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대전사를 읽어보면 연합군이 주축군에게 이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많이 나온다. 전쟁을 통해 양 진영은 필사적으로 첨단 군사기술을 개발하면서 경쟁한다. 최신 항공기, 탱크, 레이더 같은 직접적인 군사무기부터 시작해서 인조고무와 화학약품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는 상당히 크고 넓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을 때 다시 민간용 기술이 되어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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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승리의 요인으로 뽑히는 기술 가운데 중요한 것이 통신감청과 암호해독기술이다. 독일이 이니그마라고 부른 암호통신은 수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코드를 이용한 암호체계였다. 개발한 독일 진영은 이것을 정상적 방법으로는 연합군 측이 도저히 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전쟁 내내 썼다.


하지만 미군은 이것을 곧 풀어버렸고 독일군의 비밀통신을 감청할 수 있었다. 독일기술을 흉내낸 일본군의 비밀통신조차 해독기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미국은 이런 기술의 힘으로 전쟁을 승리하고 국가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통신감청기술이 그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해 나는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전쟁에 쓰인 다른 기술이 대부분 고스란히 쓰였다. 통신감청기술만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폐기하고 쓰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 내가 너무 순진해서였을까? 최근 미국의 전화 및 정보통신 감시기술이 드러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출처)




프리즘(사진출처: 디지털데일리)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월 8일(현지시각) 미 국가안보국이 세계 각국의 전화와 컴퓨터망을 통해 수집한 감시 데이터를 기록·분석하는 도구인 ‘국경 없는 정보원’을 특종 보도했다. 


이 도구는 전자우편·채팅 같은 정보를 토대로 그 내용이 아닌 정보의 수와 범주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활용해 전화·컴퓨터망 사용자들의 소속 국가와 국가별 정보량을 분석해 지도로 만든 ‘세계 열기 지도’도 폭로됐다. 첩보 수집량이 많은 국가 순서대로 빨강-주황-노랑-초록색이 채도별로 8단계로 구분돼 있다. 미 국가안보국은 사용자의 아이피(IP) 주소도 파악하고 있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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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 핵개발 국가인 이란, 탈레반 등 이슬람 무장세력의 근거지인 파키스탄, 미국의 중동 동맹국인 요르단 등 세 나라가 가장 높은 등급인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다. 지난 3월 한달 동안 국가안보국이 세계에서 수집한 정보는 모두 970억건이다. 이란 140억건, 파키스탄 135억건, 요르단 127억건, 이집트 76억건, 인도 63억건 순으로 많았다.


한국과 북한은 일본과 함께 감시 강도가 가장 낮은 수준인 초록색으로 표시됐다. 미국이 그동안 이란과 파키스탄 등 적대 세력이 활동하는 국가는 물론 시리아 문제 등에서 미국과 공조해온 요르단까지 집중적인 감시를 해온 사실이 드러나 국제적인 논란이 일 전망이다.

 

미 국가안보국은 미국 안에서도 3월 한달간 28억9000건의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이라크 등과 같은 감시 수준인 노랑 등급이었다. 국가안보국은 전화통화 기록 및 정보통신(IT) 기업 서버 감시가 드러나 ‘빅브러더’ 논란이 일자 “미국인의 정보는 수집하지 않았다”고 해명해왔다.


정부의 정보수집 활동을 몇년째 보고받고도 묵인한 의회와 고객 정보를 정부에 통째로 넘긴 의혹을 받고 있는 정보통신 기업들도 ‘빅브러더’에 협조한 ‘브러더’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8일 “‘프리즘’(인터넷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에 대해 2009년 이래 13차례나 의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구글 등 프리즘에 관련된 9개 회사는 ‘백도어’(일부러 뚫은 보안 구멍)를 부인하고 있지만, 정부가 프리즘을 인정한 상황이라 다시 해명을 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미국에서 드러난 이 사건에서 '프리즘' 이라는 인터넷 정보수집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문명화된 국가라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컴퓨터와 전화, 스마트폰 등의 핵심 운영체제는 전부 미국기업이 만든다. 따라서 미국정부 입장에서는 적대세력을 감시하는 데 이처럼 편한 상황이 없다. 점유율이 한자리 수에도 못미치는 리눅스와 기타 운영체제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운영체제의 회사 몇군데만 찾아가서 협력을 얻어내면 전세계의 모든 정보통신을 감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번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에는 많은 미국기업들이 의혹에 싸여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고 제대로 업무나 개인용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프리즘, 미국이 통신을 감시하는 이유는?


이렇듯 미국이 통신을 감시하는 이유는 결국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서다. 따지고보면 2차대전의 연장선상에서 전세계의 적대세력이 주고받는 통신을 감시하려는 것이다.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은 사라졌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눈에 보이는 교전국만 사라진 것 뿐이다. 이후에도 구소련이 있었고 중국이 있었으며 지금은 아랍테러단체와 북한 등 미국의 적은 찾으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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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독일과 일본의 암호체계를 뚫고 상대를 감시한 것이 승리의 결정적 이유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 전쟁사 책에서 그렇게 적혀있다. 따라서 프리즘을 비롯한 통신감청은 미국 입장에서 매우 당연한 유혹이고 행동이다. 실체가 드러나자 미국정부가 한 해명을 보자. 미국인의 정보는 수집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런 면에서 당연하다. 2차대전때도 미국인의 통신은 구태여 감청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나라다. 미국과 이른바 혈맹으로 불리는 국가인 한국과 일본 조차도 감시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저 감시의 강도가 가장 약할 뿐이다. 감시를 한다는 건 언제든지 등급을 올려서 강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오로지 신경을 쓰는 것은 '미국시민의 권리'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까? 이것은 매우 곤혹스럽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감시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우리 생활 속에서 지금부터 미국IT기업의 제품을 전부 추방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확보되는 보안이 떨어지는 삶의 질보다 나은가?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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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운영체제의 소스코드 개방을 유도하면서 각 국가가 스스로의 보안체계를 그 안에 구축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리눅스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에 응하지 않는 등 개인이 스스로의 보안에 대해 조금씩 신경을 쓰면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약간의 대책이 될 수 있다. 옛날 유행한 모광고처럼 때로는 잠시 스마트폰과 첨단기기의 전원을 끄고 자연을 느끼는 것도 좋을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