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에 동네마다 있었던 것이 주산과 암산 학원이었다. 어렸을 때 나도 주산을 배운 적이 있었다. 8비트 컴퓨터가 나오고, 전자 계산기가 그저 단추만 누르고 빠르고 훌륭하게 연산결과를 내놓던 시절임에도 말이다. 1원에 2원을 더하면 3원이요~ 하고 흥얼거리며 주판알을 튀기던 어린 시절이 새삼 그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생각해보면 주판이란 이제는 너무도 비효율적이다. 암산과 주산을 통해 지능을 개발하고 수학적 사고를 길러준다는 명분도 30년전 그 시절에나 통했을 뿐, 이제는 동네 어디를 봐도 주산, 암산 학원은 없다. 외성적인 성격과 언변을 높여 준다는 웅변학원도 찾아볼수 없다. 그 자리는 몽땅 영어학원과 수학학원 등 입시학원이 차지했다.

지금 무서운 기세로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자. 그 중에서도 가장 쓰기 쉽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아이폰이 고급 휴대폰 시장을 전부 가져가고 있다. 옛날의 초콜릿 폰이니 김태희폰은 이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설인 듯 싶다. 모두가 아이폰을 말하고 있는 가운데 스마트폰으로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고, 앱을 써서 노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도 시대를 앞서가는 일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듯 스마트폰-아이폰을 쓰는 일은 이제부터 모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까? 일체의 다른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없는 것일까? 우선 다음 뉴스 하나를 보자. (출처: 한겨레신문)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해온 음악이 디지털로 속속 투항하고 있다. 지난달 소니는 음악 감상 문화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워크맨'의 생산을 중단했다. 애플은 지난 17일부터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비틀스의 곡들을 음원판매 사이트인 아이튠스스토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청각이라는 원초적이고 직접적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음악이 디지털 기술 때문에 달라지고 있다. 모든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음향이 0과 1이라는 전자적 정보로 전환되면서 일어나는 변화다. 저장과 복제가 간편해지고 이동성이 부여돼 음악을 듣는 사람이나 시간은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 늘어났다. 디지털로 바뀐 소리는 편리해지고 다양한 기술과 접목되면서 더 나은 청각 경험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새로운 과제도 함께 던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은 '원음'(Original Sound)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임상완 돌비코리아 대표는 "아날로그는 모든 게 녹음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리까지 담기는데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원음'에 길들여져왔다"며 "디지털 기술로 불필요한 소리를 제거할 수 있게 돼 시디(CD)나 엠피3의 음질은 깔끔해졌지만, 동시에 차갑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돌비는 40년 전 테이프 녹음 때 잡음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해 인기를 얻고 카세트테이프의 대중화를 가져왔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이를 선호한 것은 아니다. 음악 재생기기들은 잡음이 섞인 소리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돌비 기술 활성화를 감상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 음악은 불필요한 소리라고 보아 잡음과 불가청 주파수 대역을 제거했는데, 소리의 풍부감과 깊이가 함께 사라진 결과를 낳았다. 귀로만 음악을 듣는 게 아니고, 들리지 않는 주파수대의 소리도 군더더기가 아니었다. 녹음 과정에서 사라진 소리라서 아날로그 시절처럼 '돌비 비활성화'를 통해 되살릴 수도 없다. 디지털 기술은 이어폰에서도 입체음향을 느끼게 해주고 엠피3에서 블루레이처럼 더 나은 음질로 진화하며 더 충실한 '원음'을 추구하겠지만, '무엇이 더 좋은 소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위의 기사는 우리에게 단 한가지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과연 쓸모없는 요소라는 게 존재하는가? 라는 것이다. 얼핏 완전히 불필요하게 느껴진 잡음이 모여서 소리의 따스함을 만들어낸다. 과학적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외면해도, 실제 그 들리지 않은 소리에 바로 따스함이란 느낌이 들어있는 것이다.

아이폰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가는가?

스마트폰 가운데서도 아이폰은 매우 편리하다. 세심한 배려로 인해서 사용자들은 얼마 안되는 노력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교통정보와 각종 유익한 계산법부터, 책과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말이다. 더구나 이런 정보와 각종 즐거운 엔터테이먼트를 잠시의 쉬는 시간도 없이 제공받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소셜 커머스는 바로 이렇게 한가한 사람들을 모아서 계속 자발적으로 커뮤니티 안의 통신을 통해 재미를 느끼도록 한다.



그러나 아이폰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첫째로 사람 사이의 정겨움을 빼앗아갔다. 페이스타임으로 활성화시킨 영상통화로 인해 직접 보고 말해야겠다는 의욕을 저하시켰다. 비록 고화질의 영상통화가 좋은 선택이지만 직접 보고 만지며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떨어진다.

둘째로 귀중한 시간을 빼앗았다. 어디서든 인터넷에 연결된 트위터는 남는 짜투리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겨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빼앗는다.

세째로 설레임을 빼앗아갔다. 아이튠즈로 돈만 지불하면 쉽게 다운로드 받아 간편하게 아이팟으로 듣는 음악은 수소문끝에 음반을 사서 두근거리며 턴테이블에 올려놓거나 카세트로 플레이 단추를 누르던 설레임을 빼앗아갔다.




위의 기사에서 보듯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면서 필요없는 부분이라고 여겨 삭제한 부분이 실은 중요한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아이폰을 쓰면서 종래에 우리가 낭비했다고 여긴 시간과 쓸데없는 고생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은 엄청난 의미와 따스한 감성을 키워주는 일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폰을 쓰는 일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일까? 인류가 나아갈 길이 바로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의 길인가? 내가 어릴 적에 배운 주산과 암산이 과연 불필요한 노력이었을까? 아니라면 아이폰으로 구현된 인공적인 감성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기계를 거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일일까?
디지털이 아날로그에게 새로운 인간화의 길을 묻듯, 아이폰 역시 소비자에게 진정으로 스마트하고 감성적인 휴대폰이란 어떤 것인지 물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