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IT강국이었던 한국에서 요즘 스티브 잡스 열풍이 불고 있다. 공식 전기가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1위가 된 것은 물론이고, 기업들은 앞다투어 스티브 잡스같은 인재를 원한다고 말한다. 또한 제 2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며 야심차게 계획을 발표한 소프트웨어 인재육성 기관도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꼭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한국에서 이렇게 열광하는 만큼 진정으로 ‘스티브 잡스’를 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우리 한번 거울 앞에 선 잡스처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과연 스티브 잡스를 원하는가?’


스티브 잡스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빛과 어둠이 뚜렷이 갈리는 인물이다. 성격이나 기업운영 방식도 매우 극단적이다. 따라서 그의 눈부신 성과를 이해하고 본받으려면, 필연적으로 그의 극단적인 생활방식과 운영방침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출간된 전기에서 잡스의 독특한 히피행각에 대한 일화는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육식을 하지 않고 철저히 과일과 야채만 먹는 채식주의자였다. 그 때문에 자기는 목욕을 하지 않아도 청결하다고 생각해서 실제로는 악취를 풍기는 묘한 청년이었다. 인도에 대한 궁금증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선불교와 명상을 꾸준히 실천했다.


이런 요소들이 잡스의 업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명상을 즐기는 잡스는 그 와중에 나오는 컴퓨터의 소음을 몹시 싫어했다. 때문에 일찌감치 소음이 나지 않는 전원공급장치를 개발해서 애플2 컴퓨터에 채용했다. 또한 이런 전통은 이어져서 지금도 애플의 컴퓨터는 대부분 발열과 소음이 적다.


잡스가 번뜩이는 영감으로 내놓는 새로운 발상은 어떨까. 잡스는 마리화나를 피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라이벌인 빌 게이츠에게 너무 고지식하다면서 마리화나라도 피워보면 세상이 달라보일 거라고 했다. 이것이 단지 마약을 권하는 망언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약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잡스의 인생속에 스며든 그런 일탈적 행동은 종종 기존의 상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영감과 도전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한국으로 돌려보자. 각 회사의 CEO들이 원한다고 하는 잡스형 인재란 대체 무엇일까? 엄밀히 말해서 그 본질이란 결국 ‘좋은 제품을 개발해서 회사에 돈 많이 벌어주는 인재.’란 지극히 추상적이고도 단순한 개념에 불과하다. 그런데 막상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그런 인재로 꼽은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타협을 모르고, 돌발행동을 일삼으며, 일탈적인 성격을 가졌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최근 한 언론에서 내놓은 인재론이 눈길을 끈다.(출처)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괴팍한 천재'에 대한 믿음을 가져 왔어요. '괴짜'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창의적이며 훌륭한 업적을 낸다는 것이지요. 선배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 듯하더군요. 그런데 최근 그런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괴팍한 천재설에 반박하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기업들도 성격에 결함이 있는 리더들을 꺼리고 있거든요.


'약탈적 리더'라는 개념도 있어요. 이들은 아랫사람들의 진을 빼고, 회사가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하게 '뛰어난' 실적을 내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이 한번 지나간 자리에선 후임자들이 결코 좋은 실적을 낼 수 없어요. 만약 사장이 그런 사람이었을 경우 회사가 쓰러지기도 하죠. '단물'을 다 빨렸으니까요.


요즘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이런 문제와 관련된 경험과 데이터가 예전보다 훨씬 많이 축적돼 있어요. 능력은 있지만 인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떤 현상과 피해가 나타나는지를 수치로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이에요.


반대로 심성이 착한 사람을 썼을 때 성과가 올라간다는 근거도 많아요. 요즘에는 거의 모든 일이 팀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이에요. 팀워크의 기본은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에요. 프로 도박사 출신인 이태혁 씨의 책('사람을 읽는 기술')에 '마피아도 착한 사람을 뽑는다'란 대목이 나와요. 친구인 러시아 마피아 조직원에게 직접 들은 말이래요.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조직원 후보는 충성심이 높은 사람이며, 그중에서도 심성이 착하고 눈빛이 맑은 사람이 영순위랍니다. 심성이 착한 사람은 조직을 배신할 위험이 적다는 게 그 이유라나요. 물론 그런 사람이 팀워크도 좋겠지요.


그래도 성질 죽이지 않고 살고 싶다고요? 그럼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째는 스티브 잡스처럼 '신적인 존재'가 되는 거예요. 잡스 정도면 성격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도 직장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게 아니면 회사에 관리자가 아닌 전문가로 남게 해달라고 해 보세요. 둘 다 쉽지 않죠? 그럼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신입사원 면접장을 예로 들어보자. 청년 시절의 잡스가 한국의 대기업 면접장에 왔다고 치자. 몇 달간 목욕도 안한 청년에 양복은 커녕 이상한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온다. 면접관이 시키는 대로 차분히 대답하기는 커녕 다짜고짜 면접관에게 다가가서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 상세한 자기소개라든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기가 막힌 채용관이 서류를 본다. 서류에 적힌 경력은 매우 불우한 가정환경(입양아)에다가 고등학교만 졸업했으며 대학은 중퇴, 게다가 자격증이나 스펙이 될만한 어떤 것도 없다. 과연 이런 사람을 한국 대기업에서 채용할 수 있을까? 설령 면접관이 억지로 뽑아올렸다고 해도 부서에서 받아들이기나 할까?


즉 스티브 잡스가 다시 환생해서 청년시절로 돌아가 한국기업에 입사를 희망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어떤 곳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이야기다. 그러면 미국은? 실제로 미국 아타리사는 이 청년을 받아들여 일을 시켰다. 또한 이 청년을 믿고 큰 투자를 해준 투자가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를 만든 미국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다. 그리고 위에서 나온 기사는 결국 한국이 스티브 잡스 같은 괴팍한 상사를 원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이 과연 스티브 잡스형 인재를 원할까?


정리해 보자. 한국은 스티브 잡스형 인재를 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잡스가 만들어낸 결과물과 돈을 원할 뿐이다. 빌 게이츠가 주목받던 십년 전에는 빌게이츠를 원한다고 했던 기업이 이제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은 스티브 잡스라는 인간을 결점까지 통째로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못한다. 그저 잡스가 일군 과실만 탐낼 뿐이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다. 단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장점을 취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될까?


지금의 한국은 스티브 잡스형 인재를 가질 수 없다. 이런 인재가 설령 어딘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그를 받아들여 성공시킬 여건이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만들어내는 기술과 문화현상이 부럽고, 그 천문학적인 이익을 탐내기 이전에 과연 우리가 무엇이 모자라는지 보다 깊이 생각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나중에라도 우리가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전문 참조 - 한겨레 오피니언훅 - 안병도의 IT뒤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