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니지만 몇 달전까지만 해도 나는 햄버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어떤 달에는 거의 한 달 가운데 20일 이상의 점심을 햄버거 세트로 채운 적이 있었다.내 입맛에는 저렴한 가격에 한결같은 맛을 내주는 햄버거가 매우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내 신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몇 가지 변화로 인해 더이상 나는 햄버거세트로 간단히 점심을 먹지 않게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일 아니냐고 누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솔직히 맥도널드나 롯데리아의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좋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었는가? 그런건 거액을 받고 광고에 출연하는 광고모델조차도 하지 못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굳이 따지자면 햄버거 자체의 잘못이 아니다. 햄버거란 음식을 잘 살펴보면 모든 음식과 기본이 매우 동일하다. 고기패티, 빵, 샐러드, 소스로 이뤄진 햄버거가 몸에 해롭다면 관련되는 모든 음식이 몸에 해로워야 한다. 샌드위치나 스테이크, 빵이 몸에 해롭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은 재료의 질과 꾸밈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얼마전부터 '수제버거'에 주목했다. 햄버거란 틀을 유지하고도 몸에 해롭지 않고 맛좋은 고급 음식으로 업그레이드시켜준 것이 바로 수제버거다. 국내에도 여러 가지 브랜드의 수제버거가 있어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수제버거를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지인과 함께 수제버거집에서 만나게되었다.



고블 앤 고. 무엇인가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이다. 영어로 크게 써진 간판에는 아이콘 식으로 기호가 배열되어 있어 굳이 많은 말을 쓰지 않아도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새로로 세워진 것은 햄버거를 상징하는 듯 싶다.




입구에 붙은 햄버거 사진은 푸짐하고도 아름답다. 음식이 아름답다는 말은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고급스럽게 요리로서 장식한 햄버거는 그래서 '수제버거' 인 것이고 고급요리가 된다. 메뉴의 가격을 보면 이미 이 곳은 패스트푸드가 아닌 '요리'를 맛보는 곳이란 점을 알게 된다.



보통 패스트푸드 점이 캐주얼한 분위기인데 비해서 고블엔고는 무게감이 있다. 너무 딱딱하지는 않지만 적당한 차분함을 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아마 '기껏해야 햄버거인데 뭘.'이라고 가는 사람은 약간이나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약간 어두운 가운데 분위기는 미국이나 유럽의 패밀리레스토랑 같다. 무선인터넷을 서비스하고 접속법을 크게 써놓은 점이 재미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무선인터넷을 즐긴다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메뉴는 크게 브런치와 버거, 사이드 메뉴와 파스타, 드링크로 나뉜다. 너무 번잡하지 않은 가운데 최소한의 다양성이 있는 구성이다. 마침 목이 말랐는데 스페셜드링크라고 표시된 홈메이드 레몬 드링크가 눈길을 끈다.



주문한 수제버거가 나왔다. 샐러드 위에 눈이 내린 듯 하얀 드레싱이 얹어졌다. 역시 싸구려 햄버거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이건 요리인 것이다.  뒤이어 알로하 버거. 감자가 곁들여진 채로 샐러드가 탑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작은 감동을 던져준다. 어머, 이건 한번은 꼭 먹어야 해! 하는 느낌?



아까 메뉴에서 본 홈메이드 베리 드링크와 레몬 드링크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기분인데 쭉 들이키자 달콤하고도 차가운 느낌이 목을 통해 전해진다.


두툼하고도 질좋은 패티와 함께 샐러드를 잘라서 포크로 집어든다. 그대로 먹으면 되는데 손으로 먹지 않고 포크로 빵과 함께 먹는 것은 기분부터가 다르다. 손으로 대충 집어먹는 햄버거와는 이젠 별로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스테이크를 자르듯 나이프로 조심스럽게 자르고는 떠서 먹어본다. 고기와 양파,  샐러드가 입 안에서 씹히며 풍부한 맛을 낸다. 


브런치 샐러드도 주문했다. 단순한 샐러드가 아닌 만큼 과연 푸짐해보인다. 이 정도면 다른 식사를 안하고 이것만으로도 간단히 한 끼는 충분할 것 같다. 아침에 호텔에서 간단하게 먹으면 딱 좋겠다 싶을 정도이다.


수제버거의 핵심은 결국 고기패티다. 얼마나 좋은 고기를 써서 잘 만들었느냐 하는 점인데 적어도 내 입맛으로는 확연히 느껴졌다. 햄버그 스테이크가 제대로 만들면 스테이크 보다도 맛있다는 그런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사이드 메뉴로서 마늘이 들어간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갈릭 올리브 오일 파스타. 수제버거 만으로 다소 단조로운 흐름이 될 뻔하던 테이블에 색다른 활기를 준다. 특히 양파 하나가 통째로 살아있는 저 비주얼은...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맛이다.



토마토 킹 프라운 파스타. 토마토 소스와 새우가 들어간 스파게티는 기본적인 스파게티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다소 기름진 수제버거의 맛에 산뜻함을 더해준다. 칼로리를 걱정하고 기름진 음식에 약간 여성분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마침 장마철이라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잠시 내린 소나기이긴 하지만 덥기만 하던 날씨에 활력을 주는 좋은 비였다.
 


후식으로 달콤한 디저트와 부드러운 드링크를 즐기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몬트블랜크 프렌치 토스트는 달콤한 시럽을 뿌리면 먹음직한 모습으로 완성된다.



고블엔고는 그동안 햄버거에만 길들여진 나에게 좋은 체험을 가져다주었다. 수제버거의 매력이랄까. 햄버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나의 요리로서 앞으로는 햄버거보다는 수제버거를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다. 사람의 정성이고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