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란 회사는 묘하게도 예술가와 친하다. 다른 회사들이 많은 돈을 주고 섭외해야 하는 유명 아티스트가 애플 제품을 공짜로 선전해주는 가 하면, 절대로 광고출연을 하지 않는 예술가도 애플이라면 예외로 인정해 출연한다. 내놓는 제품이 문화현상을 일으키는 건 물론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인해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스티브 잡스가 천재적인 예술가인 것도 아니고, 애플이 무슨 헐리우드 영화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애플이 예술계에 대규모 기부를 한 것도 아니다. 애플은 그저 제품을 비싸게 파는 기업에 불과하다. 유일한 연결점이라면 스티브 잡스가 헐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대주주란 정도이다. 픽사는 토이스토리 등을 만든 유명한 영화사로 현재 디즈니에 합병되었다.


단지 돈이 많고 아이팟 등 음악 관련 제품을 팔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영화사와 음반사를 널리 보유하고 워크맨과 CD를 만든 소니는 전혀 애플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한때 최고로 돈이 많던 마이크로 소프트 역시 예술가에게 저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

정답은 바로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최근 뉴스를 예로 들어보자. (출처:)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다소 거창하게 아이튠즈에서의 비틀즈 음원 판매를 발표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16일 애플 홈페이지에는 "내일은 당신이 절대 못 잊을 날이 될 것(Tomorrow is just another day. That you'll never forget)"이라는 공지가 커다랗게 떴다. 아이튠즈와 관련한 중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란 예고였다. 이때문에 언론에선 "애플이 클라우드 기반의 아이튠즈를 선보일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지만 모두 빗나갔다. 한국시간으로 17일 자정 애플이 발표한 건 "마침내 비틀즈의 음원을 아이튠즈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이전까지 비틀스의 음원은 판권 문제 때문에 아이튠즈에도 구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잡스 CEO는 개인적으로도 비틀스의 팬이기도 해 수년간 비틀스의 아이튠즈 입성을 추진해왔다.


비틀스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엄청난 아티스트 구룹이다. 예스터데이를 비롯한 주옥같은 명곡을 내놓았으며 존레논과 폴 매카트니 등 개별 음악활동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출신의 이 그룹은 미국을 아예 휩쓸었다. 그리고 애플은 비틀스와 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바로 비틀스가 만든 음반사 이름이 애플 레코드 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각자 영역이 달랐기에 이 두 회사의 이름이 애플 컴퓨터와 애플 레코드 라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도 문제가 되자 애플이 음악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약속하며 무마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자 약속은 깨졌다. 소송직전에 몰린 상황에서 막대한 합의금을 주고 애플은 음반을 직접 유통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곧이어 애플 컴퓨터는 사명을 애플로 바꾸며 아이튠스를 통해 온라인 음악을 유통했다. 그러자 다시 애플 레코드는 합의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 더이상 변명거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여기서 애플은 온라인을 통해 인터넷으로 유통하는 음악은 음반이 아닌 <데이터>일 뿐이란 논리를 내세웠다. 당연히 이건 좀 어거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담당판사가 스스로 아이팟의 팬이기에 재판을 맡을 수 없다며 사퇴이사까지 밝혔던 재판에서 의외로 애플이 승소했다. 이때 애플은 <소송결과를 기쁘게 생각하며 장차 애플의 아이튠스에서 비틀스의 모든 음악을 판매하길 희망한다.> 고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말이 현실화 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애플 레코드와 애플의 분쟁이 완전한 화해로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애플 레코드와 애플이 법정에서 싸우는 일은 다시 없을 것 같다.

애플 제품이 예술가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럼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보자. 애플이 예술가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딱딱한 IT기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술의 가치를 널리 이해하며 존중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예술가를 진정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은 돈이 아니라 자존심에 있다. 애플은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굽혀 예술가를 중심에 놓아준다. 그러니 이 회사가 만든 제품 역시 예술가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다른 회사 같으면 비틀스의 음반 취급 정도를 가지고 절대 못 잊을 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대대적으로 이벤트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그걸 거침없이 한다. 이것은 애플이 그만큼 예술을 존중하며, 기술보다 예술을 우위에 놓는다는 기업문화를 과시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애플에 대해 예술가들도 당연히 그만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국내 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멜론이든 도시락이든 음악을 취급하고 그것으로 장사하는 기업들은 본래 당연히 그 컨텐츠를 만드는 예술가를 존중하고 빛내주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실상 국내 기업의 태도는 단지 원재료를 공급하는 하청업자, 부품 업자를 보는 태도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좀 유명한 가수나 기획사면 좀 큰 부품업자일 뿐이지, 결코 예술가로서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차이가 모여 애플과 애플이 아닌 회사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예술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비틀스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뉴스에 이어진 마지막 부분을 보자.

하지만 16일 애플의 다소 거창한 예고 때문에 이번 발표가 김빠진다는 평가도 많다. 야후뉴스의 IT 칼럼니스트인 밴 피터슨은 "비틀스가 아이튠즈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적은 없다"고 비꼬았다.

이렇게 미국인들도 이번 발표는 애플답게 다소 과장되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가를 제대로 대접한 부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비틀스는 그만한 자격이 있고, 예술은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국내의 기업들이 분명히 보고 배워야 할 점이다. 애플의 자금력이나 축적된 기술력은 당장 따라갈 수 없지만 이런 예술가 존중 자세만큼은 의지만 있으면 따라갈 수 있지 않은가?

P.S : 제 책의 발간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12월 3일, <애플을 벗기다.>란 제목으로 웅진 지식하우스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이 책 안쪽 추천문구에 제 블로그 댓글로 붙은 의견 일부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익명이어서 허락을 맡을 수 없어서 그러니 혹시라도 익명 댓글 다신 분들 가운데 출판물에의 이용을 원치 않는 분은 비밀댓글이나 메일 등으로 저에게 알려주시면 빼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제 블로그를 봐주시고 성원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애플에 이은 저의 다음 분석 대상 기업은 <삼성>입니다.^^