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수반한다. 크게보면 아주 고급스럽고 세련된 거대 기업간 경쟁이지만, 또한 작게 보면 동물의 왕국에서 먹이를 놓고 다투는 짐승의 세계와도 닮았다.

특히 자유로운 경쟁과 그 와중에서의 도태란 점은 당연하지만 동시에 슬픔을 느끼게 한다. 경쟁에서 진 자는 결국 죽거나 남의 밑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너무도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하긴 그게 싫으니까 더욱더 승자가 되어야 하며 모든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아이패드가 처음에 10인치 화면으로 나왔을 때 화면 크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커서 좋긴 한데... 가지고 다니기엔 좀 크지 않은가?" 이것은 특히 아이패드 초기의 킬러컨텐츠로 아이북스와 연동된 전자책에 내세웠기 때문에 더욱 강조되었다.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 등이 그보다 훨씬 작은 6인치 화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면 크기라는 건 참으로 묘한 요소다. 전자책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LCD 텔레비전만 해도 32인치, 37인치, 40인치, 42인치 등 약간의 차이로 인한 규격 전쟁이 필연적으로 벌어진다. 생산수율과 생산라인의 원가 등을 전부 계산한 후에 결정한 이 화면 크기 경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패배한 쪽은 사주는 고객이 없어 큰 돈 들여 만든 라인을 놀려야 하기 때문이다.



전자책은 어떨까? 아이패드에 대항하기 위해 삼성이나 경쟁 회사들이 초기에 내놓은 태블릿은 6인치가 주류였다. 아이패드의 주 용도가 전자책이었고, 전자책에서는 이미 아마존의 킨들이 표준 화면크기로 자리잡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휴대성과 경제성을 고려할 때 가장 황금비율이라는 주장까지 담았다.

그런데 막상 시장은 6인치 위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잡스는 공개석상에서 6인치를 사용자가 손가락을 사포로 갈아내기 전에는 불편한 조작성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삼성 관계자가 '결국 잡스가 옳았다.' 라고 말하며 10인치 갤럭시탭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대체 화면 크기라는 건 무슨 의미를 가지기에 이처럼 격렬한 경쟁이 펼쳐지는 걸까.

화면 크기가 커진다는 건 한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량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는 걸 의미한다. 눈에 무리를 주지 않고 해상도를 더 세밀하게 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당연히 사용자들은 이왕이면 큰 화면을 원하게 된다. 문제는 화면이 커질수록 그 기기는 무겁고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배터리 사용시간도 줄어든다.


전자책 단말기의 주류 크기인 6인치는 다분히 종이책의 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단행본의 표준 크기가 6인치 정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익숙한 감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회사들은 6인치라면 휴대성을 유지하면서 가장 큰 편이고, 독자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크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태블릿에서 6인치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전자책 단말기, 어떤 화면 크기가 적당할까?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은 지금도 잘 팔리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단말기 자체에 다기능을 원하지 않는다. 킨들은 전자잉크와 최소 기능만 탑재한 채로 100달러 남짓은 가장 싼기기로서 팔리고 있다. 여기에서 게임이나 인터넷까지 즐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마치 닌텐도 DS게임기에서 동영상을 보겠다거나, 엄청난 고해상도 게임을 즐기겠다는 사람이 없는 거나 비슷하다. 요구사항 자체가 적으니 6인치라는 화면 크기에도 그다지 불만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단순히 종이책을 그대로 구현하는 용도로 6인치는 적당하다.


그렇다면 아이패드의 10인치가 어째서 보다 각광받았을까?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려면 6인치보다 훨씬 큰 화면이 적당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로 사용자들은 아이북스만 쓰지 않는다. 전자책은 그저 기능의 하나일 뿐이다. 웹서핑이나 동영상보기, 간단한 업무와 디카로 찍은 사진을 보고 가공하는 등 많은 별도 용도가 있다. 그러니 10인치가 6인치를 태블릿에서는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책에서도 10인치 화면이 정답일까? 그렇지는 않다. 분명 6인치에 비해 10인치 화면이 주는 정보량과 해상도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이패드의 휴대성은 바로 이 화면크기때문에 더이상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은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것이 상당한 비중인데 아이패드는 바로 그것이 불편하다. 인터페이스 문제는 그 뒤다.



당분간 아마도 시장은 저가 전자책 단말기는 6인치, 고가의 태블릿은 10인치가 주류로 해서 갈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에는 결국 10인치보다는 작아지는 추세로 가서 중간 정도가 될 수 있다. 8인치에서 7인치 사이 말이다. 해상도를 늘리면서 동시에 화면을 적게 줄이는 단말기가 미래를 쥐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원하면서 동시에 휴대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화면 크기가 가진 이런 점을 주목해가면서 전자책 시장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