'를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3D 카메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DSLR 시장의 강자인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의 경우 3D 카메라 출시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며, 세계 최초로 지난 10월부터 80만원대 전후 가격에 3D 카메라 국내 판매를 시작한 후지필름 제품도 아직까지 반응은 미미한 상황이다.

이런 제품들이 있지만 모두가 애매한 기능인 데다가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 가볍게 접할 정도가 아니다. 일부러 80만원을 주고 사야할 3D 카메라다. 그에 비해 게임기로 샀지만 그냥 달려있으니 써본다는 보너스 개념으로 쓸 수 있다. 아마도 위의 저런 제품을 내놓았던 카메라 회사들은 속으로 부르짖고 있을 것이다.

안돼! 닌텐도. 그런 제품은 반칙이야! 넌 상도의도 없냐? 이건 금기를 깬 거라고!

훨씬 싼 제품이 자기들 주력 기능인 3D사진 촬영과 저장을 한다. 게임기가 카메라란 생산재 역할까지 해버리니 이건 단지 휴대폰의 500만 화소 디카 라든가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닌텐도의 금기파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DS는 한차원 넘어 저 비싼 카메라에서 불가능한 기능을 또 하나 지원한다.

2. 가격과 기능별 제품분류를 넘는 제품을 내놓아서는 안된다.

안경없이 3D입체영상을 즐길수 있는 닌텐도3DS는 ‘3D 비디오 채팅’기능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닌텐도CEO 이와타사토루는 외신(Forbes)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술적인 면에서 이야기 한다면 ‘3D 비디오채팅’과 같은 다양한 시도(서비스/기능)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E3서 공개된 ‘닌텐도3DS’는 내부에 카메라가 1개 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 제품이 변경되지 않는 한 구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미국 닌텐도CEO Reggie Fils-Aime는 E3서 공개된 ‘닌텐도3DS’는 유저들의 의견을 받기 위한 시제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최종 제품판은 얼마든지 변화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고급 3D 카메라도 할 수 없는 3차원 채팅을 저가 게임기에서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저 고급 카메라를 사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 매니아나 저걸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 밖에는 안 남는다. 취미로 그냥 즐기려는 사람은 차라리 3DS를 사면 된다. 중저가 3D 카메라가 설 자리를 완전히 파괴해버린 닌텐도는 두 개의 금기를 다 깨버린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3. 저가 제품 안에 고가제품도 못하는 기능을 탑재해서 시장을 교란해서는 안된다.

3D 화상채팅이 된다는 말은 또다른 의미가 된다. 그것은 3D 동영상 녹화와 재생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록 저화질일지라도 이렇게 되면 닌텐도 3DS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3차원 영상 제작 카메라 겸 3차원 영상 플레이어가 된다.

즉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극장에서 보던 <아바타>의 3차원 패러디 영상을 찍고 기록해서는 돌려볼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3차원 영화 감독 제임스 카메룬이 된다. 게임기로 여기까지 하게되면 다른 3차원 카메라들은 정말 뛰어난 기능과 좋은 가격을 하지 않는 한 팔리기 힘들게 분명하다.


이것이 금기를 깨뜨린 닌텐도 3DS의 세 가지 기능이다.

이처럼 닌텐도는 애플 몫지 않게 게임기 시장, 나아가서 IT시장 전체의 금기를 깨뜨린 혁신기능을 제공했다.

놀라운 일이다. 닌텐도는 부족한 3차원 인프라를 일일이 다른 기기를 만들지 않고 그냥 게임기 하나로 다 해결할 모양이다. 소비자를 위해서는 정말 좋은 일이다. 만일 닌텐도가 다른 업체와 같이 제품군 분류 등의 금기를 지키며 저런 기능을 삭제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그러려니 하면서 정말 좋은 기회를 놓쳤을 지 모른다.

닌텐도가 금기를 깨준 덕분에 우리가 좀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곧 네트워크와 인터넷을 타고 3DS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받아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곧 발매될 이 게임기를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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