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번 강조했지만 IT평론가로서 나는 소비자의 편이다. 애플이든 구글이든 MS든 나에게 있어 소비자보다 중시되지는 않는다. 이들 회사들이 남긴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해주더라도 소비자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런 원칙에 예외는 없다.

애플의 아이폰에서 사용자의 위치정보가 무려 12개월분이나 단말기에 저장되었고, 그것이 쉽게 판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최근의 핫이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전 포스팅을 통해 이것이 단지 애플이냐, 구글이냐 이런 기업 편가르기의 문제가 아니라고 밝힌바 있다. 오히려 이것은 이윤에 눈이 먼 기업과 최저 사생활은 보호하려는 소비자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애플과 구글의 위치정보 수집, 진짜 문제점은?




이번에 아직 병가상태로 애플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스티브 잡스가 해명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답변이 나에게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우선 관련 뉴스를 보자. (출처)

4월 2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병가 중인 잡스는 정보기술(IT) 블로그 올싱즈디(AllthingsD)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누구의 위치도 추적하지 않았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앞서 애플도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잡스는 "아이폰에 저장된 위치정보는 사용자 주변의 와이파이존과 기지국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폰이 사용자의 위치 데이터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데 1년치의 데이터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버그 때문이었다"며 "아이폰이 고객 데이터를 7일 이상 저장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CNN 등 외신들은 잡스가 애플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고객들에게 사과는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우선 잡스는 애플이 사용자를 추적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말했다. 하지만 의도라는 건 증명되지 않는다. 행위가 어떤지가 더 중요하다. 막상 아이폰이 1년치의 데이터를 쌓아둔 점에 대해서는 프로그램 상의 버그라고만 말했다. 즉 실수였지만 고의는 아니고 사과할 정도도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분명 아무 상관없이 아이폰을 잘 팔고 있는 애플이나 초단위로 돈을 벌고 있는 잡스 입장에서는 별것도 아닌 일인지 모른다. 채식위주의 식생활과 선을 익히는 잡스에게는 인터넷과 산업사회속에서 일하면서 끊임없이 스팸과 스토커, 원치않는 광고, 범죄의 위협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심리가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면서 열광하고 잡스에게 감사하는 시민들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끊임없는 개인정보 누출에 지쳐서 이제는 좀 그만해 달라고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 앞에서 그냥 기술적인 실수고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잡스는 과연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결국 잡스의 답변이란 건 미묘한 사실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변명할 수 없는 명확한 범법사실은 기술적 버그였다고 넘어가는 것 뿐이다. 그것 뿐인가? 마지막으로 잡스는 애플만이 잘못한 게 아니란 특유의 물타기 능력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출처)




4월 27일 ‘Interview: Apple CEO Steve Jobs on How the iPhone Does and Doesn’t Use Location Information‘ 제하의 보도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위치저장 논란과 관련, “과도하게 저장된 데이터는 버그로서,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말을 반복했다.

그는 이어 “테크놀로지 업계가 사용자들이 상당히 복잡한 신기술 이슈들에 대해 교육(홍보)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며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등장하게 되면, 조정과 교육(홍보)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더 미묘한 것들이 등장한 것에 대해 우리 테크놀로지 업계는 사람들을 교육(홍보)하는 것을 잘 해내지 못했다”며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지난 주 수많은 잘못된 결론들을 도출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단순 버그라고 주장하는 애플의 공식 자료를 넘어서, 사용자들이 애플의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며 사용자로 화살을 돌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사태의 원인은 과도한 사생활 누출을 원치 않는 소비자의 뜻을 거슬렀고, 위치정보가 자칫 범죄에 쓰일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잡스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1차로 애플을 포함한 IT업체들이 위치정보가 어떤 것이며 왜 축적되어야 하는지를 잘 홍보하지 못한 탓이며, 2차적으로는 이런 교육이 부족해서 (기술에 무식한) 소비자가 과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내 동의도 없이 1년치의 위치정보가 암호화도 제대로 안되어 저장된 사태가 단지 버그와 교육부족 탓인 것이다?

결국 '설사 잘못이 있다고 해도 나만 잘못한 게 아니다. 경쟁업체도 잘못했고, 소비자가 이해를 못해서 그럴 뿐이다.'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교육만 제대로 하면 소비자가 다 이해하고 아무도 문제삼지 않을 일인가?



애플, 위치정보 사태는 교육부재 때문이다?

최대한 잡스의 생각에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옛날 카메라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해서 매우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그러나 그것은 카메라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장치고, 어떤 일을 하는 지를 교육시키지 못한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 탓이다. 그러니까 아이폰의 위치정보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얼핏 비슷해보이긴 하지만 전혀 다르다. 소비자는 지금 아이폰이란 스마트폰을 처음 쓰는 것도 아니고 위치정보 서비스 역시 상당히 익숙해진 상태다. GPS를 이용한 고기잡이 배 위치나 자동차 네비게이션은 이미 생활의 일부다. 하지만 이들 기기에서 위치정보를 이렇게 길게 저장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의 역할이 좀 특수하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긴 시간 저장에 대한 동의도 받지 않았다. 그걸 가지고 버그라고 하다가 결국은 교육부재 탓이라니. 끝까지 사과 한마디 없는 이 사과 회사 사장에 대해 화가 난다.

슬프게도 이것이 소비자의 현주소다. 소비자를 왕처럼 떠받들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양심적인 회사와 기술자, 제품도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기쁘게해줄 감성적인 디자인과 우수한 기능,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능력이 없다. 반면에 마법처럼 좋은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혁신을 이뤄낸다고 칭송받는 기업과 그 기업주는 이처럼 건방지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건 결코 교육부재 때문이 아니다. 이미 소비자들은 위치추적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대충 알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돈만 아는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의 기업들에 있다. 그리고 그가운데 우뚝 선 애플의 오만함에 있다. 팔리는 제품만 만들 수 있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잡스의 가치관에 결정적 문제가 있다.

여기서 잡스의 말대로 교육이 부족해서 무식한 소비자는 결국 선택을 해야할 것 같다. '니들이 뭘 알아?' 라는 논리로 항상 소비자를 무시하지만 또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나쁜 남자'를 선택하든가, '제가 좀 부족하지만 원하시는 거 있으면 최선을 다해볼께요.'라고 말하는 친절하지만 정말 능력이 상당히 부족한 '평범녀' 가운데 말이다.

전자가 아이폰이고 후자가 안드로이드다. 그 외에도 뭐 여러 선택이 있긴 하다. 어쨌든 교육이 부족한 나로서는 내 위치정보가 1년치나 허락도 없이 노출되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다. 잡스가 과연 미국 청문회나 법정에서 또 어떤 말을 하는지 지켜보겠다. 그리고 잡스가 말하는 업계의 교육이 과연 어떤 것인지 조용히 받아봐야 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과연 내 생각이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