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가끔은 모든 일에 꼭 이유를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어제는 나에게 꼬리를 흔들었던 이웃집 개가 오늘 갑자기 나를 노려보며 달려들 때나 지하철에서 내려보니 뒷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지갑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을 때, 보통 우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심지어 밤거리에 내 앞을 걷는 여자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지며 가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돌아볼 때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비록 내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 가끔 우리는 거울 앞에 서서 이렇게 멋진 스스로에게 어째서 섹시한 이성친구가 없는지 한탄하지만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 적은 없다. 맞다. 바로 그래서 당신에게는 섹시한 애인이 없는 것이다!


어이가 없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한참 뒤에야 생각하곤 한다. 그래야만 보다 냉정한 판단력으로 뉴스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뉴스가 특히 그랬다.

아이폰 등 30개 품목이 물가중점 관리 대상으로 선정됐다.
6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물가관리를 위해 조사해온 11개 품목에 신규로 19개 품목을 포함, 총 30개 품목을 물가 중점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기존 조사품목은 캔맥주, 영양크림,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가정용 세제, 스낵과자, 우유, 종합 비타민제, 오렌지 주스, 전문점 커피 등 11개였다.
신규로 포함된 품목은 수입 게임기, 디지털 카메라, 액정표시장치(LCD)·발광다이오드(LED) TV, 아이폰, 넷북, 생수, 아이스크림, 치즈, 프라이드 치킨, 초콜릿, 타이레놀, 일회용 소프트렌즈, 디지털 혈압계, 아토피 크림, 아동복, 유모차, 에센스, 샴푸, 베이비로션 등 19개다.

정부는 이들 품목에 대한 물가를 중점적으로 관리, 가격과 관련한 부당행위가 드러나면 공정위 등 관련 기관을 통해 관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아울러 늦어도 올 11월까지 이들 30대 품목에 대한 가격정보를 소비자에게 상시 공개할 방침이다.

머니투데이 전혜영기자


내가 알기로 정부의 물가중점 관리 목적은 궁극적으로 서민으로 위한 물가안정에 있는 것으로 안다. 기본적으로는 부당한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게 목적이며, 반대로 가격인하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로 서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품목들이 많은 것 같다. 좋은 의도인데... 어라? <아이폰> 이라고?

 
이건 좀 많은 면에서 이상하다를 넘어 <괴상하다>라든가 <수상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특이한 경우다.

1. 다른 물건은 전부 품목이다. 예를 들어 <캔맥주> 이지, <하이트 맥주>가 아니다. 그런데 <휴대폰>도 아니고 <스마트폰>도 아닌 <아이폰> 이라고 특정 상표의 제품을 적시한 건 무슨 목적일까? 일단 공정성을 지향해야할 정부가 특정 제품을 겨냥했다. 나머지 스마트폰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2. <아이폰>은 국내기업도 아닌 글로벌 외국기업 <애플>에서 만들어 국내기업 <KT>에서 수입해오는 제품이다. 애당초 정부의 영향력이 거의 미치지 못하거나 한계가 있는 제품이다. 정부의 관리가 과연 가능할까?

3. 제품명이라 자세한 것 같아도 은근히 모호하다. 아예 <아이폰3GS> <아이폰4>가 아니다. 이대로면 이미 출시한 <아이폰>은 물론 앞으로 출시될 모든 <아이폰> 시리즈가 이에 해당한다.

4. 아이폰은 수시로 가격이 변동하는 품목과 달리 애플 본사의 정책과, <KT>와의 협의로 가격이 정해진다. 그것도 이통사 보조금과 나머지 할인혜택 등이 어우러진 매우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걸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 관리할 것인가?  



처음에는 아이폰이 전혀 서민과는 어울리지 않기에 그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나마 이후에 있는 나머지 품목을 보니 꼭 서민적이지 않아도 들어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해 그 점은 수긍할 수 있었다. 

물가관리품목에는 아이폰 외에도 수입게임기와 디지털 카메라 과자 캔맥주 영양크림 유모차 샴푸 소프트렌즈 아동복등 30가지 품목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폰만 특별히 제품을 따로 적시해서 관리받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만사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억지로 쥐어짜내다시피 해서 각각의 항목에 최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붙여 보았다.

아이폰이 정부의 물가관리 대상인 이유는?

