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업계의 소송 가운데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니고, 뜨거운 논란을 부르는 것이 애플 제품 관련 소송이다. 애플은 업계의 제품 혁신을 주도하는 만큼, 늘 특허 소송의 혁신(?)도 가져왔다.

예를 들어보자. 약 20년 전, 애플은 윈도우를 만들어 내놓은 MS가 매킨토시의 그래픽유저 인터페이스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MS도 바보가 아니어서 완전히 맥을 똑같이 베끼지는 않았다. 맥이 버튼을 왼쪽에 달아놓으면 MS는 오른쪽에 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그러자 애플은 홧김에 '룩앤필' 이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즉 사람이 보고 느끼는 점이 똑같으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똑같지 않아도 표절이라는 것이다.



감성적으로는 분명 애플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법은 그렇게 적용될 수가 없다. 그런 식이면 재판정에서 판사와 배심원이 척 보고 피고의 얼굴이 범죄형이고 말하는 폼으로 봐서 범인이라고 느끼기만 하면 물증이 없이도 유죄판결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애플도 교묘하게 빠져나간 MS가 얄밉고 억울해서 꺼낸 개념이지만 이건 법정신으로는 가능하지 않기에 애플은 승소하지 못했다.

왜 내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가? 바로 이번 삼성 스마트폰에 대해 애플이 꺼낸 특허침해 논란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분명 스마트폰의 선두주자다. 멀티터치를 비롯해 다양하고 편리한 감성 인터페이스는 애플이 공들여 만들거나 잘 가공한 작품이다. 후발주자인 안드로이드폰들은 운영체제부터 시작해 외형 디자인까지 아이폰을 참고하며 장점을 취하려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아이폰의 많은 점이 안드로이드로 약간 변형되어 흡수되었다. 그걸 애플은 표절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경쟁업체는 단지 참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폰에서 직접적으로 완벽하게 똑같이 베낀 것은 거의 없으며, 몇몇 있는 것은 거의 모든 스마트폰에서 공통으로 인지되는 부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가는 길고 지루한 미국의 특허법정 싸움이 밝혀줄 것이다. 그 전에 재미있는 명령이 나왔다. 바로 미국 법원이 삼성에게 아직 미출시된 스마트폰과 태블릿 제품을 애플에 보여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출처)

삼성전자가 미국 법원으로부터 아직 미국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제품들을 애플에 보여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 소송전이 본격화되기 전 사전심리를 위한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통상적인 절차다. 하지만 애플이 향후 미국 조기수입 금지 요청 자료로 활용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4 일(현지시각)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 18일 미 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진행 중인 특허 소송과 관련해 갤럭시S2, 갤럭시탭 8.9, 갤럭시탭 10.1, 인퓨즈4G, 드로이드 차지 등 5개 제품을 30일 내로 애플에 제시하라고 명령했다. 법원 측은 이 제품을 증거자료로 애플이 조기수입 금지 요청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명령은 특허침해 소송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고소인인 애플이 더이상 침해로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한 법적조치다. 즉 고소할 거면 앞으로 나올 제품까지 검토해서 다 한꺼번에 해버리란 뜻이다.

그럼 문제는 무엇인가? 삼성도 이미 애플을 스마트폰 특허침해로 맞고소했다는 사실이다. 애플에게 권리가 있다면 삼성에게도 같은 자격의 권리가 있다. 그리고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다. (출처)



삼성전자가 애플에 대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아이폰 5'와 '아이패드3'를 보여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고 미국 독립 언론인 디스이즈마이넥스트(This is my next)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측 변호사들은 지난 27일 미래 삼성과 애플 제품간 혼동을 피한다는 이유로 법원에 이같이 요청했다.

이번 삼성의 애플에 대한 차기작 공개요구는 애플의 기존 요구에 대한 역공과 함께 압박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요청서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최종 판매모델과 제품 패키징(포장)을 내달 13일까지 제공해 것을 요구했으며 이는 삼성과 애플 미래 제품들의 유사성과 판단하고 혼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판이 없으면 각 제품 최근버전으로 대신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애플이 삼성에 취할 수 있는 잠재적 법적조치에 대비하기위한 것이며 삼성역시 애플처럼 변호사들만 제품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또 자사 제품을 애플에 공개함에 있어 '근본적 형평성'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애플과 삼성, 미출시 제품 공개까지 갈 것인가?



마지막 문장을 잘 보자. 삼성은 근본적 형평성을 주장했다. 원칙대로라면 미국 법원은 양쪽에 모두 공개명령을 내리든지, 아니면 양쪽 모두에게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든지 해야한다. 서로 특허를 침해하고 있다고 고소한 상태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애플을 둘러싼 법정다툼은 다소 민감하다.

1) 삼성은 신제품 출시 전에 그리 큰 보안을 유지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애플은 마케팅 효과를 위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양 회사가 서로 공개한다고 해도 애플이 훨씬 잃는 게 많다. 물론 양쪽 변호사들만이 보는 자리에서의 제한된 공개이긴 하다. 그러나 애플이 과연 출시 전에 이런 식의 제한된 공개나마 한 적이 있었는가? 역사상 한번도 없었다.

따라서 잃을 것이 많은 애플측은 상호 공개하라는 명령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받아들인다고 해도 수위를 낮춰 외관만 대충 보는 정도에 그치면서 비밀을 최대한 유지하려 할 것이다.

2) 그럼에도 미국 법정의 싸움은 애플에게 다소 유리한 방향이 될 수 있다. 최근 애플은 법정에서 상당히 유리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다툼에서 지나친 고소로 판사에게 경고를 받은 적도 있지만, 최후의 판결에서는 많은 결과를 얻어내곤 했다.

예를 들어 비틀즈의 애플 레코드사와의 소송에서, 애플은 자기들이 아이튠스를 통해서 파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라 주장했다. 그러니 음반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깬 것이 아니란 논리다.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애플은 이 소송에서 이겼다. 또한 최근에는 다른 회사들이 모두 포기하고 사용료를 지불한 코닥의 디지탈 사진 특허에 맞서서는 코닥의 특허 원천 무효판결에 가까운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따라서 어쩌면 애플만 삼성 제품을 볼 수 있고, 삼성은 애플 제품을 볼 수 없다는 치우친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삼성이 굳이 근본적 형평성을 강조한 이유다.


어쨌든 양 회사의 차기 신제품이 화려한 세일즈의 장이 아니라, 묵직한 법정에서 먼저 공개된다면 그것도 참 색다른 기분일 듯 싶다. 마치 서부극의 건맨들이 셋 세고 총을 쏘듯, 양쪽 변호사들이 노려보며 셋을 세고는 동시에 상대 제품 포장박스를 열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이건 또 무슨 'OK 목장의 결투' 일까. 참으로 웃음이 나오는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