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에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에 관련 법률제정이나 우선순위 조정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규제도 없이 무제한으로 모든 게 허용되는 시기는 기술 개발 초창기 뿐이다. 이런 '좋았던 시절'이 지나고 나면 사회적 논의를 거친 규제와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뒤에 남는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애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실제로 총탄이 날아가는 전쟁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기업의 사활이 걸렸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이채롭다. 바로 사용자의 데이터 이용권을 둘러싼 분쟁 때문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애플이 내년부터 앱 개발사가 사용자의 데이터를 추적할 경우에 이용자의 동의를 얻는 추가 관문을 넣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프라이버시 강화 정책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현재 이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광고 사업을 하고 있다. 이른바 '맞춤형 광고'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페이스북으로서는 사활적인 이익이 걸렸다는 판단이다. 

뉴욕타임스는 12월 16일 보도를 통해 어느 회사가 이기느냐에 따라 향후 수년간 인터넷의 모습이 바뀔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제까지는 사용자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페이스북 앱을 설치할 때 사용자 정보 추적에 동의했다. 이런 별도 과정이 되면 동의하지 않을 사용자가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애플은 아이폰이나 맥북 등 하드웨어 자체에 충분한 이익을 얹어서 팔기 때문에 굳이 이런 빅데이터를 세세히 수집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기기 자체 이용을 위한 정보이용 동의를 얻는 1차 플랫폼 사업자란 이점도 있다. 때문에 자사 기기 사용자의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대의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반면 페이스북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자사 하드웨어를 가지지 못한 앱 기반 플랫폼 사업자이자 '광고업체'다. 사용자 데이터를 제대로 얻지 못하면 엄청난 가입자 보유란 장점이 사라진다. 때문에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회사 임직원들에게 아이폰이 아닌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빅데이터 소유권 논쟁이 정작 사용자 의견은 배제한 채 이뤄진다는 점이다. 얼마전 부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국 플랫폼 업체가 개인정보를 그릇되게 이용하거나 관리소홀로 대량유출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페이스북도 수천만명의 개인정보를 도용당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을 일으켰다.

이에 팀 쿡 애플 CEO는 "애플은 여러분의 개인 사생활을 거래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프라이버시는 우리에게 인권과도 같으며, 그것은 시민권"이라고 주장했다.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이것은 애플이 하드웨어 업체이고 스스로는 특정 앱을 거치지 않고도 자기 플랫폼의 빅데이터를 얻을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미국 주요 일간지에 애플의 정책을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냈다. 전 세계 모든 곳에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애플과 맞서 싸우겠다는 내용이다. 애플이 앱스토어 통제력을 이용해 개발자와 중소기업들을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수익을 높이는 반경쟁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페이스북 측은 개인화된 광고가 없을 경우 평균 소기업 광고주들이 광고비 1달러당 60% 이상의 매출 하락을 보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문제는 이런 공룡 기업의 전쟁 가운데 정작 일반 사용자의 빅데이터 권리에 대한 인식은 없다는 점이다. 애플은 사용자의 권리를 내세우지만 애플 기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애플 아이디가 필요하며 기본설치된 애플 필수앱에서 당연히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용한다. 페이스북은 소상공인의 금전적 손실을 걱정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일반 이용자에게서 수집한 빅데이터에 대한 어떤 금전적 보상을 해 준 적이 없다. 

확실히 말해보자. 사용자 정보는 분명히 그걸 가지고 있는 개인의 소유다. 그것을 가지고 만든 빅데이터 역시 사용자의 엄밀한 동의와 감시, 허락 하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무엇인가? 하드웨어를 미끼로 그걸 수집하면서 다른 플랫폼을 배제하려는 애플이 정의인가? 아니면 이왕 애플도 이용하는 거 우리는 좀더 많이 수집해서 공짜로 광고에 쓰겠다는 페이스북이 정의인가?  정작 개인 사용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는 이 '전쟁'이 몹시 씁쓸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