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나열한 모든 플랫폼의 공통점은 기술에 따라서 생겨난 미디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 안에 담기는 컨텐츠도 기술발전에 따라서 변화한다.


예를 들어서 전자책은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가장 먼저 생겼다. 녹색화면에 텍스트만 간신히 표시할 수 있을 때부터 책 내용을 디지털로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단지 텍스트를 파일에 담아서 보관하고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게 여겨졌다. 따라서 컨텐츠는 다만 흑백의 신호만 구별할 수 있는 형태의 책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생기면서 전자책은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의 표시능력이 늘어나면서 컬러와 다양한 폰트를 갖추게 되었다. 나아가서 그래픽과 동영상이 첨가되자 잡지와 그림책 같은 컨텐츠도 생겨났다. 모바일 기기인 태블릿과 스마트폰, 전자책 단말기가 생겨나면서 전자책은 무선 인터넷과 3G망을 타고 개인 정보기기에서 직접 사서 읽을 수 있는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발달은 플랫폼 변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고전적인 종이책 형태보다는 새로운 플랫폼에 맞게 클릭하고 반응하는 형태가 주목받았다. 특히 돈을 받고 파는 상업적인 전자책에서는 그 차이가 심하게 나타난다.

정지된 글과 사진을 제공하는 PDF형식이나 E-PUB 형식에서 벗어나서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상하 좌우 스크롤과 클릭, 드래그 기능을 적극 활용한 전자책이 나타난 것이다. 해외 잡지에서는 벌써 빠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기술에 따라 바뀐 플랫폼 특성이 성공하는 컨텐츠의 특성까지 변화시키는 좋은 예다.



IT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때까지 수많은 플랫폼이 개발되어 나왔다. 또한 그 플랫폼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줄 컨텐츠도 함께 나왔다. 그들 가운데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실패했다. 새로운 플랫폼의 발표는 사람들을 들뜨게 하지만 정작 매력적인 컨텐츠가 나오지 않으면 함께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한다. 새로운 기능과 더 빠른 성능을 갖추면 사람들이 기꺼이 플랫폼을 사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플랫폼을 성공시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컨텐츠였다. 그 가운데 어떤 컨텐츠는 그 하나만으로 플랫폼의 성패를 크게 좌우하기도 한다.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킬러 컨텐츠’ 라고 한다.

플랫폼의 성공, 킬러컨텐츠에 달린 이유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만든 개인용 컴퓨터 애플2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에 애플1은 단순한 컴퓨터 애호가의 장난감이었다. 그러다가 애플2로 넘어오면서 간단한 연산과 게임을 할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애플2의 판매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것은 ‘비지칼크’란 스프레드 시트였다. 기업에서 회계를 위해서 썼던 종이장부를 보다 편리하고 빠르게 만든 이 소프트웨어로 인해서 애플은 장난감이 아니라 업무용 기기로 변신했다. 한때 애플2는 비지칼크로 인해 개인용과 업무용에서 최고 자리를 차지하는 컴퓨터가 되었다.



애플2에 이어 애플 또 하나의 히트작인 매킨토시의 입지를 다져준 것 역시 컨텐츠였다. 당시에는 컴퓨터로 화면에 여러가지 문서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이것을 그대로 종이에 인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매킨토시는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을 통해 화면에 표시되는 폰트를 매우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매끈하게 바꿀 수 있었다. 또한 이것을 레이저프린터를 통해 똑같이 출력하는 솔루션을 개발해냈다.

그러자 그동안 비싼 장난감 정도로 치부되던 매킨토시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매킨토시를 이용해서 책이나 고급 문서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생산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 어도비에서 내놓은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 시리즈가 디지털 사진과 그래픽 업계에서 환영받았다. 결국 이런 솔루션들이 킬러 컨텐츠가 되어 플랫폼을 성공시켰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양질의 컨텐츠는 플랫폼의 특징을 잘 살리는 데 있다. 그런데 플랫폼은 항상 변화하고 발전한다. 따라서 항상 해오던 방식대로 만드는 컨텐츠는 한때는 성공할 지 몰라도 계속 성공할 수 없다.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플랫폼의 성능과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라디오의 시대가 저물고 텔레비젼이 보급되었을 때 소리를 듣는 청취자에서 보고 듣는 시청자로 변한 소비자가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새로 생긴 감각인 시각적 즐거움이다. 그런데 텔레비전 방송 초창기에는 이런 소비자의 기대에 못미치는 방송형식이 많았다. 그냥 사람 한 명이 앉아서 표정 변화도 없이 뉴스를 읽고 내보내기도 했다. 방송을 제작하는 인력들이 플랫폼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히도 소비자들은 점차 그런 구태의연한 컨텐츠를 외면했다. 결국 방송사들은 뉴스에서도 화면효과와 자막, 현장 연결과 카메라 전환을 통해 시각을 만족시키는 컨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오락프로그램에서도 두드러졌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란 팝송은 이런 상황을 한줄의 제목으로 압축하고 있다. 소리만 들리는 라디오에서 활약한 스타들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쇼 방송의 영상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갔던 것이다.


텔레비전 또한 계속 발전했다. 흑백 텔레비전에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발전한 것 역시 중대한 플랫폼의 변화였다. 이 시기에 등장했던 일본의 특촬물을 보자. 레드, 블루, 그린, 옐로, 핑크 등의 원색 타이즈 슈츠를 입은 슈퍼히어로 들이 전대를 구성해서 악당과 싸운다.


이들이 어째서 이런 다소 촌스러운 원색 슈츠를 입어야 했을까? 그것은 컬러 텔레비전으로 막 전환된 시점에서 컬러라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삼원색이 R(적), G(녹), B(청)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선명한 원색은 강렬한 인상을 주게 되어 이후 특촬물 자체의 커다란 특징이 되기에 이르렀다. 성공한 컨텐츠 공식이 된 것이다.


플랫폼의 변화에 잘 따라가는 컨텐츠만이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잘 된 컨텐츠가 바로 킬러컨텐츠이기에 플랫폼의 성공이 킬러컨텐츠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