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라는 게 있다. 의사가 수술 후 가위를 넣고 잘못 봉합했다든가 하는 당연한 과실도 있지만 때로는 병이 아닌 것을 잘못 진단했다든가 처방을 잘못 했다든가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 의료사고는 재판까지 가는 경우가 적다. 의학이라는 영역이 워낙 고도의 판단이 따르기 때문이다. 재판까지 가면 법관이나 환자가 의학지식을 잘 모르기에 의사쪽으로 유리한 판결이 나기 쉽다.



어쩌면 이것도 그와 비슷한 사건일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유명한 백신회사인 시만텍이 소비자에게 고소당했다는 것이다. (출처)

악성코드에 감염됐다는 경고문에 놀라 백신 프로그램 유로 버전을 구매한 사용자가 “허위 안내문에 속아 결제하게 됐다”라며 해당 보안업체를 고소한 일이 발생했다. 피소된 업체는 시만텍이다.

로이터는 1월10일(현지기준) 시만텍이 정상 PC에 악성코드에 감염됐다는 경고문을 띄워 백신 프로그램 구매를 유도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섰다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주에 거주하는 제임스 그로스가 캘리포니아 산 호세 법원에 “시만텍의 악성코드 감염 공지 때문에 구매하지 않아도 될 유로 버전을 구매하게 됐다”라며 시만텍을 고소했다.

문제의 제품은 시만텍 노턴 유틸리티 무료 버전으로 PC를 보호하고 성능을 최적화시키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이 제품은 사용자의 컴퓨터를 스캔해 어떤 보안 위협이 존재하는지 사전에 탐지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리드라이트웹은 다국적 시장조사 겸 컨설팅 업체 오범의 앤디 켈렛 수석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어떻게 시만텍이 허위 악성코드를 유포하고, 어떤 속임수를 통해서 이득을 보려고 했는지 증명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결국 이 소송은 시만텍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 이라고 전했다.

이번 고소에 대해 시만텍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시만텍 대변인은 “캘리포니아 산 호세 법원에서 발생한 사건에 중요성을 알고 있다”라며 “소송 초기 단계로서 이와 관계된 그 어떤 추가 정보를 아직은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시만텍같은 유명한 업체는 아니지만 이미 몇몇 독자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백신 행세를 하는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깔리면서 컴퓨터를 보호한답시고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를 검출해서 겁주던 일 말이다. 이런 가짜 백신은 대체 왜 나오는 걸까?

사실 소중한 자료가 들어있고, 따로 백업 데이터도 없는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있다고 하면 어쨌든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항상 인터넷을 통해 바이러스와 악성코드에 노출되어있다. 심지어는 공신력 있는 업체에서 파악하고 백신을 배포하기도 전에 틈새를 노리는 제로데이 바이러스까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몇 푼 안되는 돈으로 내 데이터와 시스템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면 당연히 유혹을 느낀다.

가짜 백신? 악성코드 없는 경보는 왜 나오나?



가짜 백신들은 이런 공포감을 노린다. 우리가 보통 병원에서 치료가 비교적 쉽고 돈도 적게 들지만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그 진위를 확인하기 보다는 바로 치료해달라고 말하게 된다. 신중한 판단을 하겠다고 다른 병원 몇 곳을 돌아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심리상의 헛점이 가짜 백신을 만든다.

그럼 진짜 백신은 과연 그릇된 경보를 하지 않느냐? 그건 아니다. 진짜 백신이라고 해도 잘못된 경보를 하게 되는데 그것 역시 매우 간단한 원리에 기초한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을 때 경보를 울리는 것에 대해서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백신에 대해서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무엇일까. 진짜로 사용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경보를 울리고 치료해주는 것이다. 특히 걸리기 전에 바로 경보를 해주는 예방기능을 중시한다. 그런데 걸렸음에도 경보를 안띄우거나 늦게 띄우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차라리 미심쩍을 때 경보를 미리 자주 띄우는 건 그다지 문제가 덜하다. 또한 미리 어쨌든 띄워놓으면 법적 책임을 면하는 구실도 된다.

따라서 가짜백신은 물론 진짜백신조차도 책임회피 차원에서 조금만 이상한 코드를 만나도 무조건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아마도 위의 시만텍도 굳이 사용자의 주머니를 당장 털겠다는 생각보다 미리 경보를 울려놓겠다는 의도였다가 저런 상황을 만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여기서 양치기 소년의 일화를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양치기 소년의 잘못된 경보에 속아 모였던 상황이 아니다. 진짜 늑대가 와서 경보를 울렸음에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가짜백신과 과잉경보의 부작용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