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흔히 쓰는 말 가운데 가장 쉽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의미를 내포한 단어가 있다. 바로 ‘적당히’라는 말이다. 이것은 대강 해도 된다는 뜻이지만, 알아서 최적화하라는 매우 스마트한 뜻도 된다.

한국 드라마 가운데 재벌 2세가 나오는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자. 거기서 재벌 2세가 삐뚤어지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만일 아버지가 자식에게 너무 기대하고 간섭하면 ‘너무 과한 기대와 과보호가 부담스러워서’ 삐뚤어진다. 그럼 만일 자식을 거의 놓아주면? 이번에는 ‘관심과 애정을 못받아서’ 삐뚤어진다. 적당히 관심을 준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럼 여기서 IT이슈를 한 가지 꺼내보자. 흔히 우리가 말하는 온라인에서의 저작권은 어느 정도로 보호해야 할까? 이 문제를 다룬  미국의 법안을 둘러싸고 무엇이 적당한 지에 대한 고민을 미국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처)

소니, 닌텐도, EA 등 게임업계 3대 거대기업들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SOPA (Stop Online Piracy Act) 법안 지원을 철회했다.

이 법안은 붑법복제 자료들을 웹사이트에서 완전히 근절하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만일 이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면 컨텐트 제공사들은 판권이 있는 자료들을 게재한 사이트들과 이들을 링크하는 사이트들을 문 닫게 할 수 있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회사들은 페이스북, 위키페디아, 이베이, 트위터 등이고, 찬성하는 회사들은 유니버설, 워너 브라더즈, 비아콤, ESPN, ABC, MLB, NFL 등이다.



컨텐츠를 주로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에만 수익모델을 둔 사업자는 당연히 모든 컨텐츠의 완벽한 보호를 원한다. 이들은 그 보호가 너무 과해서 자유로운 유통이 잘 안되는 한이 있더라도 불법복제로 인한 손해보다는 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튠스를 만들고 MP3음악을 정상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미국의 주요 음반사를 찾았을 때를 보자. 이때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냅스터를 통해 공짜 음악이 전세계에 퍼지고 음반사들은 이에 반발해 돈을 주고 산 음반CD에 사용자의 불편과 권리침해를 야기하면서까지 강한 복제방지장치를 걸었다. 그것은 마치 악순환처럼 불편한 음반을 사지 않고 인터넷에서 편한 공짜 음원을 얻으려는 욕구를 부채질했다. 

견디다못한 음반사들이 냅스터를 고소했지만 사실 대안은 없었다. 그들은 음반이란 매체에만 집착했다. 온라인으로 음악이 진출하면 즉시 불법복사로 이윤을 상실할 거란 공포만 있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컨텐츠 보호를 강화한 독자 음원 사이트를 열었지만 과다한 보호장치로 인해 전혀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 스티브 잡스는 음원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대신, 약간의 보호장치를 넣는 방안을 제시한다. 소비자에게는 불편을 최소화한 값싼 음원을 제공하고, 생산자에게는 박리다매의 고수익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이 방법은 냅스터의 유죄와 맞물리며 전세계 음원시장을 바꿨다. 

지금 게임시장에서 컨텐츠 보호를 주장하는 생산자들 역시 예전의 형태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과다한 보호가 주는 악순환을 그다지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반면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과다한 보호로 인해 직접 피해를 볼 정보유통업체들이다. 자칫하면 게임에 대한 간단한 스크린 샷이나 홍보영상조차 규제의 위험 때문에 움츠러들면 이들은 금방 피해를 보게 된다.

미국의 이 SOPA 법안은 간단히 말해서 불법 컨텐츠의 모든 유통과 발원지를 한꺼번에 무제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불법 영상을 누군가 유튜브에 올리고 이것을 페이스북에 링크한다. 그걸 본 블로그 A가 링크하고, 블로그 B가 인용해서 링크하고 트위터에 올리면? 유튜브, 페이스북, 해당 블로그 서비스회사. 블로거A,  블로거B와 트위터까지 전부 처벌받는 법안이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발본색원’ - 뿌리를 뽑기 위한 법이다.



문제는 저 뉴스 가운데 반대쪽에 있는 이베이의 존재다. 이베이는 게임의 유통과 홍보도 하지만 동시에 판매도 한다. 따라서 불법복제가 근절되면 이익이다. 하지만 이베이 입장에서는 업체들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중고거래의 길도 막힐 뿐더러, 정품 게임조차도 활성화되지 못하면 수익이 줄어드니 반대하는 것이다.

온라인 저작권,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무엇이든지 적당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고 논리가 분명해도 지나칠 정도로 한쪽 편에 치우친 조치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부른다. 온라인 저작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업계를 비롯한 컨텐츠 생산자들에게 저작권은 중요하다. 나 역시 컨텐츠 생산자의 한사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정도라는 게 있다. 지나친 방임에 몫지 않게 지나친 보호도 유통과 홍보를 위축시킨다. 


한국도 불법복사가 많은 나라이기에 언젠가 저런 과격한 방식의 보호법안이 제기될 지 모른다. 좀더 논의해봐야할 일이지만 부디 그때가 왔을 때 컨텐츠를 살리려다 유통과 홍보를 전부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