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는 없지만 미국에 있는 재미있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로 대표되는 농담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이 표현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정의의 주인공이 악당을 몰아넣고는 농담을 던진다. 좋은 뉴스 먼저? 아니면 나쁜 뉴스 먼저? 라고 말한다. 얼떨결에 좋은 뉴스를 선택한 악당에게 ‘좋은 뉴스는 네가 오늘 여기서 죽지 않을 거란 사실이지.’ 라고 말한다. 안심하는 악당에게 주인공은 ‘그럼 이번에는 나쁜 뉴스를 말해주지. 바로 오늘이 만우절이란 사실이야!’ 라며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반전을 이끌어내는 유쾌함이 재미있다.



이런 농담이 발달해서 그럴까? 미국과 관련된 뉴스 가운데 개그에 가까운 반전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주로 한 가지 뉴스에서가 아니고 두 가지 이상의 뉴스를 비교하다보면 그런 경우가 나오는 데 이번에는 애플을 둘러싼 뉴스에서 흥미로운 경우가 나왔다. (출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미국 애플사를 동반성장의 가장 좋은 사례로 꼽았다. 최 장관은 7월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제주 하계 포럼 강연회에서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며 "애플은 좋은 산업 생태계를 이루며 중소기업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 중 애플과 거래하는 기업이 있는데 어느날 애플이 먼저 이메일을 보내 납품가를 올려주겠다고 했다더라"라며 "애플이 이 정도로 생태계를 중요시하고 관리하고 있기에 오늘날 스마트폰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큰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기업, 시장경제 원리와 도덕적 사회가치의 균형을 이루는 기업"이라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뉴스를 보자. 지식경제부 장관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애플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이 없는 사실을 꾸며댔을 리도 없으니 일단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이 뉴스에 의하면 애플은 참으로 모범적인 기업이다. 이익이 좀 날 것만 같으면 납품가를 내리라고 후려치는 국내 대기업과는 다른 훈훈한 면이 있으니 말이다.

현대 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삼성 등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의 현장 하소연을 들어보면 정말로 간신히 살게만 해줄 정도로 단가를 책정한다고 한다. 애플은 그에 비해 천사처럼 보인다. 적어도 이 뉴스에 한해서 애플은 정말 ‘좋은 뉴스‘ 다.
 
 
그런데 또다른 뉴스를 보자. 이번에는 무슨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도 아닌데 애플의 또다른 얼굴이 나온다. (출처)



(사진출처: 아이픽스잇)

애플과 삼성전자가 특허침해 소송으로 맞서는 배경엔 부품 단가 인하를 둘러싼 갈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급형 아이폰을 내놓으려는 애플이 최대 부품공급업체인 삼성전자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가 삼성전자가 거절하자 특허침해 소송으로 압박에 나섰고, 삼성전자도 맞소송 형태로 정면대응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8월 9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애플은 지난해 아이패드2 가격을 499달러로 낮춘 데 이어 보급형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로 하고 부품업체들한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세계 최대 부품구매자인 애플의 요구를 대부분의 납품업체는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단가 인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한테만 특혜를 줄 수 없었다"며, 애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삼성전자에 막혀 '가격혁신'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된 애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에스(S)'와 '갤럭시탭'의 특허침해를 문제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삼성전자 주력 제품의 발목을 잡아 부품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한편, 아이폰과 아이패드 시장을 지키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 나선 셈이다.

애플은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여러나라 법원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 무역위원회에는 갤럭시에스와 갤럭시탭 수입 금지까지 요청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등 주요 모바일기기 시장에서 애플의 강력한 경쟁자로 맞선 삼성전자 입장에서 애플의 요구를 받아들이긴 힘든 게 사실이다. 애플에 공급하는 부품 단가를 낮추면 당장 삼성전자의 반도체 및 엘시디(LCD) 부문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부품 단가 인하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가격이 떨어지면, 갤럭시에스와 갤럭시탭의 가격경쟁력도 위협받게 된다.





뉴스가 나온 시점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애플은 갑자기 삼성에게 가혹한 원청업체로 변했다. 이른바 현장용어로 ‘갑’ 행세를 하고 나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삼성이 매번 하청업체에게 해오던 일을 거꾸로 당했으니 고소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거야 개인감정의 문제일 뿐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점은 과연 애플의 진짜 모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건 마치 ‘좋은 뉴스’ 를 말해놓고는 다시 ‘나쁜 뉴스’로 반전시키는 헐리우드 영화 같다.

애플은 과연 부품업체에게 좋은 기업일까?

특별히 이 두 가지 뉴스 가운데 하나만 거짓말이라고 할 근거는 없다. 그러니 일단 둘다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애플은 한쪽에서 중소기업에게 납품가를 올려주겠다고 말해서 따스한 파트너쉽을 실천한 반면, 최대의 부품업체인 삼성에게는 공포 영화의 살인마처럼 안색을 바꾸고 다가가 ‘납품가를 대폭 내려라. 안그러면 재미없을 거다.’ 라고 협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혹시 애플은 무슨 의적 로빈훗이라고 되려는 걸까? 한국에서 부자인 삼성의 돈을 빼앗아 고통받는 가난한 중소업체를 돕기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설마.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애플이라면 아마도 재단을 세워 아프리카의 굶는 아이들이나 굶어죽는 북한 주민을 위해 기부했을 것이다. 애플은 좋든 나쁘든 단지 이윤을 쫓는 자본주의 기업일 뿐이다.

내가 무슨 탐정영화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간단히 유추해보자. 이 두 가지 뉴스는 밀실살인사건도 아니고, 코난이 등장해야 하는 기묘한 사건도 아니다. 애플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보를 했을 뿐이다. 그것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부품 가운데 단가 비중이 가장 센 부품이 어느 업체 제품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전 조사에 따르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부품 가운데 가장 비싼 건 레티나로 대표되는 디스플레이 부품과 저장장치인 SSD, 핵심처리장치인 APU와 기억장치인 DRAM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국내 중소기업이 공급하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기껏해야 아이폰4의 카메라 모듈 정도가 국내 중소기업인 엘지이노텍으로 추정될 따름이다. 나머지는 엘지 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 제품이다.



제품에서 단가를 크게 낮추려고 할때  몇 푼 안하는 부품부터 쥐어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가장 비싸고 이윤이 많이 남을 부품부터 가격을 낮추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면 목표 단가까지 몇몇 업체만 설득하면 된다. 나머지 업체에게는 그대로 단가를 주든가 아니면 오히려 올려줄 여유도 생긴다. 예를 들어 50달러짜리 부품에서 10달러를 깎을 수 있었다고 치자. 그러면 1달러짜리 부품업체에게 1달러 20센트로 올려주겠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애플은 어떤 기업인가? 천사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의적조차도 아닌 듯 싶다. 단지 애플은 지극히 미국식의 합리적인 기업이다. 현재 신용평가가 하락한 미국정부보다 오히려 현금이 많다는 애플에게서 이렇듯 돈이란 자체에 철저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점을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