1. 아직 한국은 스마트폰이란 개념 자체가 대중화되지 못한 나라다. 이런 때에 들어온 아이폰이 어느새 스마트폰을 대표하는 제품이자 아이콘이 되버버렸다. 얼마전 모 정당에서는 국회의원 들에게 아이폰을 나눠주며 의정활동과 유권자 소통에 쓰라고 한 일도 있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제품이자 매일같이 언론에서 다루는 대표 상품이 되었다. 일선 물가행정을 담당하는 담당자도 아이폰이 곧 스마트폰이지, 다른 스마트폰은 당분간 무의미하다는 매우 애플 편향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뽑은 게 아닐까.


2. 애플 제품이 국내에 들어올 때 책정되는 가격은 제한적인 고정환율제에 근거하고 있다. 일부에서 <애플 고정환율>로 불리는 이것은 달러 대비 해서 그 나라의 최근 몇 개월간 환율을 평균하고 세금과 약간의 마진을 얹어서 정한다. 한번 정해지면 꽤 오랫동안 지속되기에 나름 가격변동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건 일상적인 경우다. 몇년전 고환율정책으로 달러대비 원화가치가 껑충 뛰었을 때 일시적으로 고정된 한국 애플제품이 원화로 사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싸던 때가 있었다. 그때 외국인들이 국내 애플 제품을 많이 샀는데 그런 영향으로 애플이 그 후 가격을 상당폭 올린 적도 있다. 그런데 고정된 기간이 길어서 다시 환율이 안정된 후에도 한참동안 한국은 외국보다 상당히 비싼 가격에 애플 제품을 사야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정부에서는 이런 경우를 걱정한 게 아닐까? 그래서 하다못해 애플 본사는 어쩔 수 없어도 유통을 맡은 <KT>를 통해서라도  환율 대비 가격을 높지 않게 유지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긴 이제는 재벌회장님부터 유명가수, 국회의원까지 쓰는 아이폰이다. 가격이 뛰면 그 사람들도 불편할 테니까, 서민과는 좀 동떨어져도 가격 관리를 할 가치가 있다.

3. 안드로이드 진영에도 갤럭시S 를 비롯해 디자이어, 옵티머스큐 등 다양한 스마트폰이 있다. 그러나 단일 플랫폼으로는 아이폰의 점유율을 따라갈 제품이 없다. 그냥 아이폰이라고 제품 명만 적으면 향후 나올 애플의 어떤 스마트폰도 자동으로 지칭하게 된다. 선정하는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편리한가.
혹시라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5>를 <잡스폰> 이라 명칭변경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너무 편리한 제품명에 담당자가 반한 것 같다. 아니면 단지 콜라=<코카콜라>라는 단순한 인식으로 인해 스마트폰=<아이폰>이라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4. 그렇다. 아직은 어떤 휴대폰도 저 복잡한 가격정책 때문에 물가관리 대상에 들어가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아이폰을 계기로 앞으로 나올 스마트폰과 고가폰에 대해 가격관리를 해보고자 하는 용감한(?) 시도를 하는 게 아닐까. 심지어는 아이폰을 너무 싸게 팔아도 안되고, 비싸게 팔아도 안된다는 파격적인 물가관리를 해보려는 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과연 아이폰 가격이 좀 오르고 내리는 게 필수 에너지인 경유나 아이들 먹일 우유값과 동등하게 중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해낸 이런 이유말고 담당자에게는 더욱 심오하고 전문적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폰을 물가관리 대상으로뽑은 것은 어쩐지 당위성이 부족해보인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듯 싶다.

애플은 한국 정부에 관심이 없지만, 한국 정부는 애플에 관심이 많다.

결국 이런 일방적 짝사랑의 결과물인 걸까?

얼마전 한국에 와서 대통령과 악수하고 환담하던 MS의 빌 게이츠가 떠오른다. 부디 앞으로 스티브 잡스도 한국에 와서 대통령과 악수도 하고 그 앞에서 제품시연도 해보이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있길 바란다. 끝으로 그렇게 될 경우 벌어질 웃지못할 상황을 하나 상상해보자.




잡스: 알고 계십니까? 이것이 바로 아이폰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이것이 미래입니다!
한국 대통령: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핵심 물가관리 대상이죠.
잡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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