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티즌 가운데 돌아다니는 말로 '대고소시대' 라는 단어가 있다. 어떻게 보면 세계사와 게임에 나오는 '대항해시대'를 이용한 패러디 단어 같다. 암흑기라고 부른 중세를 지나서 르네상스를 맞이한 유럽이 활발한 항해를 통해 신대륙을 발견하고 활기에 넘쳐있던 시기가 대항해시대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와 영국이 교역을 통해 이익을 보고 함대를 육성했던 대항해시대는 아직도 로망의 시대로 일컬어진다.



물론 대고소시대는 그런 로망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애플이 스스로의 아이폰, 아이패드 특허권을 무기로 경쟁사를 향해 많은 고소를 쏟아내면서 시작된 일련의 무차별 고소 사태를 비꼬는 말이다. 특허괴물이란 말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FRAND란 단어가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애플의 대고소시대에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은 한국의 삼성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현재 애플에 가장 돈과 화제를 몰아주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경쟁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팟을 둘러싸고 따스한 파트너쉽이 형성됐던 시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애플과 잡스의 뿌리깊은 배신공포증과 표절에 대한 피해의식은 상업적 이익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법정에서 지루한 공방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잡스는 이미 그의 전기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열핵병기를 사용한 전쟁도 불사하겠으며, 최후의 회사돈 1페니까지도 사용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분노와 특허를 침해당했다는 슬픔이야 애플의 것이고, 정작 법정은 그런 비장한 (?) 느낌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 번역 클리앙 최완기님)

블룸버그에 의하면, 영국판사는 삼성이 애플을 카피하지 않았다고 자사 웹사이트에 공시하라고 애플에게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판사는 삼성이 애플 iPad을 카피하지 않았다는 최근 판결을 밝히는 내용을 애플 웹사이트와 영국 신문들에 공시하라고 명령했다. 애플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자사 웹사이트에 이를 공시해야 한다.
애플은 이달 초 영국법원에서 삼성 태블릿들이 자사 iPad을 카피했다고 제소했으나, 판사는 갤럭시 탭 태블릿들이 iPad과 혼동할 만큼 "쿨"하지 않다고 판결한 바 있다.
 
*업데이트*: 이제 막 포스팅 된 블룸버그 기사에 의하면, 판사 콜린 버스는 애플 제품을 카피했다는 삼성의 손상된 평판을 정정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애플 웹사이트에 포스팅 하고, 수개의 신문들과 잡지들에 공시하라고 애플에게 명령했다.
이 명령은 애플이 삼성을 위해 "광고"를 해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애플에게 편파적인 것이라고 애플을 대리했던 변호사 리처드 하콘은 말했다. 그는 "어떤 회사도 자사 웹사이트에 경쟁사를 참조하도록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전 영국판사의 재미있는 판결문 이후의 후속조치를 둘러싼 뉴스다. 그때 일부 네티즌들은 캘럭시탭이 아이패드만큼 쿨하지 못하다는 이 판결문을 둘러싸고 삼성의 굴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맞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삼성의 굴욕이고 애플의 칭찬이다. 가장 냉정해야할 법정에서도 애플의 디자인 우월성과 삼성의 카피캣 행위를 널리 인정하는 뼈 있는 멘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만 받아들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너무 순수한 것이다.

애플과 삼성, 판사가 쿨하지 못해 미안해?

후속조치를 보자. 판사 콜린 버스는 애플 제품을 카피했다는 삼성의 손상된 평판을 정정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애플 웹사이트에 포스팅 하고, 수개의 신문들과 잡지들에 공시하라고 애플에게 명령했다. 이것은 통상적인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보다 매우 강하다. 설령 재판에 지더라도 삼성을 카피캣으로 인식시킨다면 충분한 마케팅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라는 애플의 이익을 파괴하는 행동이다.

이전의 판결문에서도 결국 근거는 아이패드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선행 디자인이 있었기에 삼성이 애플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이패드의 디자인 자체가 특허대상이 될 수 없으니 특허침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판결을 내리면서 갤럭시탭이 아이패드만큼 쿨하지 못하다는 말을 한 것은 무슨 뜻일까? 단지 심심해서 내뱉은 농담일까?



아니다. 이 말에는 애플과 삼성의 지루한 법정공방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한 마디로 애플에게 '너희 제품 잘난 거 나도 알고 사람들도 다 알아. 그러니까 이제 고소 좀 그만해!'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해리포터에서도 보듯이 영국식 유머는 독설에 가깝다. 칭찬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단어를 써도 그 안의 본뜻은 전혀 다르다. 

애플은 계속되는 고소의 근거로서 소비자들이 삼성제품과 애플제품을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가장 큰 근거로 삼는다. 따라서 판사는 갤럭시탭이 아이패드와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애플의 주장에 대해서 '혼동될 우려 전혀 없어! 너희 것이 더 멋있어!' 라고 말한 것이다.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그 말에는 '아이패드 멋지게 만든거 칭찬해줄 테니 고소는 그만해.' 라는 확연한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결국 애플의 대고소시대와 갤럭시탭, 아이패드의 소송에 대해 영국판사는 쿨(냉정)하지 못했던 셈이다. 거듭되는 재판에 짜증이 난 판사 입장에서는 '이런 쓸데없는 일거리 좀 갖고 오지 마!' 라는 핀잔을 주는 메시지도 된 셈이다.



애플이 이후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아닙니다! 저희 것은 갤럭시탭보다 별로 쿨하지 않아요! 그래서 소비자들이 착각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게 될까? 혹은 삼성이 '무슨 말입니까? 갤럭시탭은 아이패드만큼 쿨합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착각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게 될까? 한번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